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 고유의 명절인 추석이 지나고 쌀쌀한 바람이 아침저녁으로 불어오는 가을, 타향에서 명절을 보내며 살아가고 있는 결혼이주여성들에게 고향과 타향은 어떤 의미일까. 주어진 삶을 잘 영위하기 위해서 어떤 마음가짐일까. 그들은 이국땅의 토착민들에게 어떻게 다가서고, 우리들은 그들에게 어떻게 비춰질까. 그들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 어엿한 시청 공무원, 이두연(34) 씨
2007년에 국내에 들어와 귀화하고 2011년 8월부터 2년이 넘게 익산시 여성청소년과에서 근무하고 있는 이두연 씨를 만났다.
의사소통이 자유롭지 않아 인터뷰가 제대로 진행될까 하는 걱정과 다소 소극적인 모습일 것이란 선입견에 조심스러웠지만, 실제로 만난 이두연 씨는 환한 얼굴에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이었다.
모국 베트남에서 이미 아버지의 권유로 한국어를 전공했던 그는 의사소통에 전혀 어려움이 없이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한국어를 전공하기는 했지만, 실제 쓰는 말과는 많은 차이가 있어 처음에는 어려움이 많았어요. 특히 처음 사투리를 듣고는 무슨 말인지 전혀 알아듣지 못했어요” 라며 웃음을 지었다.
베트남 현지에서 근무차 베트남에 온 지금의 남편을 만나 2007년 초에 결혼을 하고 그해 말에 한국으로 건너온 그는 익산시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1년 동안 통역으로 근무하고 지금은 시청 다문화지원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 그가 없으면 당장 민원인 등과의 의사소통이 어려워져 사무실 내에서 아주 소중한 존재다.
얼마 전 베트남 여성 연맹이 익산시를 방문했을 때는 통역을 전담해서 맡기도 했다는 그는 “일행에 포함된 통역사는 아무래도 사투리나 지역문화를 잘 모르기 때문에 현지에서는 제가 통역 업무를 담당했어요”라는 말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특별한 일을 제외하고는 일 년에 한 번 정도 고국에 간다는 그는 베트남에도 한국의 설날이나 추석과 같은 명절이 있어 ‘만쯩’이라 불리는 떡과 ‘만줌토’라고 하는 메밀가루로 만든 음식을 먹는다고 했다.
“자주 고국에 가지는 못하지만, 다문화가정 30가구 정도를 대상으로 부부자조모임이 있는데 두 달에 한 번씩 만나 아쉬움을 달래고 음식도 만들어 먹는 자리를 마련하기도 해요. 또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사업 일환으로 여성들 모임이 따로 있어 종종 만나요”라며 즐거워했다.
타향에 와서 겪는 어려움에 대해서는 “결혼이주여성들은 누구나 처음에 언어소통이 가장 힘들어요”라며 “한번은 집에 있는데 소독하시는 분이 와서 남편이 때리지 않느냐고 물어봐서 속이 많이 상했어요”라고 토로했다. 이어 “걱정해 주시는 마음을 고맙지만, 아무렇지 않은 작은 말 한 마디가 경우에 따라서는 결혼이주여성들에게는 큰 상처가 될 수 있기 때문에 평범한 한국 여성들과 다름없이 봐 주셨으면 좋겠어요”라고 당부의 말을 전했다.
또 “이주여성들이 한국에 와서 제일 먼저 돈을 벌려고 해요. 근데 경험해 보니 가장 중요한 것은 한국어를 먼저 배우는 것이에요”라고 강조했다. 그렇기 위해서는 “남편이 이해해주고 손잡아주고 시어머니께서 배려해주시는 것이 필요하고, 이주여성 스스로도 자신감을 가져야 합니다”라고 힘 있게 말했다.
의사소통은 물론이고, 자신의 생각과 바람까지 똑 부러지게 전하는 그의 모습에서 자신감이 묻어났다. 마지막으로 찍은 사진에 포토샵을 요청하며 웃는 그의 모습에 저절로 따라 웃게 됐던 흐뭇한 만남의 시간이었다.
# 두 아이를 키우는 워킹 맘, 왕리지에(32) 씨
다문화가족지원센터의 추천을 받아 시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왕리지에 씨의 다문화가정을 방문했다. 남중동 소재 주택가, 약속시간에는 시어머니와 함께 왕리지에 씨, 그리고 다문화가족지원센터의 통역 담당이 함께 자리했다.
다소 앳된 얼굴의 그는 중국 심양에서 2008년 3월 한국으로 건너 온 그는 평소 친분이 있던 조선족의 소개로 현재의 남편을 만나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당찬 엄마다.
왕 씨 옆에서 함께 이야기를 나눈 시어머니의 설명에 따르면 그가 살았던 곳은 심양에서 3시간 정도 거리의 시골로, 익산으로 치면 춘포나 낭산, 함열 정도라고 한다. 그런 시골에서부터 화장품 회사를 다녔던 그는 한국에 와서도 유명한 모 화장품 회사에 근무 중이라고 했다. 그래서인지 피부가 곱다는 칭찬에 수줍게 웃으며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그는 “중국에서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설날과 중추절이 있어, 설날에는 만두를 빚어 먹고 중추절에는 견과류가 들어간 월병을 먹는다”며 “여기에서도 가끔 만들어 드리면 맛있게 잘 드신다”고 자랑했다.
시어머니도 손수 월병을 하나 꺼내 건네며 “며느리가 빚은 만두가 아주 맛이 좋다”며 흐뭇해했다.
또 그는 “고향 중국에는 자주 가지 못하지만, 친정 부모님이 모두 익산에 와 계셔서 자주 뵐 수 있다”고 했다. 결혼이주여성의 경우 친정 부모 초청을 하면 3개월간의 비자가 나오고, 결혼을 해서 아이를 키우고 있는 경우 육아를 이유로 비자 기간 연장이 가능하다고 한다.
실제로 5살과 3살 형제를 키우고 있는 그는 아침에 아들 둘을 어린이집에 보내고 출근해 근무하고 오후 늦지 않은 시간에 퇴근해 아이들을 돌보는 여느 엄마들과 다른 점이 없다.
회사에서나 주위에서의 편견이나 차별이 혹시 있는지에 대해서는 “말을 하지 않으면 다들 한국 사람인 줄 안다. 그래서인지 특별히 다르게 보거나 불편한 점은 없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또 “처음에는 언어소통이 가장 힘들었지만, 이제는 시어머니가 단어 하나만 말씀하셔도 무슨 말인지 다 안다”며 고부간에 눈을 마주치며 웃었다.
현재 그는 다문화가족지원센터를 통해 틈틈이 한국어 공부를 하고 있으며, 육아와 관련된 교육 프로그램에 관심을 가지고 한 달에 한 번 있는 자조모임에서도 육아와 관련된 이야기를 많이 나눈다고 했다.
특히 “고향에 자주 가지 못하는 것은 아쉽지만, 실제로 살기는 한국이 더 편하고 좋은 것 같다”며 “중국에서는 어린이집에 아이를 보내려면 비용이 정말 많이 든다. 근데 한국은 전부 무료이니까 너무 좋다”고 밝혔다.
남편과 시어머니의 배려와 관심으로 큰 불편함이 없다는 왕리지에 씨. 사람들 예의가 바르고 따뜻하며 살기 좋다는 한국에서 자신감을 가지고 당차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어린이집에서 돌아오는 아이들은 맞으며, 아쉽지만 만남의 시간을 마쳤다.
송승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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