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사람들은 미륵산을 한번쯤 바라보거나 자주 산에 오른다. 주등산로가 동서남북 10여 곳에 있다. 내가 이 산에 오를 때 자주 찾는 곳은 천마부대 뒤편 구룡 마을을 지나 사자암 가는 쪽으로 따라 걷는 길이다. 계곡을 건너서 인도포장이 끝나갈 무렵 우측으로 대나무 숲속에 나있는 오솔길을 따라서 발을 내딛는다.

산 중턱에 올라 선 후 계속 비스듬히 수평으로 뻗은 산비탈을 오르다보면 미륵산성과 잇닿는 곳과 만나게 된다. 이곳에서 산성 길을 따라 위쪽으로 걷다가 정상 20m 무렵에서 우측 바위를 타고 곧장 오르면 꼭대기인 우제봉(430m)과 마주서게 된다.

이 길은 사람의 인적이 드물어 한적하며 핸드폰 소음이 없어서 좋다. 오며가며 10여명 안팎으로 만날 뿐이다. 사람의 발길에 채이는 흙먼지도 바람에 날리지 않는다.

산에 오르다보면 소나무와 대나무 숲으로 우거져 있어 깊은 산 중에 들어선 느낌이 든다.

고요함 속에서 걷다보면 지저귀는 새소리, 대숲 바람소리 그리고 솔바람소리가 땀에 젖은 가슴속을 시원스럽게 적셔주기도 한다. 미륵을 향해 오르다 보면 등 뒤 동쪽의 옛 백제의 숨결이 스며있는 금마와 용화산, 왕궁유적지를 바라볼 수 있어서 늘 감회가 새롭다. 혼자 일 때가 더욱 그렇다.

나의 역사문화 산책길이자 마운틴 오르가슴(mountain orgasm, 산정기)을 느낄 수 있어서, 괴테가 독일 하이델베르크 산을 자주 걸었다고 해서 후세에 불리게 된 ‘철학의 길’이 전혀 부럽지 않다. 미륵산 둘레 길에 가면 오감이 즐겁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의 시 ‘꽃’의 일부이다. 이름이 있다는 것,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보여주는 시구이다.

이 가사처럼 미륵산 주변 산을 오르면서 그 지명의 속뜻과 문화유산 발자취를 뒤돌아보거나 속 깊게 음미할 수 있다면 가벼운 발걸음에 한층 더해 옛 조상들의 정신문화 숨결을 느끼지 않을까? 조선 어느 고전에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했다.

즉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지만 사실은 아는 만큼 사랑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천여 년의 역사 발자취가 스며있는 영산 미륵산이 사람들을 보고 손짓하고 있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 지지 않는 그 의미가 되고 싶다며….

미륵산 주변은 우리나라에서도 손꼽을 만한 역사유적지구이고, 세계적으로도 가치가 충분한 문화유산의 종합세트장이라 할 수 있다. 미륵산, 미륵사, 사자사, 용화산, 왕궁, 금마, 제석사지, 석불사… 아! 그 이름들이여! 대한민국 국민의 마음속에 정신적 에너지로 승화되어 새로운 천년의 문화유산으로 영원히 살아 쉼 쉬었으면 한다.

익산문화유산은 과거의 박재된 산물이 아니라 현재의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비춰보는 정신유산이자 색다른 창조와 예술적인 승화작용을 거쳐서 미래의 문화유산으로 거듭 태어났으면 한다.

또, 가장 향토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라 했듯 지구촌의 한류문명으로 키워나가자.
(끝)

채수훈
익산시 여성청소년과,
 사회복지전담공무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