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위, “절차적 정당성 없는 날치기 통과.. 한방 말살”
원광학원, 경쟁력 제고 이유 들어 통·폐합 불가피론 펴

학교법인 원광학원(이사장 신명국)이 지난달 24일 개최된 이사회에서 의과대학병원과 익산한방병원의 통·폐합을 결정했다. 그러자 원광대학교 한의과대학 학생들과 익산한방병원 비상대책위원회 등이 “교수진과 학생들, 그리고 시민들을 무시한 결정”이라며 통·폐합 결정 철회를 촉구했고, 원광학원 측이 부랴부랴 사태 수습에 나섰지만 통·폐합 강행을 천명하고 있어 양측의 충돌이 불가피해 보인다.

# 통·폐합 결정의 배경

학교법인 원광학원(이사장 신명국)은 지난달 24일 개최된 이사회에서 ‘병원부문의 계열별 미래비전을 위한 사업구조 최적화’와 이를 토대로 한 추진전략의 일환으로 원광대학교 의과대학병원과 익산한방병원의 통합을 결의했다.

원광학원 측은 “현재 침체일로에 있는 한의학계는 국내 1위인 경희대조차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이며, 오히려 미국 등 서양이 침술 등 통합의학의 주도권을 잡아가고 있는 형국”이고 “이러한 상황에서 원광학원은 우리나라 한의과계를 발전시킬 사명을 가지고 기존의 틀을 깨는 혁신을 이루기 위해 전국 규모 1위, 위상 2위의 원광대 한의과 계열을 ‘국내 최고의 대학한방병원 모델’을 제시한다”고 결정의 배경을 밝혔다.

원광학원은 익산한방병원은 소규모 병원에서 발견되는 전형적인 수익 불안정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고, 특히 전·현직 병원장의 취약한 실적이 경영에 부담을 주는 상황에서, 한정된 자원과 투자·지원을 인프라와 역량이 가장 뛰어난 전주한방병원과 광주한방병원에 집중해 국내 한의과계의 최고 모델로 육성한다는 방침이다.

이에 대해 한의과대학 비상대책위원회(위원장 최건희)는 지난 10일 오전 10시 30분, 시청 브리핑룸에서 성명서를 발표하고 “지난 2009년에 시행한 컨설팅 결과에 따라 자구적인 노력을 통해 흑자 전환의 시기로 돌입하고 있는 상황에서, 교수진이나 학생들과의 어떠한 사전 협의 없이 갑작스럽게 이뤄진 이사회의 결정은 한방병원의 개선의지를 무시하는 처사”라며 결정 철회를 촉구하고 나섰다.

익산한방병원 비상대책위원회(위원장 김길진)도 하루 뒤인 11일 오전 11시 기자회견을 열고 “폐원 후 원대병원 내 한방과를 설치, 협진을 통한 통합의학을 도입한다는 것은 이미 여러 기관 및 병원에서 수많은 시도를 했으나 성공한 사례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굳이 익산한방병원을 폐원하고 이렇게 급하게 협진을 시도하려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며, “특히 한방병원 노조는 매출 저하시 직원 임금 삭감까지 감수하겠다는 서약서를 공식적으로 제출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이와 같은 사태가 벌어진 것은 한방말살정책”이라고 강력히 비판했다.

익산한방병원 이시형 병원장도 “컨설팅 후 개선 권고안이 나올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갑작스런 폐원 결정은 매우 당혹스럽다. 병원 측과의 사전협의 없는 일방적인 통보는 충격”이라며 “지난 2009년 컨설팅 이후 내부 경영개선 노력을 해왔고, 지난해에는 당기 순이익이 발생했다”며 “한방병원 관련 전문가나 실무자의 충분한 검토나 검증 없이 일방적으로 결과를 통보하는 식의 폐원 결정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밝혔다.

# 실습 환경 악화.. 교육권 침해

대학병원은 환자를 치료하는 동시에, 학생들의 교육 환경을 제공하는 기능도 가지고 있다. 익산한방병원도 마찬가지로 익산시민의 의료와 더불어, 원광대 한의과대학 학생들의 임상실습을 목적으로 하는 비영리 교육병원으로서의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한의과대학 비대위는 “이번 결정은 학생들의 교육권을 명백히 침해하는 행위”라며, “실습 병원이 익산과 전주·광주에서 전주·광주로 축소됨에 따라 교수 1인당 담당 학생 수가 늘어나 실습 환경이 악화될 것도 분명한 사실이고, 한의과 대학 6년 과정을 끝마친 한의사가 4년 동안 수련을 받는 전문의 양성 기관을 익산·전주·광주·산본 병원에서 전주 병원 한 곳으로 축소한다는 결정도 학생들이 국민의 건강을 수호하는 전문 의료인으로 성장하게 될 기본적인 교육권을 무참히 짓밟는 처사”이며 “이는 결국 익산시민의 건강권을 침해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이번 결정을 철회하고 한의과대학 학생들의 교육권을 침해하지 않을 발전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며 “앞으로 동맹휴학이나 등록거부 등 전면 투쟁도 준비하고 있다”며 강경 입장을 내비쳤다.

이에 대해 원광학원 관계자는 “전주와 광주의 한방병원에서 실습과 전문의 과정 수련을 문제없이 추진할 수 있다”며 “학생들을 위해 교통편의를 제공하는 등의 지원을 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 결정 후 논의는 어불성설

한의과대학 비대위는 “이사회가 지난달 23일 컨설팅 결과를 법인 측에게만 공개하고 불과 12시간 만에 긴급 이사회를 소집해 통·폐합을 결정했다”며 “한방병원의 폐원이라는 중대한 결정이 방학중인 학생들, 연수중인 교수진과의 사전협의도 없이 이뤄진 것은 날치기 통과”라고 주장했다.

또한 “이달 6일 한의대 교수진이 참석한 결과보고 자리에서도 전체 컨설팅 자료 공개는 없었다”며 절차적 하자를 지적했다.

한방병원 비대위도 “노조와 협의 없이 이뤄진 이번 결정은 엄연한 단체협약 위반”이며, “원광학원 측이 이번 결정을 철회하지 않을 경우, 이사회 결정 무효 가처분 신청 등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고 강경한 입장을 밝혔다.

# 고용보장.. 진실성 의문

지난 10일 오후 1시 30분 긴급히 기자회견을 마련한 원광학원 측은 “전국의 의료계와 경쟁하면서 사회적 환경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양·한방 협진체계를 구축하는 방향으로 경쟁력 강화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자리에서 원광대 이성전 교학부총장은 “선택과 집중을 통해 발전을 위한 해체의 단계”라고 설명하며, “한의과대학 학생 수나 익산한방병원의 교수진, 직원들의 감축은 없다. 고용은 그대로 승계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비대위 측은 “컨설팅 결과에 따른 진료체계는 양방이 주도하고 한방은 종속적인 구조가 될 것”이라며 한방계의 위축을 우려했다.

또한 “내부적인 논의가 이뤄지지 않아 고용승계와 관련된 사항은 전혀 들은 바가 없다. 고용을 보장한다는 법인 측의 말은 믿을 수 없다”고 밝혔다.

이시형 원장도 “한방병원 의료진조차도 어디로 가야할 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 지역주민 건강권 침해

한의과대학과 한방병원 비대위 측은 이번 결정으로 인한 한방병원의 폐원이 시민들의 건강권을 침해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들은 “원광대학교를 비롯해 의과대학병원, 한방병원 등 원광학원이 익산 지역에서 가지고 있는 위상은 매우 크다. 36년 역사를 가지고 있는 한방병원의 경우 매년 7만여명의 익산시민이 진료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한방병원이 폐원된다면 시민들은 종합병원 급의 한방치료를 받지 못하게 될 것”이라며 “발전을 위한 보다 많은 투자가 필요한 시점에서, 단순 경영논리로 큰 투자발판이 될 한방병원에 대한 폐원 결정은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시의회 이경애 의원도 “전국적으로 의료수준이 높기로 유명한 익산한방병원의 폐원 결정은 시민들에게도 충격으로 다가오고 있다”며 “지역 사회에 미칠 의료·경제·고용·교육 등 다양한 파급효과 등 불안한 상태를 해소하기 위한 원광학원 내부 구성원 간의 충분한 방안 모색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송승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