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람 이병기는 근현대 익산이 배출한 최고의 인물
문학축제에 고도 익산 연관시키는 게 성공 관건 

민선 5기 들어 이한수 익산시장은 익산이 ‘깡패도시’라는 인상에서 벗어나 감성도시, 안전도시로 가야 한다며 ‘여성친화도시’ 조성을 강조했다.

여성가족부로부터 여성친화도시 1호라는 이름을 얻고 다른 지역사람들이 익산을 보기 위해 방문도 하고 있다.

하지만 여성 친화라는 말 속에는 여성 차별이라는 불편한 진실이 필연적으로 숨겨져 있으며, 복지와 건강, 가족, 안전이라는 말과 섞어 사용하면서 무엇이 여성친화고 뭐가 복지인지 헷갈리게 됐다.

익산이 당면한 문제는 여성친화가 아니라 사람이 그런대로 살만한 도시, 즉 정주기반을 잘 닦는 것이다.

여성친화도시로서 거듭나는 노력은 환영할 일이지만 정주기반을 소홀히 함으로써 악취도시라는 새로운 오명을 덮어쓰게 된것은 여성친화정책에 실질이 없다는 반증이다.

지역의 본새를 바꿀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축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익산이 서동축제를 하고 있지만, 그 기반이 매우 허약하다는 점을 지난 호에서 지적했다.

같은 예산을 들여 가람 이병기 문학축제를 벌일 수는 없는 것인지, 문학축제에 고도 익산의 역사적 자긍심을 담을 수 없는 것인지 고민해봤다.

 글 싣는 순서

상. 서동축제의 명암

하. 가람축제로 바꾸자

◇가람은 익산의 자랑

가람은 한 마디로 익산이 지금까지 배출한 가장 훌륭한 인물 중의 한 명이다.

그의 생애가 그러했고, 활동의 결과가 그렇다.

가람 선생 정도의 큰 학자를 배출하기는 여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는 평생 동안 우리의 영혼을 담는 한글과 국문학 연구에 힘썼다.

가람은 고종 때인 1891년 여산면 원수리 진사마을에서 태어나 박정희 정권 때인 1968년(77세) 별세했다.

그가 일본제국주의에 저항한 선비로서, 시조시인, 국문학자로서 남긴 발자취는 완연하다.

가람은 청나라 개화사상가 양계초의 문집을 읽고 유교가 아닌 신학문을 하기로 뜻을 정했으며, 1910년 전주 보통학교에 들어가 6개월을 마친 뒤 한성사범학교에 들어가 공부하면서 조선어 강습원에 나가 주시경선생의 문법 강의를 들었다.

한성사범학교를 졸업한 가람은 여산 보통학교 교사로 있으면서 전주로 나가 조선어를 가르쳤고, 국문학 자료 수집과 연구도 병행했다.

‘21년에는 주시경선생의 제자들과 함께 우리말 연구 및 우리말 쓰기 운동을 했던 조선어연구회(조선어학회.한글학회)를 만들고, 이듬해에는 휘문고보 등 여러 고등학교를 돌며 우리말을 가르쳤다.

’26년부터는 시조에 대한 연구업적을 발표하기 시작했고, ‘30년에는 한글맞춤법통일안 제정위원으로 활동했다.

’34년에는 일제에 맞서 우리의 역사와 문학, 언어를 연구하는 진단학회에 참여했고, ‘35년에는 표준말 정비활동을 했으며, 3년 후에는 연희전문학교에서 조선문학을 가르쳤다. ’40년에는 보성전문학교에서 시조와 가악, 가사 문학을 가르쳤다.

하지만 2년 후 일제가 조선어학회를 독립운동단체로 인식하고 회원들을 체포했고, 이때 가람선생도 1년 동안 함흥형무소에 수감돼 고초를 당했다. 이때 가람선생은 일기에서 “온몸에서 끊는 피가 쏟아져 나오는 듯 도무지 세상이 원수 같다”고 썼다.
기소유예로 풀려난 가람선생은 여산으로 돌아와 농사일을 하다가 해방을 맞았고, 이후 여산초 교사를 지내며 전주에 나가 한글과 우리 문화를 가르쳤다.

이후 ‘46년 서울대 문리대 교수를 맡으면서 단국대 등에 강사로 나갔으며, ’48년에는 동국대 등 5개 대학에서 우리말과 문학을 가르쳤다.

‘50년 6.25전쟁이 일어나 피난 갔다가 '52년 전북대 문리과대학장에 취임했다.

’56년 학장직을 퇴임하고 서울로 올라가 중앙대 문리대 교수 및 서울대 대학원 강사로 활동했는데, ‘57년 뇌일혈로 누웠다.

이후 병세가 호전돼 ’62년에는 갑오동학혁명기념탐 건립추진위원장을 맡았는데, 병에서 완전히 회복되지 못해 ‘68년 여산면 진사마을의 생가에서 별세했다.

‘가람’이라는 그의 호가 말해주듯 이병기 선생은 가난한 생활을 마다하고 민족의 정신을 회복하는데 젊음을 바쳤다.

궁핍하면서도 옛 문헌을 수집하는데 열정을 다했고, 한중록, 인현왕후전, 어우야담, 신재효의 판소리 등 진귀한 작품을 발굴, 해석해 빚을 보게 했다.

특히 그의 시조 연구는 국문학사에서 독보적이다.

옛 시조연구와 이를 잇는 현대시조문학의 창안은 “가람 이전도 이후도 없다”는 찬사를 받았으며, 국어국문학을 체계화함으로써 학문의 영역으로 끌어들였다.

1천여 수가 넘는 방대한 시조, 수필, 가람일기, 가람시조집, 국문학개론, 표준국문학사, 국문학전사, 가람문선 등의 작품은 일생을 통한 역작으로 남아 있다.

이로써 그는 국문학계에서 전무후무한 태두로서 평가받고 있는 것이다.

익산시 여산면 진사마을의 가람 이병기 생가. 수우제라는 이름으로 유명하다.

◇픽션을 잡지 말고  실제를 잡아야 한다

축제는 과거의 역사에 관한 것 보다는 현재와 가까운 소재를 활용할수록 좋은 것으로 보인다.

과거의 막연한 픽션에 매달리기 보다는 현재 우리가 접하고 있는 것과 우리가 살아가는 현대와 가장 가까운 것들이 축제의 소재로 우선 채택돼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생생한 실제성을 살릴 수 있고 교육적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

서동선화의 사랑이야기는 가람 이병기의 문학세계와 그의 생애, 업적 측면에서 비교할 것이 못 된다.

100년이나 수백 년 뒤에 가람 이병기를 조명해 축제를 해본들 미래세대가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익산시민은 서동축제를 통해 백제무왕의 세계를 느낄 수 없다.

너무도 먼 옛날 얘기라 그렇다.

특히 가람 이병기 축제는 익산시에 문학도시, 문화도시로의 명성을 가져다 줄 것이다.

이미지를 바꾸려면 우리가 지금 갖고 있는 것을 활용하는 것이 가장 좋다.

가람은 불과 몇 십 년 전까지 우리고장에 살았던 사람이다. 
 ◇교육에 오락 접목해야

 가람 이병기 문학축제는 딱딱한 교육축제에서 벗어나 오감을 만족시키는 다양한 방안들을 접목시켜야 한다.

가람의 업적을 인정하면서도 축제를 계획하지 못하는 것은 문학이라는 이름에 구속돼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해서다.

‘무슨 재미가 있겠느냐’는 회의론이 그래서 나온다.

교육과 오락을 접목시킨 ‘에쥬테인먼트’는 시민들의 축제 참여도를 높이고 외부 관광객들을 끌어들이는 첩경이다.

가람 생가 주변 토지를 매입해 광장을 조성하고, 현재 계획하고 있는 가람문학관 건립과 함께 고도(古都) 익산의 문화와 재미를 느낄 수 있는 다양한 볼거리, 즐길 거리를 추가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전문가가 참여하는 가람 문학축제 추진위원회를 구성해 의견을 듣거나 전문기관에 용역을 의뢰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일이다.

김경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