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어떤 불화와 갈등을 전제
이방인 의식은 현대시의 시적 주체가 가지는 본질적 양상

지난 27일, 부슬부슬 가을비가 내린 가운데 진행된 인문학 강의는 지난 주 예상보다 많은 시민들의 참여로 모현도서관 지하 세미나실에서 1층 시청각실로 자리를 옮겨 마련됐다.

비가 와 시민들을 위한 배려로 10분여 늦게 시작된 이날 강의에는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류경동 교수가 강사로 나서 ‘한국 현대시에 나타난 이방인 의식’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일제 강점기 시대의 한국 현대시에서 이방인의 발견과 시적 수용에 대한 설명과 질의가 이어졌다.

고려대학교와 원광대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시와 글쓰기를 가르치고 있는 류 교수는 “오늘 강의의 주제가 거창한 것 같지만 심각한 철학적인 사고를 요하는 것이 아니라, 일반인들도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대표 시인들의 시를 통해 강의가 진행될 예정이다”라며 말문을 열었다.

# 타자의 발견과 주체의 생성

일제 강점기의 한국 현대시에서 이방인으로서의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타자의 시선으로 자기를 바라보는 일이며, 그 귀결은 자기 안에서 어떤 ‘낯설음’을 발견하는 일이다.

류 교수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당시 세계로 눈을 돌린 한국의 지식인들 중 박승철, 정석태, 나혜석 등을 예로 들었다. 여행 또는 유학의 목적으로 세계를 돌아본 그들은 조선으로 돌아와 조선의 현실을 낯선 세계로 느끼고, 식민지 지식인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서구의 근대문물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을 함으로써 차이를 발견하고, 차이는 곧 위계가 돼 서양인들을 상위에, 그렇지 않은 인종은 하위에 두게 되는 것이다.

“덕분에 안색이 놀으고 모발이 검으닛가는 동양인이라는 칭호하에 들기는 들지마는 제법한 백인종과 가튼 대우를 밧지 못하나이다.”                                                                      - 박승철, 1927

“그들이 우리를 보기에 얼마나 초라하고 빈약하게 보앗는지”                                  - 정석태

이런 시선은 타자의 시선으로 자신을 응시함으로써 발생되는 것이며, 사양이라는 우월한 대상 앞에서는 위축되지만, 조선 내에서는 ‘근대인’ 또는 ‘세계인’임을 자처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근대 내부로 진입할수록 그들은 자신이 열등한 이방인임을 확인하게 된다. 발전된 서양의 시선으로 조선을 바라보지만, 서양의 발전된 문물과 문화에는 완전히 동화될 수 없음을 인식하게 된다.

# 한국 현대시의 이방인 의식

류 교수는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주체적인 성찰의 방식이 아니라, ‘너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답을 모색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초창기 현대시에서 정체성 모색은 ‘나는 ~이 아니다’라는 자기 부정의 형태로 귀결된다. 부정과 회의, 회피, 자기 연민의 형태로 귀결되는 시적 주체의 모색과정은 이방인으로서의 자기 발견에서 출발한다. 한국 현대시에서 타자의 수용과 시적 주체의 형성 과정은 어떤 어긋남을 내포한다.

# 정지용, 이국체험과 내면형성

1926년 정지용의 ‘카페 프란스’는 교토 학창시절을 배경으로 했다. 이국정조와 낭만적 분위기를 바탕으로 식민지 지식인의 자기의식을 표현했다.

시에 등장하는 “빗두른 능금(삐뚤어진 사과)”나 “벌레 먹은 장미(병든 장미)”는 냉철한 이성의 부재와 열정의 상실을 상징한다. 그것은 나라를 빼앗긴 상태에서 의지와 실천력을 상실한 채 방화하는 식민지 출신의 지식인을 의미한다.

지금껏 이방인이 돼 보지 못한 주체에게 그 자신이 타자이거나 이국적 존재일 수 있다는 관점의 전환을 가져오고, 화자는 끊임없이 외적 풍경의 이국성에 대해 언급하지만, 이 풍경 앞에 서 있는 자기 자신 역시 이국적 존재일 수 있음을 발견한다. 낯선 풍경과 함께 식민지 출신이라는 자의식이 겹쳐지며 “나는 아모것도 아니란다”라는 자기 존재의 부정에는 부재와 결핍의 구조가 자리한다.

# 윤동주의 연민과 성찰의 시학

윤동주는 1942년 ‘쉽게 씌어진 시’에서 ‘인생의 어려움’에 비해 ‘쉽게 씌어지는 시’의 대립으로 부끄러움을 발생시키고, 이 부끄러움은 당시 윤동주에게 자기성찰의 결과이자 동력이 된다.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담긴 보내주신 학비 봉투”나 “늙은 교수의 강의”, “어린 때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등의 표현은 “홀로 침전”하는 화자와 대립하며 부끄러움의 근원이 된다. 이는 근대 초기에 발견되는 서양(제국)에 대한 열등의식이 아니라, 일제 말기 드물게 보이는 결연하면서도 희망적인 시적 귀결에 도달한다.

# 백석의 유랑의 삶

백석(본명 기행)의 시에 이방인으로서의 자의식은 그야말로 끊임없는 유랑의 삶에서 비롯된다. 일본으로의 남행은 ‘유학’을 위한 여행이라면, 만주로의 북행은 ‘생존’을 위한 여행이다. 특히 ‘만주’라는 가능성의 공간을 중심으로 한 북방의 경험은 1940년 ‘북방에서’라는 시에서 나타나는 것으로 보인다.

백석이 다녀간 만주는 더 이상 고구려의 기상이 깃든 곳이 아니라, 조선동포의 참상이 있는 곳이었다. ‘조선인보다 더 천대할 청인이 무수하니까 청인을 싫어하는 심정으로 조선인에게 좀 호의를 두는 것’임을 자각하고, 근원 회귀를 통한 정체성의 탐구가 실제 현실에 의해 좌절됨을 직시하는 데서 발생하는 허무감을 표현했다.

백석의 시가 비속한 현실의 발견과 유랑의 삶을 반영하며, 백석은 삶의 조건에 순응할 수밖에 없음을 인식하지만, 현실과 쉽게 타협할 수 없거나 안주하지 않으려는 의지는 이방인이라는 자의식으로 표출된다.     

송승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