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적인 대자보 열풍, 민주적인 방법으로 이어져 대안 제시해야

“안녕들 하십니까”는 안부 인사다. 지극히 일상적인 표현에 불과했던 이 인사가 대한민국의 2013년 12월을 깨우고 있다.
지난 10일 고려대에서 한 대학생이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제목으로 대자보를 붙인 이후, 전국적으로 “안녕들” 대자보가 신드롬처럼 확산되고 있다. 진심을 담은 말 한마디가 큰 사회적 파장을 일으키고 있는 것.
익산의 원광대학교에도 대자보가 붙었다. 정치적인 색채와 성향을 떠나, 사회 문제에 대해 대학생들이 자신의 생각을 내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일이다.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 원광대학교 학생회관 1층에 대자보를 붙인 박준성(토목 3) 군을 만났다.

◇ 내 목소리를 내는데 두려울 이유는 없다

박준성 군은 군대 제대 후 원광대학교 토목환경공학과 3학년에 재학 중인 지극히 평범한 복학생이다.
여행을 좋아한다. 특히 화장실도 마련돼 있고, 교통 정체 걱정이 없는 기차여행을 선호해 즐겨하는 편이다. 그래서 연일 이어지고 있는 철도 파업 사태에도 관심이 많다.
그는 “시험기간에 다들 안녕하십니까? 저는 제 예상 시험 성적보다 더욱 안녕하지 못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작금의 사태입니다. 이 추운 겨울이 얼마나 길어질지, 이 추위와 연말연시가 모든 국민에게 행복한지 묻고 싶습니다”라며 대자보를 통해 안부를 전했다.

지난 18일 기자와 만나 자리에서 “철도와 같은 대표적인 공공재가 민영화된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당장 민영화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이번 사태가 그 틈을 열어 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생각을 밝혔다.

이어 “복잡하고 어려운 정치 문제를 떠나, 기차 여행을 자주 하는 입장에서는 이번 사태가 생활에서 직접 느끼게 되는 현실적인 문제이다. 그간 한 번도 써 본 적이 없는 대자보를 쓰면서 처음에는 ‘몸을 사려야 하나’ 하는 마음도 들고 조금 겁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내 목소리를 내는 것에 대해 두려울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지성과 배움의 전당인 대학에서 깊은 성찰을 통해 스스로의 이름을 밝혀 의견을 펼치는 것이 합법적이고 평화적인 방법이라면 문제될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대자보 작성에 앞서 나름의 공부도 많이 했다. 혹시나 한 쪽으로 치우친 시각이 내비칠까봐, 철도민영화를 반대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균형을 잃지 않기 위해 철도 파업 문제에 대해 여기저기 뒤지며 기사와 글들을 많이 보고 수차례 생각을 정리했다.
그렇게 처음 큰 지면에 손수 쓴 대자보는 누군가가 뜯겨졌다.

그래서 지금 붙어 있는 작은 대자보를 다시 만들게 됐다는 그는 “사회의 현실문제에 대한 민주적이고 적극적인 의견 표시는 결코 나무랄 일이 아니다. 헌법에 보장된 국민의 권리이다. 대자보에도 헌법 전문을 인용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사회적 문제에 대해 목소리를 내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오히려 정치적·사회적 무관심이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다만 사실에 근거한 합리적이고 민주적인 방법이어야 한다”고 말했다.

◇ “안녕들” 공감한다 53%

디지털 세대의 대자보 소통은 처음에 다소 어색해 보였다. 대자보는 이전 세대의 대표적인 소통문화다. 요즘 젊은이들은 활동과 관심의 공유는 페이스북, 트위터, 카톡 등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로 이뤄진다.

익명으로 대변되는 인터넷과 SNS 시대에도 불구하고, 아날로그의 방식으로 대학교를 넘어 사회 전반으로 “안녕들 하십니까” 열풍이 퍼지고 있는 추세다.

열풍의 불씨를 당긴 고려대의 첫 대자보에는 ‘철도 민영화’, ‘밀양 송전탑’, ‘국정원 대선개입’ 등 사회 문제에 대한 비판적 질문이 담겨져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대자보 열풍은 그동안 사회문제에 대해 무관심과 무감각 상태에 빠져 있던 대학생들에게 일종의 각성제 역할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안녕들 하십니까”라는 소박한 인사 한마디가 “안녕하다”고 생각하고 살아온 이들의 양심에 불을 지핀 것이다.

이와 같은 대자보 열풍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 ‘공감한다’는 의견이 53%, ‘공감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23.7%, ‘잘 모르겠다’는 의견이 23.3%로 나타났다.
지난 17일 JTBC와 현대리서치, 트리움이 전국 성인 남녀 700명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유선 50%·휴대전화 50% RDD 전화면접조사, 95% 신뢰수준 ±3.7%p) 결과, 절반 이상인 53%의 응답자가 ‘공감한다’고 응답했다.

대자보 확산에 공감한다고 밝힌 응답자들은 대자보가 시민들이 정치에 관심을 갖는 계기가 됐고, 대학생들이 나라를 걱정하고 있는 것을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이들의 참여로 미래가 나아질 것이라는 의견 등을 제시했다.

반면 공감하기 어렵다고 밝힌 응답자들은 학생의 본분은 공부이고, 대자보 확산은 무지에 의해 선동당한 것이며, 학생들이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있다는 의견 등을 보였다.

박준성 군은 “자신의 생각을 전하는 대자보를 훼손하는 행태나, 무작정 따라하기 식의 대자보 등 우려되는 부분도 있다. 하지만 사회의 문제에 대한 관심과 목소리들이 점차 민주적인 움직임으로 이어진다면, 문제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거나 해결책을 찾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대자보 열풍도 좋은 현상이지만, 기왕이면 그 전에 정치권은 물론 언론이 편중되지 않고 올바른 시각으로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면, 대자보가 필요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생각을 전했다.

송승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