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분위기 속, 시민들의 시 낭송 이어져.. 가을 감성 듬뿍

지난달 30일 오후 1시 30분, 원광대학교 중앙도서관 1층 복합문화공간에 학생들과 더불어 많은 시민들의 모습이 눈에 띈다. 시민인문강좌의 세 번째 시간, 강연호 시인의 북 콘서트가 열린 것.
강의실이 아닌 자유로운 공간에서, 시민들의 시 낭송과 시인과의 문답 형식으로 진행된 이번 강의에는 시험 기간이 끝난 원광대학교 재학생들과 함께 많은 시민들의 참여가 이뤄져, 시를 통해 깊어가는 가을의 정취와 낭만을 한껏 만끽할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됐다.

#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원광대학교 문예창작학과에서 대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강연호 시인은 이날 북 콘서트의 주제로 자신의 시집 ‘기억의 못갖춘마디’를 들고 나왔다. 시의 이름을 빌려 밥벌이를 하는 길을 택해 지금까지 왔다는 그는 자신의 시를 통해 담백하고 진솔한 삶의 이야기를 풀어냈다.
그는 “흔히들 생각하는 것처럼 시를 쓴다는 창작의 과정이 밤을 새워가며 이뤄지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있는 그대로의 경험에 약간의 가공이 합쳐져서 만들어집니다”며 첫 시를 소개했다.
점심시간 이후, 으레 지루하고 따분하게 느껴질 수도 있었던 강의는 시민들의 즉석 시 낭송이 이어져 재미를 더하며 잔잔하고 차분하게 진행됐다.

# 건강한 슬픔

즉흥적으로 이뤄진 시 낭송, 나이가 지긋해 보이는 흰 머리가 세월의 흔적을 알게 해 주는 한 시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낭랑하다. 잔잔한 배경 음악 속에서, ‘오랜만에 온 그녀의 전화에 대한 이야기’가 맑은 목소리로 전해졌다.
오랜 시간동안 연락이 없었던 사이에 갑작스런 전화, 이어진 침묵 사이에서 전화 저편의 울음과 귀 기울임을 표현한 시에 대해 강연호 시인은 “이 친구는 슬픔을 삭여낼 줄 아는 건강함을 지녔다”고 설명했다.
실화를 바탕으로 쓴 이 시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는 상상에 맡겨졌다.

# 이명의 깊이

가난했던 어린 시절, 병원 한 번 가기도 쉽지 않았던 그때부터 그는 중이염을 앓고 이명을 겪었다고 했다. 유전도 아닌 것인데, 공교롭게도 그의 어머니도 이명이 있었다.
‘한쪽 귀로는 우레가 으르렁거리고, 다른 쪽으로는 기차가 쇄액쇄액 지나가는 소리’
어머니의 이명을 주제로 한 시에서 그는, 귀를 떠나지 않는 이명을 살살 달래가며 더불어 지내는 법을 터득했다. 오랜 가난과 대가족 시집살이 속에서, 늙고 병들어 세상의 시끄러움에서 벗어날 즈음 내면의 시끄러움이 귓속을 차지한 어머니의 깊이를 알게 됐다.

# 맹목적인 사랑, 맹목을 지난 사랑

‘사랑은 맹목을 잃는 순간 사랑이 아니어서, 사랑은 맹목을 지나는 순간 깊어지는 것이어서’
단풍을 주제로 한 시의 한 구절을 듣고, 시민의 질문이 이어졌다. “왜 사랑에 있어 맹목을 벗어나야 합니까? 맹목적인 모습이야말로 사랑 본연의 모습 아닌가요?”
강연호 시인은 “맹목을 버리고 이성적이고 합리적이고 계산적이 되라는 것이 아닙니다. 맹목을 거쳐야 비로소 사랑에 이르게 된다고 표현한 것이지요”라며 웃었다.

# 중언부언의 날들

침묵이 불편해지는 관계, 이를 벗어나기 위해 의미 없이 덧붙이는 말들에 대한 고민이 그대로 드러났다. 중언부언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안부를 물어주는 것이 세상의 인연을 껴안는 방식이라는 이 시는 이날 마지막을 장식하며 강연호 시인이 직접 낭송했다.

# 시민들과의 소통의 시간

첫 시를 감동적으로 낭송한 김호심(72) 씨는 강의를 들으러 전북 부안에서 왔다. 그는 “손위 동서가 익산에 살고 있어 강의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매주 오고 있다”며 “이전에는 대학에 갈 형편이 되지 못해 하고 싶은 공부를 하지 못했다. 저명한 교수님들의 훌륭한 강의를 무료로 들을 수 있으니 너무 좋다. 개인적으로 수필을 쓰고 있는데, 오늘 강의가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고 소감을 밝혔다.

북 콘서트가 끝난 후에는 저자의 친필 사인이 있는 시집이 시민들에게 나눠졌다. 시집을 건네는 시인은 시인대로, 시집은 받아든 시민은 시민대로 서로에게 감사하며 훈훈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송승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