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되지 않은 쌀 시장 개방, 풍전등화의 식량주권
고령화·대농화·이농현상 겹친 익산의 허약한 농촌

쌀시장 개방으로 고령화와 대농화, 이농현상으로 침체된 익산의 들녘을 뿌연 안개가 덮고 있다.

[ 글싣는 순서 ]
Ⅰ. 개황
Ⅱ. 농업 구하기
Ⅲ. 농촌 구하기
Ⅳ. 방향성

쌀 시장 개방은 이제 피할 수 없는 국면이다. 우리나라는 지난 94년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을 통해 쌀시장 개방을 10년씩 두번 유예했는데, 그 댓가로 외국 쌀을 의무적으로 수입해 왔다. 문제는 이 경우 적용받는 저율할당관세다. 우리 정부는 지난 20년 동안 5%라는 낮은 관세로 쌀을 매년 40만8,700톤씩 수입해 왔다.

이같은 물량은 연간 국내 쌀 소비량의 9%를 점하며 이는 경기도 쌀 생산량에 육박한다. 여기에 국내 쌀 소비가 줄어들면서 지난해 말 현재 우리나라 쌀 재고량은 80만3,000톤에 달하고, 보관에만 3,000억원대의 비용을 쏟아붇고 있다. 

정부의 독점 수입체제를 폐기하고 일반에 쌀 시장을 개방하는 전면적인 쌀 수입 관세화를 더 미룰 수는 있다. 대신 우리나라의 쌀 의무 수입량은 두배 이상으로 늘어나게 되고 관세도 더 낮춰야 한다. 국산 쌀의 경쟁력이 크게 하락할 수 밖에 없다. 

또한 이 의무수입량과 관세율은 쌀시장 개방 이후에도 그대로 적용되기 때문에 개방을 미루면 미룰수록 우리는 불리하다. 2차 쌀시장 개방 유예기간이 만료되는 올해 연말 이후부터는 쌀 수입을 전면 관세화하겠다는 정부의 발표는 이런 불가피성에서 비롯했다.

그러나 우리 농촌은 지난 20년 동안 이렇다 할 대비를 하지 못했다. 우루과이라운드 협정 후 12년 동안 26조2,700억원을 경지 정리, 수리시설 확충·보수 등 농업 생산 기반시설에 투자했지만, 이는 생산성에 기여하지 못했고 농가부채만 늘리는 또다른 문제를 낳았다. 또, 정부는 당해년도 쌀의 목표가격을 정하고 쌀 값이 그보다 미달되면 85%까지 보전해 줬지만, 이 목표가격은 늘어나는 생산비와 물가상승률을 고려하지 않고 설정돼 농가의 실질 소득을 보장해주지 못하고 있다.

이같의 허술한 정부의 농업정책은 지속적으로 농민들의 반발을 사왔지만, 별다른 개선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이런 가운데 쌀시장 개방은 거스를 수 없는 물결이 됐고, 정부는 수입쌀에 대한 관세율을 공개하지 않고 있어 농민들의 위기의식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일정기간은 높은 관세율로 수입 물량을 억제할 수 있겠지만, 농업 대국인 미국과 중국에 자동차나 휴대전화 같은 고부가가치 품목을 수출하는 우리 정부 입장에서 오래 버틸 수는 없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특히, 우리 정부가 그동안 보여온 협상력과 박약한 의지로 볼 때 수입쌀에 대한 고율 관세정책 시행 자체가 현실적으로 불투명하다는 전망도 나온다.

우리나라 식량 자급률은 23.1%에 불과하다. 이대로 특단의 대책 없이 쌀 시장을 개방한다면 국제 쌀 가격 결정권을 쥔 세계 5대 곡물회사들에게 틈을 보이는 것이다. 장차 쌀 농사를 포기하는 농가가 많아진다면 우리가 삶의 기반을 외국에 의존하게 될 날이 머지 않았다.  

농업에 근간을 두고있는 익산시는 연간 10만톤에 가까운 쌀을 생산하고 있다. 익산의 농촌은 타 지자체와 마찬가지로 초고령화와 극심한 이농현상을 겪고 있다. 여기에 정부와 지자체가 주도한 기계화 영농과 규모를 갖춘 영농조합법인 및 농업회사법인에 대한 지원 확대 방침에 따라 대농화가 초고속으로 진행되고 있다.

지난달 20일 현재 익산지역의 영농조합과 농업회사 법인은 704개에 달한다. 이는 쌀시장 개방에 체질적으로 취약한 환경이다. 농업경영체는 조그마한 악재에도 큰 손실규모를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 이같은 경쟁환경은 농업경영체의 비대화와 독점구조를 부추기고, 도농 복합도시 익산의 인구감소를 가속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공인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