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숨 쉬는 역사의 현장.. 그곳에서의 뜻 깊은 하루
현존하는 최고의 간이역 춘포에.. 역사의 씨앗 뿌리기

◇ 근대문화유산 춘포, 어디까지 가봤니?

촉촉하게 땅을 적셔주는 보슬보슬 봄비에, 여기저기 꽃망울을 터트리는 봄꽃들이 완연한 봄기운을 전해주는 날씨다.

아침나절 눈부신 봄 햇살을 마치 짓궂게 질투하는 듯 오후부터는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기 시작했지만, 일제강점기 수탈이라는 아픈 역사의 현장을 간직하고 있는 춘포 일대에서 도보트래킹을 하기에는 오히려 안성맞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4월의 첫 주말을 맞아 가족 단위로 나들이 겸 아이들 손을 잡거나 유모차를 대동하고 발걸음에 나선 이들이나, 연인의 손을 꼭 부여잡은 채 역사와 문화의 향기가 물씬 풍기는 현장을 데이트 코스로 선택한 이들, 학교에서는 배우기 힘든 아이들의 역사체험을 위해 바쁜 시간을 쪼개 참여한 이들.

모두 저마다의 모습들은 가지각색이지만, 완연한 봄기운과 역사의 현장을 함께 체험해 본다는 설렘 가득한 발걸음은 누구나 마찬가지다.

“이제 어디로 가는 거예요?”

“예전에 일본 사람들이 살았던 호소가와 농장에 가는 길이에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농사를 지으면 강제로 빼앗았던 역사의 현장이지요.”

아직 일제강점기가 무엇인지도 모를 것만 같은 초롱초롱한 눈망울에 잊지 말아야 할 역사의 씨앗을 뿌리고 있는 모습이다.

정확히 그 의미가 무엇인지 지금은 알지 못할지라도, 언젠가는 엄마아빠 손을 잡고 발걸음을 향했던 기억을 회상하며 역사에 대한 바른 인식을 키워나갈 수 있으리라.

짧지 않은 도보트래킹 코스에 드문드문 길에 주저앉아 투정을 부리는 어린아이의 모습마저 정겹다.

모처럼의 봄날 주말에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을 마련한 아빠는 아이의 투정에 기운이 빠질 법도 하지만, 이내 아이를 달래 손을 잡고 다시 발걸음을 옮긴다.

아직까지도 그 옛날의 흔적들이 곳곳에 묻어있는 듯한 곳.

춘포역에서부터 대장교회, 호소가와 농장, 만경강 길, 김성철 가옥(호소가와 농장 주임관사), 대장정미소를 지나 다시 춘포역으로 이어진 이날 행사는, 봄비와 함께 근대문화유산이 살아 숨 쉬는 춘포 일대에서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하기 위한 시민들의 발걸음으로 가득 수놓아졌다.

◇ 빗속에서 뿌려진 역사의 씨앗

‘역사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의 시간여행’

무려 시민 400여명이 참여해 뜨거운 열기를 실감케 했던 이날 행사는 (재)익산문화재단이 독립만세운동의 근원지인 익산에서 식량수탈을 위해 일제강점기 시대에 만들어졌던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간이역 춘포(春浦)역과 인근 춘포지역에서의 도보트래킹 및 우리 겨레의 얼이 살아 숨 쉬는 무궁화 심기 행사를 기획해 마련됐다.

이번 행사는 익산문화재단의 유휴공간의 문화공간 활용 및 콘텐츠 개발을 목적으로 진행되는 ‘근대문화유산 박물관 춘포’ 사업의 일환으로, 온새미로 창의체험지원센터와 익산시 관광두레사업단, 익산시 걷기연합회, 한국공연문화예술연구소, 굿맨 등이 참여해 공동으로 주관했으며 길청소년연구소가 협력했다.

‘역사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의 여행, 봄 나루에 부는 바람’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펼쳐진 행사에 참여한 시민들은, 문화관광해설사의 해설을 들으며 근대문화유산 곳곳을 답사하고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를 실제로 느껴보는 시간을 가졌다.

특히 일반인의 실거주로 그 내부를 구경하기 어려웠던 호소가와 농장(익산시 등록문화재 211호)이 처음으로 개방돼 역사의 현장을 그대로 체험할 수 있는 시간이 마련돼 눈길을 끌었다.

트래킹 도중 내리는 비에 자칫 행사진행이 어려워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행사에 참여한 시민들은 주최 측이 미리 나눠준 우비를 입고 빗속에서도 역사의 현장에 한 발 한 발 발걸음을 이어나갔다.

비로 인해 현장에서 수정된 트래킹은 바로 1인 1무궁화 심기로 이어졌다.

저마다 우비를 입고 춘포역 인근에 마련된 텃밭에 삼삼오오 모여 처음 모종삽을 쥐고 땅을 파고 꽃을 심는 손길에 여기저기 해맑은 웃음꽃이 피었고, 아이들은 자신의 이름이 적힌 이름표를 달며 아픔의 역사를 잊지 말아야 할 우리의 역사로 승화시키는 시간을 보냈다.

한쪽에서는 빗속에서 역사의 씨앗을 심는 현장이 펼쳐졌고, 이와 함께 춘포역사 뒤쪽에서는 추억의 놀이 한마당이 펼쳐졌다.

시민들을 위해 마련한 따뜻한 찐빵 나눔에, 추억의 달고나와 뻥튀기, 공기놀이, 엿 깨기 등이 마련돼 시민들에게 또 하나의 즐거움을 선사했다.

◇ 근대문화유산, 간이역 춘포

기차가 서지 않는 간이역.

느릿느릿, 구불구불한 철길을 달리던 대장역(현 춘포역)의 완행열차는 이미 기억 속 저편 추억으로 사라져버린 지 오래다.

이제는 찾아오는 이들보다 떠나가는 이들이 더 많아, 그 고유의 정취를 잃어가고 있는 많은 간이역들 중 우리나라에서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간이역.

100여년의 긴 세월 동안 수많은 수탈의 아픔과 시련을 겪어내고, 지역 주민들의 생활 터전이었던 춘포역은 이제 역사문화공간으로 거듭나기 위한 발걸음을 내딛고 있다.

익산문화재단에서는 이곳을 건축역사·추억·한국의 간이역 박물관으로 구성해 체험을 통한 현장교육장으로 활용하기 위한 ‘근대문화유산 박물관 춘포’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춘포역을 역사의 명소로 복원하고, 지역 공동체 활성화 및 문화 네트워크 조성을 통해 지역 활성화를 도모한다는 취지다.

이로써 일제강점기 역사·문화적 자산을 체험하고 춘포면 고유의 역사적 특성을 반영해 지역 주민들이 자긍심을 가지고 삶에 활력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아울러 자칫 사라질 수 있는 소중한 근대역사문화 공간을 복원하고 계승·발전시키는데 기여한다는 계획이다.

일제강점기 수탈의 역사를 대표하는 아픈 간이역이지만, 이제는 역사문화공간으로서 새롭게 태어나고 있는 춘포역.

아프고 가슴 시린 이야기, 북적이며 살아왔던 사람 사는 이야기, 애틋한 사랑 이야기 등 춘포역이 간직하고 있는 모습 그대로를 공간에 녹여내 소중한 역사문화공간으로 다시 거듭나길 바라본다.

                                          송승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