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 건축제도와 법식 도입, 삼국 중 가장 뛰어난 수준

# 제석사지의 가람 배치

제석사지는 남북을 축으로 동쪽으로 6도 정도 기울어진 선상에 중문, 목탑, 금당, 강방, 승방을 일렬로 두고 남쪽과 동서쪽에 회랑과 건물로 중심을 둘러싸도록 하는 1탑1금당식 가람 배치를 이루고 있다.

발굴조사 과정에서 가장 특이한 점은 목탑지 북서편에 있는 방형 건물 축기부가 발견된 점이다. 이 유구는 약 8도 정도 동쪽으로 기울어져 있어 금당지나 목탑지, 강당지, 회랑지 등 다른 건물들과 중심축이 약간 다르다.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배병선 연구원은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방형 건물 축기부는 현재의 건축 유구들과 동일한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기가 어렵다”고 밝히고 있다.

# 가람 배치의 변천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2007년부터 2009년까지 발굴조사한 결과를 정리한 보고서에서는 제석사의 가람 변천을 ‘창건가람’, ‘중건가람’, ‘재건가람’의 세 단계로 구분했다.

그러나 배 연구원은 현재의 목탑지를 창건가람의 유구, 금당지를 중창가람의 유구로 보고 있는 점을 문제점으로 지적하고 새로운 가설을 내놨다.

‘관세음응험기’에 기록된 639년(무왕 40)의 화재로 소실되기까지인 7세기 초에는 금당과 7층 목탑, 회랑과 승방을 갖춘 전형적인 1탑1금당식 백제가람으로 추정된다. 이후 639년 화재 직후 다시 절을 짓기 시작해 649년 정도에 중창이 완료된 것으로 추정되고 8세기말까지는 가람에서 목탑이 없어진 기간이다. 이때에도 현재 발굴조사로 나타난 결과와 같이 1탑1금당의 전형적의 백제가람의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이후 10세기까지는 목탑은 소실됐으나 금당과 강당, 회랑, 승방 등의 주요 건물은 여러 번의 수리를 거쳐 계속 경영된 듯하다. 12세기 제석사가 폐사될 때까지는 가람이 매우 축소돼 금당이 없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강당지와 승방지, 동회랑지와 동건물지 등에서 상당한 양의 고려 기와가 출토된 것으로 미루어 이들 건물을 중심으로 가람이 운영됐음을 알 수 있다.

# 익산의 백제건축

발굴조사 결과 노출된 유구의 축조기법에 대한 고찰은 유적의 성격을 좌우하므로 그 중요성이 매우 크다. 현재 남아있는 건물지 유구들은 목조로 구성된 상부의 몸체와 지붕은 없지만, 이들을 분석해 복원하면 건물의 규모도 다양하고 결구법도 상당히 달랐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여러 시기에 걸쳐 수많은 건물을 조영하기 위해 각기 다른 장인 집단이 동원됐다는 사실을 말해 준다.

익산 미륵사지와 왕궁리유적, 제석사지의 건축은 당나라와의 긴밀한 교류를 통해 선진 건축제도와 법식을 적극적으로 도입했는데, 이는 당시로서는 상당히 혁신적인 시도였으며, 무왕의 정치적 행보와 궤를 같이 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 익산을 중심으로 한 백제의 건축 기술은 삼국 가운데 가장 뛰어난 수준으로 여겨졌고, 신라와 왜 등 주변 국가까지 기술자의 파견 요청이 끊이지 않았던 것이다.

송승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