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1심에서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은 박경철 시장에 대한 항소심 첫 공판이 열렸다.
무엇보다도 희망제작소가 선정한 희망후보가 아님을 직접 확인했음에도 허위사실을 공표한 점과 채규정 전 시장이 소각장 사업자를 코오롱으로 정한 것을 이한수 시장이 취임하자마자 대우건설로 바꿔 의혹이 끊이지 않고 있다는 취지로 발언해 허위사실을 공표했다는 공소사실에 의거, 재판부가 엄정한 판단을 해야 한다는 여론이다.

  이날 광주고등법원 전주 제1형사부(재판장 노정희) 심리로 열린 항소심 1차 공판에서 먼저 검찰 측은 “원심의 판단 중 무죄로 인정된 ‘희망후보 보도자료 배포’ 부분에 사실오인이 있다”면서 양형의 부당함을 주장했다. 이에 반해 변호인 측은 “원심의 판단에 사실 오인 및 법리 오해의 잘못이 있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이날 양 측의 주장을 쟁점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 보도자료에서 이미 ‘희장제작소 선정’이라고 적시.. 희망후보 아님을 직접 확인하고도 이용한 점도 문제

 

  이날 변호에 나선 법무법인 다산의 김칠준 변호사는 공소사실 1항인 희망후보 허위사실 공표와 관련해 “이 사건 범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정책협약을 맺은 당사자만이 희망후보 명칭을 사용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명시적인 합의가 있어야 하고 이 부분이 사실로서 확정돼야 하며, 유권자들에게 희망후보가 희망제작소와 정책협약을 맺은 후보라는 인식이 있어야 한다”면서 “정책협약을 맺은 후보가 희망제작소에서 선정한 희망후보라는 전제 자체가 잘못된 것이므로, 원심은 사실오인 및 관련 법리와 채증법칙에 위배된 부분이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유권자 입장에서도 ‘저 후보가 희망제작소라는 곳에서 지지나 응원을 받는 후보자인가 보다’는 정도로 생각할 수 있을 뿐, ‘저 후보는 희망제작소와 정책협약을 맺은 후보’라고 오인할 가능성이나 근거가 전혀 없다”면서 허위사실 공표에 해당할 여지가 없음을 강조했다.
하지만 이 같은 주장은 큰 맹점이 있다. 당시 박경철 선거캠프에서 배포한 보도자료 자체에 선정한 희망후보라는 문구가 명확히 기재돼 있다는 것.

  실제 5월 30일 박경철 선거캠프가 배포한 보도자료는 제목 자체가 ‘박경철 익산시장 후보, 희망제작소 희망후보 선정’이며 그 내용에 있어서도 ‘국내 유수의 민간연구소인 희망제작소가 추천하는 익산시의 희망후보로 선정됐다’는 문구가 적시돼 있다.
정책협약을 맺은 후보가 희망제작소에서 선정한 희망후보라는 전제 자체가 잘못이라는 변호인 측의 주장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부분이다.

  더 큰 문제는 피고인이 당시 박경철 후보가 희망제작소와 정책협약을 맺은 희망후보가 아님을 직접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이용해 홍보에 나섰다는 점이다.
선거가 임박한 지난해 5월 29일 당시 박경철 후보는 직접 희망제작소 측과의 전화통화를 통해 자신이 희망제작소와 정책협약을 맺은 희망후보가 아니라는 사실을 인지했다.
하지만 5월 30일 기자들에게 희망후보 선정 보도자료를 배포했고, 이후 6월 2일 기자회견을 통해 다시 이를 강조했다.

  더욱이 이전에도 이미 박원순 서울시장과의 친분 관계를 과시하며 선거기간 동안 박원순 서울시장과 함께 촬영한 사진을 이용해 선거운동을 벌이는 등 여론몰이에 나섰기 때문에, 박원순 시장이 상임이사로 있었던 희망제작소의 긍정적인 이미지를 감안, 자신이 희망후보가 아님을 인지하고도 선거에 당선될 목적으로 희망후보 명칭을 사용한 것이라는 분석에 힘이 실리고 있다.

 

◇ 소각장 발언의 근거는 언론보도 뿐.. 보도의 진실여부도 확인한 바 없어

 

  TV토론회 소각장 사업자 교체 발언과 관련해 변호인 측은 “선거과정에 있어서 방송토론회는 후보자의 정책이나 신뢰성을 평가하는 주요수단으로서 상대 후보에 대한 비판과 토론, 의혹제기, 해명 등의 과정으로 이어진다”면서 “방송토론회에서의 의혹제기는 미리 준비한 자료에 의해 일방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 연설이나 유인물을 통한 주장과는 달리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 사건 발언은 방송토론회 중 전임 시장인 상대 후보에게 부채에 대한 책임을 묻는 과정에서 나온 것인데, 원심이 방송토론회의 전체적인 맥락이나 분위기를 고려하지 않고 문제시되는 발언 일부만을 떼어내 판단한 것은 잘못”이라며 “당시의 의혹제기는 방송토론회의 특성상 그 취지에 문제없이 부합하는 것”이라고 역설했다.

또한 “이한수 시장 취임 직후 대우건설이 사업자로 최종 선정되는 과정에서 담당공무원이 교체된 사실, 기술위원회가 갑자기 연기된 사실, 평가위원 전원이 대우건설을 1등으로 평가한 사실 등이 있다”면서 “이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는 언론보도가 있었지만, 사법당국 등 공적 기관의 명확한 법적 판단이나 사실 규명이 없었던 점 등에 비춰보면 의혹제기의 상당성이 있다고 봐야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러한 변호인의 주장 또한 재판부가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후보자에 관한 의혹제기는 그것이 진실인 것으로 믿을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는 근거에 기초해 이뤄진 경우’에 한해 허용되며, 의혹사실의 존재를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자는 그러한 사실의 존재를 수긍할 만한 소명자료를 제시할 부담을 지고 그러한 소명자료를 제시하지 못한다면 달리 그 의혹사실의 존재를 인정할 증거가 없는 한 허위사실의 공표로서의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허위사실공표죄가 성립하기 위해 필요한 ‘허위의 인식’과 관련해서도 대법원은, 피고인이 적시한 구체적 사실이 진실한지를 확인하는 일이 시간적·물리적으로 사회통념상 가능했다고 인정됨에도 그러한 확인의 노력을 하지 않은 채 당선되지 못하게 할 목적을 가지고 그 사실의 적시에 적극적으로 나아갔다면 미필적 고의를 인정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하지만 그간의 검찰 과정에서 피고인은 당시의 언론보도 외 다른 근거를 제시하지 못했다. 언론보도 내용이 진실한지 여부를 확인한 바도 없다. 검찰 신문조서에 따르면 피고인은 당시 사업자가 코오롱으로 내정된 바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채규정 전 시장이 정한 것이라고 발언한 근거와 관련, 채규정 전 시장에게 들은 바가 있느냐는 질문에는 “없다”라고 답변했고 구체적으로 일부 공무원에게 들었다고 했는데 이름을 묻자 “모르겠다”라고 답변했으며 제3자를 통해서 들었다는데 누구냐는 질문에는 “기억을 못한다”고 답변한 바 있다.

더불어 판례는 행위자의 고의의 내용으로서 공표된 사실이 허위라는 점의 인식이 필요한데, 이러한 주관적 인식의 유무는 그 성질상 외부에서 이를 알거나 증명하기 어려운 이상 공표 사실의 내용과 구체성, 소명자료의 존재 및 내용, 피고인이 밝히는 사실의 출처 및 인지경위 등을 토대로 피고인의 학력, 경력, 사회적 지위, 공표 경위, 시점 및 그로 말미암아 객관적으로 예상되는 파급효과 등 제반 사정을 모두 종합해 규범적으로 이를 판단할 수밖에 없고, 어떠한 소문을 듣고 그 진실성에 강한 의문을 품고서도 감히 공표한 경우 미필적 고의가 인정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하지만, 방송토론회 이전에 이미 피고인은 출마 기자회견을 통해 소각장 발언을 한 바 있다. 기자회견문에 따르면, “특히 채규정 전 시장이 임기 중에 소각로를 코오롱건설로 추진했는데, 이한수 후보가 취임 후 전격적으로 대우건설로 교체한 이유를 31만 익산시민은 아직도 모르고 있습니다”라고 적시함으로써 오히려 방송토론회보다 더 확신하는 듯한 표현을 사용했다. 변호인의 주장대로 방송토론회의 특성과 취지를 감안해 미리 준비한 자료에 의해 일방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 연설이나 유인물을 통한 주장과 달리 판단한다 해도,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비록 공소사실이 방송토론회 발언을 판단의 대상으로 하고 있지만, 허위라는 점의 인식과 관련해서 대법원은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했기 때문에, 이번 재판부가 이 부분에 대해 어떤 판단을 내릴지도 관심이 집중된다.

 

◇ 다음 기일 3월 31일.. 4월 29일 법정기한 만료

 

  이날 검찰 측은 “원심의 판단 중 무죄로 인정된 ‘희망후보 보도자료 배포’ 부분에 사실오인이 있다”고 주장하며 당시 선거캠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김 모 씨를 증인으로 신청했다.

  검찰 측이 신청한 증인 김 씨는 박 시장 취임 이후 전문계약직으로 전격 채용된 후 2개월 남짓한 시점에서 파면 조치된 인물이다. 이에 변호인 측은 개인적인 관계 등을 이유로 진술의 신빙성을 문제 삼았지만 재판부는 이날 증인 신청을 받아들였고, 다음 공판에서 진행될 김 씨의 진술을 통해 보도자료 배포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변호인 측의 주장이 뒤집어질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에 반해 변호인 측은 “정책협약을 맺은 후보가 희망제작소에서 선정한 희망후보라는 전제 자체가 잘못된 것”이라고 무죄를 주장하면서 희망제작소 소장 윤 모 씨를 증인으로 신청했다.
또한 소각장 사업자 결정과정에서 평가위원 전원이 대우건설에 1등을 준 점과 평가당일 평가방식이 수정된 점에 강한 의문을 제기하며, 평가위원 중 3명을 증인으로 채택해 줄 것을 요청했다.

아울러 소각장 사업자 교체 발언과 관련 “당시 의혹제시 언론보도를 한 기자 두 명이 고소·고발을 당해 사법당국의 수사를 받았지만, 종국적인 법적 판단이나 사실 규명이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이들의 수사기록 등에 대한 문서송부촉탁 및 사실조회 신청을 받아들여 줄 것”을 요청했다.

이에 재판부는 윤 씨에 대한 증인신청은 받아들였지만, 평가위원 3인에 대한 증인신청과 문서송부촉탁 및 사실조회 신청에 대해서는 “누가, 언제, 어떻게 등 구체적인 사실관계를 특정해 입증취지를 밝혀 달라”고 주문했다.

이어 다음 재판 기일을 정하는 과정에서 검찰 측과 변호인 측의 약간의 신경전이 펼쳐졌다. 변호인 측은 재판부에 문서송부촉탁 및 사실조회 신청 등 필요한 자료 구비에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3주 정도의 여유를 요청한 반면, 검찰 측은 이미 증거로 제출된 부분이 있고 선거사건인 만큼 재판이 신속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