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익산천도 사실이 기술된 관세음응험기를 뒷받침하는 유적들 속속 발견
제석사 심초석
삼국사기에 기록된 백제의 도읍은 온조왕(BC18년~)에 의해 세워진 위례성에서 웅진-사비성으로 이어지고, 의자왕(BC~660)을 마지막으로 막을 내리게 된다.
그런데 43년 전 백제가 사비시대 이후 도읍을 익산에 옮겼다는 설이 제기되면서, 백제의 익산 천도설을 담고 있는 문헌의 신빙성과 사학적 위상을 놓고 학계는 논란에 휩싸였다.
학계는 문헌의 사료적 가치가 약하다는 이유로 논란은 한바탕의 파문에 그치는 듯 했다. 그러나 익산 이곳 저곳에서 문헌에 기록된 내용들을 뒷받힘하는 유물과 유적들이 속속 발견되면서 문헌과 함께 도시의 위상이 재평가되기에 이르렀다.
▣ 금마저 천도설
백제가 익산에 제2의 수도를 세웠다는 설의 효시는 김정호의 대동지지다. “본래 백제의 금마지(金馬只)인데 무강왕때 성을 쌓고 별도(別都)를 두어 금마저(金馬渚)라 불렀다”고 적은 익산 항목 부분이 그것이다.
대동지지의 이 대목은 지금의 부여인 사비를 수도로 두고 익산에 제2수도를 둔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그 뿐, 별다른 언급이 없어 정말 제2의 수도로 두었던 것인지 역사 학자들 사이에서 의견이 분분했다.
그렇게 백제의 제3 천도설이 자리를 잡지 못하고 공전하던 1970년 일본에서 익산을 왕궁으로 기술한 ‘관세음응험기’가 발견됐다. 이 기록을 보면 ‘百濟 武廣王 遷都 枳慕密地 新營精舍’(백제 무광왕이 지모밀지로 천도하고 정사를 새로 지었다)고 기록돼 있다.
관세음응험기에는 또 정관13년(AD639 기해년) 겨울 11월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져 제석정사에 불이 났다는 내용이 기술 돼 있다.
무광왕은 무왕을 뜻하고 지모밀지는 왕궁평의 옛 지명인 지마마지를 뜻하기 때문에 익산 천도설이 점차 힘을 얻기 시작했다.
이때만 해도 ‘관세음응험기’는 관세음신앙의 영적인 체험을 모아 기록한 문헌으로, 신빙성이 떨어진다는 평이 있었지만,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의 발굴조사결과 ‘제석사’라는 명문이 적힌 기와와 목탑터가 발견되는 등 증거들이 하나 둘 드러나 신뢰도를 높일수 있게 됐다.
제석사는 사비기 백제의 절과 동일한 가람배치로 형성되었고, 규모도 매우 큰 사찰이었다. 게다가 목탑지와 금당지 사이의 서편에서 목탑과 축조수법이 동일한 방형건물지의 기초부가 새롭게 발견되는 등 왕실의 원찰이면서 제석신앙을 국조신앙으로 시조를 모신 묘사(廟社) 건물이었을 것에 무게가 실리는 증거들이 확인됐다.
또 제석사지 인근에서 화재로 소실된 쓰레기를 폐기한 유적이 발견되는 등 ‘관세음응험기’에 기록된 내용과 유적지가 일치하고 있다.
또한 미륵사에서 ‘중부을와’라 쓰인 기와가 출토되고, 왕궁에서는 전부·하부기와가 출토되다.
이 기와들은 수도의 행정구역을 뜻하는 5부중 하나로 익산과 수도를 연관 짓는 중요한 단서로 볼수 있어 금마저 천도설에 한발 더 다가설 수 있게 했다.
관세음응험기에 기술 된 대로 수도를 이전 했던 것인지 김정호의 대동지지에 기술된 대로 제2의 수도를 둔 것인지 확신 할 수는 없지만 한때 왕궁 또는 그에 비견되는 궁이 익산에 존재했다는 것을 부정하는 학자는 이제 없다.
▣ 무왕은 ‘쌍릉’에 잠들다.
익산 왕궁은 1989년부터 발굴조사만 20여년 째 이어지며 새로운 유물들이 하나 둘 빛을 보기 시작했다.
고려 충숙왕때 도굴된 것으로 알려져 남겨진 유물이 거의 없는 ‘쌍릉’은 일제 강점기 때 첫 발굴조사가 진행됐다. 조사 결과 부여 능산리 왕릉보다 규모가 크고 내부구조는 부여 능산리 왕릉과 동일한 것으로 나타난 점은 이 쌍릉이 당시의 왕이 잠든 곳이라고 추정 할 수 있다.
게다가 목관은 ‘코야마키’라는 일본산 목재를 사용한 것으로 밝혀졌다. 당시 백제 왕실에서 행해지는 장례에는 ‘코야마키’를 사용했다. 그렇다면 쌍릉의 주인은 무왕과 왕비의릉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평가된다.
익산지역은 지리적 요건 상 군사방어가 용이한 위치에 있다. 북으로는 금강, 동북으로 노령·준령이 험준하게 자리하고 있어, 이곳에 미륵산성(용화산성)을 배치한 완벽하다 볼 수 있는 방어체계까지 구비해 놨다.
사람들이 통행할 수 있는 보도 또는 낙수처리를 위한 폭 1m가량의 부석시설이 있는 남북 234~241m, 폭 3~3.6m의 장방형 궁궐성벽이 발견 되는 등 군사적 요충지로서의 기능도 가지고 있다.
물론 무왕의 성격상 신라를 공격하기 위한 요충지로 익산을 선택했을 수도 있겠지만, 이미 발굴된 유물들의 성격은 도읍으로서의 성격이 강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처럼 익산은 궁궐, 왕릉, 사찰, 성곽 등 4대 요건의 유적이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다. 때문에, 관련 문헌이 대부분 사라져 명확한 고증이 어렵지만 기이하게도 마치 스무고개 놀이라도 하듯 과거 익산천도를 뒷받침 해주는 유적이 속속 발견 되면서 점점 힘을 얻고 있는 것이다.
익산이 옛 백제의 수도였다 아니다를 가를 확실한 기록은 없다. 다만, 익산이 백제 무왕시대의 명실상부한 수도였지만 승리자에 의해 상실된 역사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것은 유물들이 왕도 익산을 증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 고도 보존의 첫걸음
익산은 경주, 공주, 부여와 더불어 2004년 고도로 지정됐다.
공주, 부여, 익산 고도(古都)는 역사적으로 백제 왕도지역을 일컫고 있다. 이러한 고도 유적지는 급격한 산업화와 더불어 유적주변의 난개발이 이뤄지며 원래의 모습을 잃어가게 되었다.
이는 1962년 제정된 문화재 보호법이 개별문화재 중심으로 보호관리가 된 탓이었다. 이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2004년 고도보존에 관한 특별법으로 개별유적보호가 아닌 면적으로 유을 보호하게 된 것이다.
반면 주민의 재산권제한이 뒤따르는 등의 부작용도 잇따를 수밖에 없다.
이에 문화재청은 주민들의 재산손실이나 피해를 최소화하고 국가가 개인 재산권의 합리적 보상 방안과 재원확보 방안 및 제도 운영상의 미비점을 보완해 ‘고도보존 및 육성에 관한 특별법’을 입법함으로서 문화유적보호와 주민이익을 동시에 만족시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박교준 기자
 
김정호의 대동지지 관세음응험기 목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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