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령사회 익산.. 관심과 나눔 실천 절실

설 명절 연휴가 지나고 다시 추위가 찾아왔다. 날씨는 화창하지만, 옷깃을 한껏 여미게 하고 입술까지 바짝 말라 부르트게 하는 매서운 칼바람 속에서 지난 6일 페인트칠이 다 벗겨진 낡은 대문을 다시 찾았다.

고령화사회를 넘어 고령사회에 접어든 익산에서 추운 겨울을 홀로 하루 연탄 3장으로 지내고 계시는 안 씨 할머니를 찾아뵙기 위해서다. 안 씨 할머니는 올해 87세로 갈산동 자그마한 집에서 20여년 넘게 홀로 생활하고 있다.

“뭣허러 또 찾아왔어, 날도 추운디.”

전날 잠시 지나가는 길에 들러 인사를 드렸을 때의 퉁명스러운 기색은 한풀 가신 듯하다. 말씀은 그렇게 하셔도 사람이 찾아 주니 좋아하시는 눈치다.

따로 연락처가 없으신 할머니를 뵙기 위해 오고가며 며칠을 들렀던 차에 겨우 할머니와 마주앉을 수 있었다.

할머니는 방안에서도 외투와 목도리 차림이었다. 추운 날씨 탓도 있겠지만, 추위보다 더한 외로움이 가득 찬 방안에서 쉬이 목도리를 풀기 어려웠을까.

오전 9시가 조금 지난 시각, 식사를 하지 않으신 것 같아 조심스레 여쭤 보니 “아직이여. 되는 대로 먹지 뭐”라고 별일 아니라는 듯 답하시는 할머니에겐 밥 때가 따로 정해져있지 않다. 건강을 위해 잘 챙겨 드셔야 한다고 신신 당부를 해도 돌아오는 말씀은 “그냥 이대로 살다, 죽게 되면 되는 거여” 뿐이다.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다.

“왜 그런 말씀을 하세요. 아직 정정하신데,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셔야지요.”

홀로 사신지 20년이 넘었지만, 다행스럽게도 할머니는 특별히 편찮으신 데가 없다. 예전엔 위궤양 증세가 있어서 병원에 다니곤 했는데, 지금은 괜찮아지셨다고 한다.

“어제 길에서 넘어져 여기가 자꾸 어지러워”하시며 머리를 가리킨다. 겨울철에는 특히나 노인분들의 낙상 사고가 매우 위험해 병원을 가보시라고 권해도 “그냥 이대로 살다 가면 돼”라는 말만 되풀이하신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 살고 있는 집에서 지내셨다는 할머니는 결혼하고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20여년을 혼자 살아오셨다. 낡은 대문부터 한옥 지붕 위에 얹어놓은 듯한 슬레이트와 툇마루라고 하기에는 턱없이 좁아 걸터앉을 수밖에 없는 마루, 찢어진 창호지 사이로 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방문, 집안 곳곳에 방치된 듯 놓여 있는 세간들이 지나간 세월을 여실히 보여준다.

자녀분들에 대한 질문에는 “없어. 그냥 그냥 살어”하며 말끝을 흐리신다. 아마도 혹시나 타지에 살고 있는 자식에 누가 될까 염려하신 듯.

혼자 지내신 오랜 세월 동안 자식들이 자주 찾지 않아도, 부모의 마음은 그러한가 보다. 꼬치꼬치 캐묻는 질문이 새삼 부끄러워진다.

이번 설 명절도 혼자 보내셨다는 할머니는 특별히 찾아오는 이는 없어도 주위에 친구들도 많고, TV 드라마도 보면서 지내신다고 했다.

“요즘에는 공무원들이나 사회단체에서 찾아와 말벗도 해 드리고 집안일도 도와드리는데, 찾아오는 사람 없으세요?”

안타깝게도 안 씨 할머니를 정기적으로 찾아오는 이는 없다. 때가 되면 연탄을 지원해주는 사회단체와 쌀이나 김치, 기타 생필품을 가져다주는 이웃이 전부다. 그리고 서로 오고가며 의지하고 있는 같은 처지의 홀로 사는 친구 노인분들.

마당 한 구석에 쌓인 폐지와 공병들, 할머니는 기초생활수급자로 통장에 매달 들어오는 보조금 30여만원과 고물상에서 받는 푼돈으로 생활을 하고 계셨다.

“날 추워서 요즘은 그냥 지나가다 보이면 줍고, 잘 안혀. 날 따숴지면 해야지. 하루 종일 하면 고물상서 500원, 600원 정도 줘.”

할머니 말씀에 괜스레 고개가 숙여진다.

어떤 질문에도 세상을 초탈하신 듯 무덤덤하게 말씀하시던 할머니는 교회 이야기에 화색이 돌았다. “일요일마다 가. 팔봉동에 있는 교횐데, 맨날 차로 데리러 오니께 편하고 좋지. 예배도 드리고 사람들도 만나고.”

이미 산전수전 다 겪으시고 초연한 모습인 할머니가 단지 예배의 기쁨에 교회를 반기겠는가. 아마도 잠시나마 외로움을 잊을 수 있는 시간이 아닐까 싶다.

한 가정의 딸로, 아내로, 어머니로 평생을 살면서 정작 자신을 위해서는 눈길 한번 제대로 주지 못했던 안 씨 할머니. 모진 세월을 겪으며 살아온 할머니는 이제야 살 만한 세상이 됐다 싶었는데, 홀로 남겨졌다.

시간이 지나고 세월이 흐르면서 느는 나이를 막을 수는 없다. 그렇다고 뚜렷한 해법은 보이는 것도 아니다.

경제적인 지원은 물론이거니와, 직접 찾아가 얼굴 맞대고 이야기를 나누는 작은 관심과 나눔을 실천하는 것이 안 씨 할머니의 웃음과 행복을 넘어 ‘시민 모두가 행복한 익산’을 만드는 방법이지 않을까.

# 고령사회로 접어든 익산

65세 이상 인구가 총인구를 차지하는 비율이 7% 이상을 고령화사회(Aging Society), 65세 이상 인구가 총인구를 차지하는 비율이 14% 이상을 고령사회(Aged Society)라고 하고, 65세 이상 인구가 총인구를 차지하는 비율이 20% 이상을 후기고령사회(post-aged society) 혹은 초고령사회라고 한다.

고령이란 용어에 대한 정의는 보편적으로 일정한 것은 아니다. 우리나라의 고령자 고용촉진법시행령에서는 55세 이상을 고령자, 50~54세를 준고령자로 규정하고 있으나, UN은 65세 이상의 인구가 총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7% 이상일 때 고령화사회라고 보고 있다.

인구의 고령화 요인은 출생률의 저하와 사망률의 저하에 있다. 평균수명이 긴 나라가 선진국이고 평화롭고 안정된 사회를 상징하는 의미에서 장수는 인간의 소망이기도 하지만, 반면 고령에 따르는 질병과 빈곤, 고독 등은 사회가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시에 따르면 올해 1월 말 기준 익산시 전체 인구 30만6,372명 중 65세 이상 노인은 4만3,873명으로 14.3%에 달한다. 이와 같은 수치는 익산이 고령화사회를 넘어 고령사회로 접어들고 있음을 나타낸다.

송승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