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패교지(紅牌敎旨), 백패교지(白牌敎旨), 요여(腰輿), 교지, 교첩, 과거지, 호적단자 등 총 120점
덕망 높은 청백리 이후백과 벼슬을 사양하고 한학자로 살았던 이수인이 남긴 귀중한 유물들 전시돼

지난 4월 삼기면 기산리에서 문을 연 연안 이씨(延安 李氏) 종중문적 박물관에서 희소식이 날아왔다. 전국 23만 연안 이씨 문중의 구심점 역할을 하며 보물 651호인 종중문적의 체계적인 관리를 위해 세워진 박물관에 새로운 유물 120점이 기탁된 것이다.

국비와 도비, 시비 등 67억9천만원이 투입돼 9천148㎡의 터에 지상 1층·지하 1층 규모로 지어진 전시관은 전시실과 수장고, 영상실, 관리실 등을 갖추고 교지 18장, 공신녹훈교서 1축(軸), 공신회맹록 6책으로 구성된 연안 이씨 종중문적 등 500여점의 유물을 선보였는데 이번에 120점의 유물이 더해짐으로써 박물관으로서의 위상이 더욱 높아지게 됐다.

이번에 박물관이 기탁받은 유물은 청백리로 이름 높은 조선의 문신 이후백과 한학자 이수인의 교지, 교첩, 호적 단자로 연안 이씨 문중의 과거사를 비롯해 조선시대의 문화를 더욱 풍부하게 살펴볼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있다.

◇ 파주에서 가져온 귀중한 유물

연안이씨종중문적 박물관에서는 2013년 8월 19일 파주에 있는 청련공 이후백의 장손 이 규홍 씨가 보관해오던 고문서 120점등을 기탁 받았다.

연안이씨종중문적 박물관 이천인 관장은 대전광역시에 살고 있는 이선영 씨로부터 청련공 유물들을 보관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여러 차례 논의한 끝에 문중회의 이승복 회장과 이한영 씨와 함께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에 직접 찾아가 설득한 끝에 유물 일체를 기탁받기에 이르렀다.

이규홍 씨는 청련공(靑蓮公)의 홍패교지(紅牌敎旨)를 비롯해, 청련공 요여(腰輿) 2점, 후손들의 각종 교지와 유지 100여점과 생원(生員) 백패교지(白牌敎旨), 교첩, 과거지, 혼서지와 조선말기의 호적단자 등 18점 등 총120점을 보관하고 있었다. 

이중 특이한 유물인 요여(腰輿)는 ‘영혼을 모시는 가마’라는 뜻으로 풀이되는데 혼백과 신주를 상징하는 위패를 모신다는 뜻으로 전라남도에서는 영여(靈與)라고도 하는 유물이다.

청련공 이후백 요여 2점을 보면, 가마의 3면에 매화, 난초, 모란, 연꽃이 그려져 있고, 정면에는 여닫이문이 쌍문 격자무늬로 이뤄져있다. 지붕 중앙에는 봉우리가 맺은 연꽃 모양으로 장식돼 있는 점이 특이할 만한 점이다.

또한 숙종 22년 6월(1696)에 왕이 발급한 문청시호교지(文淸諡號敎旨)를 비롯해, 중시조 10세 선경(善慶), 11세 태길(泰吉), 12세 수인(壽仁), 13세 석형(碩亨), 14세 징구(徵龜), 17세 기성(基成) 등 7명의 교지 100점 등을 박물관에서 기탁 받았다.

◇ 청련공 이후백은?

청련공 이후백은 1546년(명종 1년) 사마시(생원과 진사를 뽑던 과거시험)에 합격하고, 1555년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승문원주서를 거쳐 1558년 승문원박사로 사가독서(賜暇讀書 : 문흥을 위해 유능한 젊은 관료들에게 휴가를 주어 독서에 전념케 하던 제도)했다고 전해진다. 그 뒤 전한이 되었다가 이어 시강원설서·사서·정언·사간·병조좌랑·이조정랑·사인 등의 벼슬을 지냈다.

1567년(선조 즉위년)에는 원접사(遠接使)의 종사관이 되어 명나라 사신을 맞았으며, 그 해 동부승지에 발탁되었다. 이어 대사간·병조참의를 거쳐 도승지·예조참의·홍문관부제학·이조참판을 역임했으며, 1573년 변무사(辨誣使)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이어서 인성왕후(仁聖王后 : 인종仁宗의 비)가 죽어 상례절차에 대한 문제가 일어났을 때 이후백이 3년 상을 주장해 그대로 시행되었던 일화도 있다.

1574년엔 형조판서가 됐고 다음 해 평안도관찰사가 되어 선정을 베풀었다. 그 뒤 이조판서와 양관(兩館 : 홍문관과 예문관의 합칭)의 제학을 지내고, 호조판서로 있을 때 휴가를 얻어 함안에 성묘를 갔다가 그곳에서 죽었다.

청백리로 뽑혔으며, 앞서 명나라의 ‘태조실록’과 ‘대명회전’에 이성계가 고려의 권신 이인임(李仁任)의 후손으로 잘못 기재된 일을 바로잡은 것(종계변무宗系辨誣)의 공으로 1590년 광국공신(光國功臣) 2등으로 연원군(延原君)에 추봉됐다.

이후백은 문장이 뛰어나고 덕망이 높아 사림의 추앙을 받았다. 함안의 문회서원(文會書院)에 제향됐고, 시호는 문청(文淸)이다.

청련공 이후백은 사람들이 집으로 찾아와서 부정한 청탁을 하면 사정 볼 것 없이 교제를 끊었다고 전해질만큼 평생을 두고 뇌물을 모르고 살았다. 재상자리를 여러 차례 역임했으면서도 그의 집은 가난한 선비처럼 언제나 적막했다. 혹 손님이 찾아와도 밥상에는 채소반찬 몇 가지 밖에 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모든 사람들은 그의 청렴 검소한 생활에 감복했다고 한다.

◇ 대부분 유물의 주인공 이수인

이번에 연안이씨종중문적박물관에서 기탁받은 120여 점의 유물 중 대부분이 이수인(李壽仁)의 교지와 유지 등이다.

이수인은 1624년(인조 2년) 생원시와 진사시에 합격해 1632년 헌릉참봉이 되고, 다음해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 승문원권지부정자가 됐다. 1638년 저작박사·전적에 승진하고, 이어 감찰·병조좌랑·정언을 지냈다.

1642년 재차 전적에 제수되었으나 사은(謝恩)을 마치고 바로 전리(田里)로 내려가 오직 학문에만 열중하여 아직 이르지 못한 경지를 탐구하는 데 힘썼다. 여러 차례 정언·지평·세자시강원사서에 제수되었으나, 모두 거절하고 벼슬에 나아가지 않았다.

이수인은 1648년 다시 지평을 제수하자 부득이 서울에 올라와 왕을 배알하였는데, 그 자리에서 선묘(先墓)에 청가귀천(請暇歸遷)할 것을 상소함과 동시에, 인군의 허심종선(虛心從善)의 도(道)를 아뢰어 나라를 다스림에 있어 무엇보다도 간언을 받아들임보다 중요한 것이 없고, 망국(亡國)의 도(道)는 간언을 거절하는 것이라고 공론(公論)을 널리 수렴할 것을 진언했다고 전해진다.

1649년 성균관직강·사서·지평에 제수되었고, 1653년(효종 4) 사간, 이어 홍문관부수찬에 제수되었으나, 또다시 상소하여 이를 사양하고 시사(時事)를 진언했다. 1654년 홍문관교리·집의·장악원정·사간·부수찬 등에 제수되었으나 역시 나아가지 않았다. 그 뒤에도 여러 차례에 걸쳐 관직이 제수되며 등용이 끊이지 않았지만 모두 사양했는데, 그 당시 이수인이 받았던 교지와 유지 등의 유물이 바로 도승지로부터 보내는 내용들이다.

◇ 유물이 떠나온 곳의 이야기

이번 박물관에서 기탁 받게 된 유물은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발랑리에 있는 연안이씨 부사공파 유택지로부터 떠나왔다. 문장공 이숙함(淑?)을 비롯해 청련공 이후백의 배위 남양홍씨(配 南陽洪氏), 충의공 이유길(有吉), 그리고 함종현령(咸從縣令) 이정길(井吉)공의 유택(幽宅)이 모셔져 있는 곳이다.

묘역(墓域) 입구의 청련사(靑蓮祠)는 광국공신(光國功臣)에 녹훈(錄勳)되어 불천지위(不遷之位)에 오른 청련공 이후백(諱 後白)의 제각이며, 청련공의 평생사적(平生事蹟)을 기록한 신도비가 1985년 건립돼 세워져 있다. 이곳은 청련공의 유택지로 알려져 있지만, 정확히는 증조부(曾祖父) 문장공의 유택지다.

청련공이 공신(功臣)으로 녹훈(錄勳)되어 받은 사패지(賜牌地)인 발랑리 49번지에 이후백의 유택(幽宅)이 모셔져 있으며, 이조판서(吏曹判書)에 추증(追贈)된 조부(祖父) 이세문(世文)을 비롯해, 사복시정(寺僕時正)에 증직(贈職)된 아들 이선경(善慶)이 모셔져 있다.

◇ 과거시험의 답안지와 가계도

이번에 연안이씨종중문적박물관에서 기탁 받은 유물을 보면 이후백과 그의 후손들의 자료로서, 과거시험의 답안지와 가계도를 알 수 있는 호적단자, 그리고 혼례에서 가장 중요한 혼서지 그림이 있어 그 당시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기록이라고 여겨지고 있다. 특히 이후백 요여는 가마형식으로 돼 있으며, 가구의 정교함과 단청이 화려하고 익살스러운 모양으로 그려져 있다.

전북금석문학회장 김진돈 선생과 동국진체연구소장 이용엽 선생, 전라문화연구소 호남권 한국학자료센타 전임연구원 류호석 문학박사 등이 유물을 조사하고 서로 의견을 나누는 자리를 가졌다.

정완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