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주절 주절이 얘기한 것들을 종합하여 시대 순으로 재정리해보자. 서동이 마룡지

옆 연동마을에서 용의 아들로 태어나 홀어머니 밑에서 불우하게 성장했다. 신라 서라벌에 잠입하여 ‘서동요’를 저잣 거리에 퍼트려 진평왕의 딸 선화공주를 아내로 맞이하였다.

그리고 몰락한 왕족으로써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드디어 백제 41대 무왕에 등극한다. 무왕은 호족세력을 누르고 왕권을 강화하고자 경제적·군사적 요충지인 왕궁에 궁성을 건립하여 천도하였다. 또한 왕실을 보호하기 위하여 왕궁 인근에 왕족사찰인 제석사지를 창건하였다.

무왕은 선화왕비의 뜻에 따라 사자사 지명법사의 신통력을 빌어 미륵신앙으로 백성을 교화시키고자 미륵산 밑에 국가사찰 미륵사를 창건하였다. 그 주변에는 미륵과 용 신앙과 관련된 지명과 사찰이 에워싸고 있다.

또, 무왕과 선화왕비가 사후에도 오금산 줄기 양지바른 곳 쌍릉에 안치되어 호남땅을 굽어 살펴보고 있다. 미륵산 자락의 모든 유적과 설화가 무왕의 태생에서 왕릉에 이르기까지 미륵신앙과 함께함을 알 수 있다. 

무왕의 정신적 통치기반이자 백제의 영적 중심이었던 미륵은 불교의 3불(과거, 현재, 미래)중에서 미래불(未來佛)이다. 아직 출현하지 않은 유일한 미래의 부처로서 현실의 변혁과 변화를 갈구하는 이들에게 미륵불은 미래신앙으로 선망의 대상이었다. 이 미륵사상은 기독교의 메시아사상과 같은 것이다. 즉 불교의 미륵불에 대한 신앙은 통속적인 예언의 성격을 띠고 있으며, 구원론적인 구세주가 나타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고대국가 백제는 불교 중심의 정교일치 국가였다. 반면 현대국가 대한민국은 헌법에 종교의 자유가 보장되고, 정교분리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시대야 어쨌든 예나지금이나 정치와 종교는 국민과 국가 사이에서 징검다리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무왕의 통합리더십과 미륵신앙의 변혁사상이 21세기 이 땅에 재구현 되어 못다 이룬 대백제의 드높은 이상을 실현하였으면 한다.

또, 사람 모두가 정의로운 사회 속에서 살 수 있고, 정치와 종교가 언행이 일치되는 앙상블을 이루었으면 한다. 3불(불안, 불통, 불행) 사회 속에서 미륵사 창건과 사리장엄 안치와 같은 간절한 염원을 마음속에 담아본다.  

앞선 여러 문헌들을 근거로 할 때 미륵산 일대의 불교관련 지명들이 백제 무왕 때부터 정치적·사회적으로 국가통치와 깊은 연관성을 갖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유물, 기록, 설화, 정신이 이 땅에 고스란히 스며져 1,400여년을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이 지역은 이미 2004년에 경주·공주·부여 등지와 더불어 특별 관리하고, 보존시켜야할 고도(古都)로써 인정받았다.

그 후 백제 무왕 대에 조성된 왕도문화유산에 대한 본격적인 발굴조사가 진행되면서 ‘익산역사유적지구’로 불리고 있다. 이 유적지구가 백제 말엽의 역사를 새롭게 인식시켜준다는 점에서 탁월한 문화적 가치를 지닌다고 할 수 있겠다. 이제는 우리나라의 역사문화를 넘어서서 2010년 1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에 공식 등재되기에 이르렀다. 세계를 향해 비상하고 있다.

이신효 학예연구관은 ‘익산역사유적지구의 세계유산 등재를 위한 학술심포지엄’ 발표에서 익산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될 경우 세계적으로 브랜드 가치가 상승되어 국내·외의 방문객이 크게 증가하고, 이로 인하여 고용기회가 확대되어 일자리 창출과 지역경제의 활성화에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또 문화유산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가치를 알아야 우리 문화유산의 소중함과 보존의 필요성을 스스로 느낄 수 있다며 지역주민의 관심과 참여를 주문하기도 했다.         

시야를 다르게 하면 호남 전 지역은 옛 백제의 땅으로써 660년 백제와 936년 후백제가 멸망하면서 옛 백제인들 사이에는 나라를 빼앗긴 원한이 미륵신앙으로 투영되어 가슴속 깊이 자리하게 됐을 것이다. 익산 지역 미륵산의 미륵사뿐만 아니라 김제 모악산 금산사, 고창 선운산 선운사, 논산 반야산 관촉사 등 미륵관련 대사찰을 떠올려 보면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조선시대 후기에는 수운 최제우가 창시한 유불선(儒彿仙) 합일의 동학(1860년)이 전라도에 전파되면서 개벽과 인내천 사상으로 승화되어 피지배자들의 착취와 억압에 저항한 농민군에 의하여 세계사적인 동학농민혁명(1894년)으로 불타올랐다.

신정일은 <동학의 산, 그 산들을 가다>에서 그 시절 손화중 장군은 선운산 도솔암 마애불 배꼽 속에 있는 그 비결이 세상에 나오는 날에는 한양이 망한다는 도참설(圖讖說)로 민중들을 결집시키는 역할을 하였다고 했다.

어쨌거나 비결 탈취 사건은 암울했던 시대의 모순을 극복하고 후천 개벽을 꿈꾸었던 민중들이 동학과 시대의 현실과 미륵설화를 절묘하게 조화시켜서 혁명의 발단이 되었다.

동학의 뒤를 이어 미륵사상의 요람인 호남 사찰들과 교감을 가진 증산 강일순의 증산교(1902년)와 소태산 박중빈의 원불교(1916년)가 일제강점기 때 창시되었다. 민족 신흥종교로써 빛을 발휘하며 신앙의 한축을 이루면서 면면히 뿌리내려오고 있다.

역사적으로 무수히 짓밟히고 빼앗긴 호남들녘 사람들에게는 진정한 봄이 언제나 찾아 오려나. 전라도땅은 어제도 오늘도 그리고 내일도 끊임없이 새로운 변혁을 추구해 왔고, 열린 세상을 꿈꾸어 오는 것 같다.

채수훈
(익산시청 사회복지전담공무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