작년 섣달이 지나고 신묘년 정월 아침에 찾은 삼정마을 ‘당하제’는 갈대밭에 찬바람만 불었다. 저수지에서 볼 수 있는 온갖 생물, 민물 생태계의 보고인 당하제의 수면은 꽁꽁 얼어붙어 있었다. 동장군 탓인지 큰 고니도, 논병아리도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러나 이렇게 춥다가도 춘삼월 바람타고 땅 위로 더운 습기가 올라오면 온통 저수지를 덮어버릴, ‘가시연꽃’의 씨앗은 움틀 기세를 바짝 조이고 있을 터였다.

내셔널트러스트 ‘지켜야 할 자연유산’으로 선정

당하제는 익산시 용동면 대조리 삼정마을 앞에 있는 저수지다. 저수지와 주변 지역이 습지 형태를 띠기 때문에, ‘당하제 습지’라고도 부른다. 2010년 (사)한국내셔널트러스트는 당하제를 ‘지켜야 할 자연유산’으로 선정했다.

한국내셔널트러스트는 자발적인 모금이나 기부·증여를 통해 보존가치가 있는 자연자원과 문화유산을 확보해 영구히 보전·관리하는 시민단체로 권위를 인정받고 있다. 이곳을 '지켜야 할 자연유산'으로 선정한 것은 멸종 위기종인 가시연과 줄풀, 애기부들 등 식물 생태계를 자연 그대로 보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천연기념물 201호인 큰고니, 천연기념물은 아니지만 희귀종인 파랑새, 청딱다구리, 대백로, 쇠백로, 왜가리, 해오라기, 뜸부기과인 쇠물닭 등이 이곳을 찾는다. 누룩뱀이나 참개구리 등 양서류, 가물치 메기 미꾸라지 밀어 버들붕어 왜몰개 등 민물고기들도 다양하게 서식하고 있다.

인터넷으로 출발한 <소통신문>이 지난 2006년부터 당하제 보존문제를 지역의 의제로 발굴한데 이어 지난해 익산시민연합 박경철 대표가 한국내셔널트러스트에 당하제를 ‘지켜야 할 자연유산’으로 추천했다. 이어 같은해 11월 내셔널트러스트는 전국 26개 지역 가운데 당하제 등 5개 지역을 ‘지켜야 할 자연유산’으로 선정했다. 이로써 당하제는 단순한 시골풍경이 아닌익산시민들이 가장 우선적으로 보호해야 할 생태가치를 인정받게 됐다.

면사무소·주민 2006년부터 생태공원만들기 시도... 정책반영 안 돼 아쉬워

사실 당하제가 ‘지켜야 할 자연유산’으로 지정됐기 때문에 더욱 아쉬운 것은 과거 당하제를 보존하려고 노력했던 용동면사무소와 주민들의 노력이 익산시 정책에 반영되지 못해 좌절된 것이었다.

5년 전인 2006년 초 소통신문과 익산의제21, 용동면주민자치위원회, 익산YMCA 등 시민사회단체와 용동면사무소가 당하제를 비롯한 주변 지역 10만평을 생태공원으로 만들자는 계획을 추진했었다. 면사무소에는 당시 총무계장인 김길곤 행정주사가 앞장섰다.

이들은 우선 8차에 걸친 간담회와 교육을 통해 주민들의 중지를 모으고, 경남 창녕군에 있는 ‘우포늪’을 견학했으며, 대전에 있는 한국환경생태연구소에 생태계 조사를 의뢰했다. 주민들은 교육을 받으며 당하제 정화활동에 나서기도 했다.

면사무소와 주민들은 당시 행안부가 공모한 자연생태마을 공모에 응모했는데, 아쉽게 탈락했다. 당하제 주변 지역을 매입해 습지를 확장하고 인근에 황토아토피치료센터와 황토전원주택, 생태학교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정작 탈락의 근본 원인은 습지 보호가 땅값 하락과 재산권 행사에 제한을 가져올 수 있다는 일부 주민들의 오해였다. 이후 생태공원사업이 익산시 정책에 반영되지 못하면서 흐지부지 됐고, 당하제 주변에는 생태공원이 아닌 체육공원이 들어섰다. 체육공원에는 13억원이나 소요됐다.

하지만 일부 뜻 있는 주민들 사이에서는 익산시 예산을 들여서라도 생태공원을 추진해야 필요성이 있다는 의견이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용동면사무소 김길곤 주사는 “언론을 통해 습지 보호의 가치를 인식하면서 주민들도 이제는 편견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당시 교육에 참여했던 주민 L씨는 “당시 사업을 추진했더라면 지금쯤 당하제는 전라북도에서 제일 가는 습지공원이 됐을 것이고 주민들도 그만큼 부수효과를 볼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나타냈다.  

생태공원 조성, 지금이 적기

익산시민연합 박경철 대표는 “당하제를 가보면 아직까지 낚시를 자제해 줄 것을 촉구하는 안내판 하나 없는 실정”이라며 익산시의 환경마인드 부재를 비판했다.

박 대표는 “우선 민관협의체를 구성해 당하제를 창녕의 우포늪이나 순천만처럼 생태공원으로 조성해 백제의 역사문화와 연계시키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대표의 말처럼 실제로 익산시가 지금까지 당하제와 주변 지역을 보존하기 위해 애쓴 흔적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은 이상스러울 정도다.

생태와 문화가 산업으로 연결되는 이때, 다른 자치단체에서 생태자원을 관광자원으로 만들기 위해 지역공동체사업(커뮤니티사업)이다 뭐다 하면서 요란하게 떠들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오히려 관(官)은 뒷짐 지고 있는데 민(民)이 먼저 나서고 있고, 이를 행정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형국이다. 하지만 2011년 현재 익산시는 그 어느 때보다도 당하제를 보존하면서 생태공원으로 육성시킬 수 있는 여건이 좋아진 상태다.

주민들의 의식도 개선됐고, 내셔널트러스트로부터 지켜야 할 자연유산으로도 선정됐기 때문이다. 또 당하제 생태공원조성은 용동면의 지역사업이 아닌 익산시의 환경생태사업으로 추진돼야 할 사안인 것으로 보인다.

익산시의 과감한 선택과 집중을 기대하는 이유다.                                          

김경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