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억지력 전무
회의·회의록 공개여부는 위원들 맘.. 심사위원 구성 자체에 결함 있어
정부는 건설경기 부양을 위해 분양가상한제 폐지를 담은 주택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해놓은 상태다. 주택시장 침체로 낮은 분양가를 내세워야 아파트가 팔리는 구조가 됐다고 판단해서다. 반대여론도 있다. 분양가 상한제 도입으로 주변 시세보다 싼 아파트가 많이 나와 주택경기를 활성화시켰고, 공급물량이 늘어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지역과는 상관 없이 익산의 경우는 매우 가파르게 분양가가 상승돼 왔다. 수도권에서는 분양이 안 돼 주택시장이 침체되고 있는데, 익산에서는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물량이 늘어나면서 분양가 또한 치솟고 있다.
5년간 최고 24% 올라
익산은 지난 5년간 아파트 분양가가 최고 24%나 올랐다.
2007년 엘드수목토 아파트가 3.3㎡(1평)당 556만원을 기록한 이후 올해 분양가가 결정된 송학동 더 샵 아파트는 690만원으로 평당 133만원이나 뛰었다. 다소 차이는 있을망정 대부분의 아파트가 평당 600만원이 넘는다.
이는 국토해양부가 올해 1월 공시한 공동주택가격 중 전북지역 상승률 21%보다 높은 것이다. 전북은 전국에서 두 번째나 높은데, 익산은 이보다 더 높다.
직장인의 월급과 자영업자의 소득, 지역총생산과 실질국민소득은 이만큼 오르지 않았는데, 왜 아파트 가격만 천정부지로 오른 것일까.
분양가상한제
정부가 지난 89년 처음으로 실시했다가 99년 폐지하고 2007년 다시 전국적으로 부활시킨 '분양가상한제'는 아파트 분양가가 터무니없다는 여론에 따라 분양가격의 투명한 산정을 위해 실시돼왔다.
그러나 정부는 '09년 분양가폐지를 추진하다가 실패했는데, 이후 규정을 고치면서 건설업체의 적정이윤을 보장해왔다. 주택건설업체가 요구하는 각종 비용 인상분을 분양가격에 포함시키도록 한 것이다.
분양가상한제를 규정한 법은 주택법이다.
주택법과 이에 따른 국토해양부령 및 분양가격 산정규칙과 시행지침에는 아파트 분양가격을 정부가 고시하는 기본건축비(지상건축비+지상건축비) 및 가산비, 택지비 및 택지가산비를 합쳐 결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는데, 가산비 항목이 엄청 많다.
택지비에 따르는 가산비만 해도 연약지반공사비, 암석지반공사비, 흙막이 및 차수벽 공사비, 특수공법 사용비, 방음시설 설치비, 택지비용 이자, 제세공과금, 등기수수료, 택지 명의변경비가 포함된다.
건축비 가산비는 건물 구조별로 추가되는 비용과 테라스 설치 추가 비용, 주택성능등급을 인정받은 경우나 우수업체로 선정된 경우 추가로 인정되는 비용, 법정 면적을 초과해 설치한 복지시설 비용, 각종 전자장비 추가 설치비용, 초고층 구조물 안전 확보비용, 특수 설계 적용 비용, 공사비 이자비용, 친환경건축 추가비용 등이 포함된다.
국토해양부는 매년 3월과 9월 기본건축비를 공시하는데, 업체의 사정을 많이 반영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건설업체는 실제로 택지비와 건축비가 고시가격보다 적게 들어도 기준만 충족시키면 되기 때문에 분양가를 높이려는 유혹을 받게 된다.
유명무실한 분양가 심사위원회
주택법과 이에 따른 하위규정들은 분양가를 제한하기 위해 자치단체장이 '분양가심사위원회'를 설치토록 하고 운영에 대한 세부 규정을 정하고 있다.
심사위원회는 건설업체가 제시한 분양가격이 규정에 맞게 산정됐는지를 심사하는데, 시민단체, 협회나 학회 등 외부단체의 추천을 받아 주택관리 및 경제학 분야 전공 교수, 토목건축 또는 주택건설·관리 분야 전문직 종사자, 5급 이상 공무원 또는 변호사, 회계사, 감정평가사, 세무사 등 10인 이내로 구성한다.
하지만 법과 하위 규정들을 왜 이렇게 허술하게 만들었는지 납득이 안 가는 규정들이 많다.
아마도 국민 여론과 시민단체들의 요구에 의해 억지로 만들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주택법(제38조의4)은 심사위원들이 업무를 수행할 때 "신의와 성실로써 공정하게 심사를 하여야 한다"고만 규정해놓고, 이를 어길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해 놨다.
그러면서도 엉뚱한 사람들, 즉 건설업체 직원이나 주택관리사 등 공정한 심의를 할 것이라고 추정되지 않는 인사와 전문성이 낮을 듯 한 사람들이 심사위원이 되도록 했다.
국토해양부령(시행령)도 엉뚱하기는 마찬가지다.
여기(제42조의10)에는 "위원은 회의과정, 그 밖의 직무수행 상 알게 된 사항으로서 공개하지 아니하기로 한 사항을 누설해서는 안 되며, 위원회의 품위를 손상하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된다"고 규정했다.
어떤 점을 공개하지 말아야 하는지와 품위를 손상하는 행위가 무엇인지, 누가 행위를 판단해야 하는지는 규정이 없다.
또 신의성실 의무를 지키지 않거나 심사위원회에서 알게 된 정보를 누설하거나, 아파트 건설에 직간접으로 참여하고 업체와 이해관계가 있는 사람은 스스로 심사에서 회피해야 하고, 이를 지키지 않을 경우 단체장이 해촉할 수 있도록 하고 있는데, 해촉되면 그만이고, 이후의 조치에 대해서는 규정이 없다.
또 같은 시행령 규정(제42조의7)은 심사위원회 회의진행은 공개하지 않되, 위원회의 의결이 있는 경우에는 이를 공개할 수 있다고 되어 있다. 공개를 원하는 위원들이 누가 있겠는가를 생각하면, 원천적으로 공개를 막은 셈이다.
또 시행령 규정(42조의 11)은 심사위원회가 개회일시 및 장소와 공개여부, 출석위원 서명부, 상정된 안건 및 심의결과, 그 밖에 주요 논의사항을 간사(공무원)가 회의록을 작성해 보존해야 한다고 규정했는데, 결국 회의록 공개여부는 심사위원들이 결정하도록 했다.
의원이 회의록 공개를 요구해도 거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다만, 국토해양부가 만든 '공공주택 분양가격의 산정 등에 관한 시행지침' 제 7조에 "분양가 심사위원회는 분양가격의 구성 항목별 비용이 과다 또는 축소 계상되지 않도록 철저히 심사해 합리적인 비용이 분양가격에 반영되도록 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이는 심사위원들의 적극적인 역할을 주문한 내용으로 주목을 끄는데, 문제는 심사위원들이 제대로 역할을 했는지 검증할 장치가 없다는 것이다. 있으나마나한 규정이다.
문제는 또 있다.
시행령(제42조의7)에는 단체장이 심사위원회 회의를 소집할 경우 회의 개최일로부터 2일 전까지 회의와 관련된 사항을 위원들에게 알려야 한다고 되어 있는데, 기간이 너무 부족하다. 일에 바쁜 심사위원들이 책 몇 권 분량의 내역서를 이틀 만에 독파하고 문제점을 찾아낸다는 것 자체가 힘들고, 회의시간에 파악하기란 더욱 불가능하다. 게다가 분양가와 이해관계가 전혀 없는 외부전문가를 초청해 의견을 들을 기회도 없다.
"심사위원들이 무슨 특권이 있는 게 아닙니다!" 지난 11일 익산시 분양가심사위원이 말했다.
시행령(제42조의7)은 필요할 경우 해당 사업장의 사업주체나 관계인 또는 참고인을 출석케 하여 의견을 듣도록 하고 있는데, 이들은 모두 이해관계인이기 때문에 변명으로 일관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렇게 법령을 만들어 놓고 정부는 분양가상한제가 이제 필요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익산시의 경우
익산은 아파트 값이 가파르게 올랐다.
분양가심사위원회를 구성해 운영하고 있는데, 분양가를 적극적으로 인하해 권고했다거나 유보했다는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익산시 분양가심사위원회는 원광대 건축학과 윤충열 교수를 위원장으로 하고, 김진우 변호사, 윤영숙(여) 회계사, 박성일 세무사, 윤여원 주택관리사, 차승주 건축사, 김진구 제일건설 기획부장, 장시근 익산참여연대 운영위원, 백동화 LH전북지역본부 주택공급팀장, 익산시청 주택과장 등 10명으로 구성돼 있는데 일부는 최근에 들어왔고, 임기는 2년이며 법적으로 무한정 연임 가능하다. 이중 윤 교수는 익산시 건축위원회 위원이며, 박 세무사는 '08년 익산시 지방세심의위원을 지냈고, 김 부장은 주택업체의 이익을 대변하는 대한주택건설협회 전라북도회의 추천으로 들어왔다.
지난 11일 분양가심사위원회를 대표해 기자회견을 한 김 부장은 김대중 의원이 '심사위원들이 마치 높은 분양가를 책정한 것처럼 주장했다'며 심사결과는 '법적으로 하자가 없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심사위원들의 프라이버시 때문에 회의록을 공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익산참여연대의 추천을 받은 장 위원은 공식적 반응이 없었다. 심사위원장은 기자회견장에 나오지 않았고, 익산시 건설교통국장과 주택과장은 분양가 문제는 심사위원들의 문제라며 뒤로 빠졌다. 심사위원회는 법에 따라 구성됐고, 심사도 법대로 따라 했는데, 시민들은 분양가가 높다고 아우성이다.
전주시 분양가심사위원회는 지난 8월 아파트 두 곳의 분양가를 인하했고, 한 곳은 사업을 유보시켰다.
전주시의회 이미숙 의원은 지난 7월 의회 5분발언에서 "분양가상한제가 폐지되면 업체들이 고급자재를 쓰겠다며 간접비를 부풀리는 등 분양 값은 터무니없이 오를 것이 자명하다"면서 "전주는 수도권과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분양가상한제를 유지해야 하고 폐지 문제는 지역 특성을 고려해 선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경선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