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아스포라 문학.. 지역마다 다른 매우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이야기
상실된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동경.. 진정한 의미의 보편을 추구하는 동력

지난 6일, 원광대학교 숭산기념관에서는 지난주 북콘서트에 이어 인문학 강의가 진행됐다. 도서관 인문학 제1섹션 4회차로 마련된 이날 강의는 원광대학교에서 진행되는 마지막 강의로 대학생들과 함께 많은 시민의 참여가 이뤄졌다.
어느덧 4주차에 접어든 강의실 곳곳에는 낯익은 모습들이 눈에 띄며, 서로 소리 없는 눈인사를 주고받았다.

고려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현대문학(비평)을 전공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고, 한국문학계의 뛰어난 비평가로 활동하고 있는 정은경 원광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는 다소 낯설 수도 있는 ‘한국문학과 디아스포라’라는 주제를 가지고 강의를 마련했다.

# 한국문학과 디아스포라

‘디아스포라’는 흩어진 사람들이라는 뜻으로, 팔레스타인을 떠나 온 세계에 흩어져 살면서 유대교의 규범과 생활 관습을 유지하는 유대인 또는 그들의 거주지를 이르는 말이다.
세계 각지에서 정체성과 민족성을 상실하지 않고 세대교체를 반복해 온 ‘유대인의 이산’을 뜻하는 ‘디아스포라’를 정 교수는 ‘갈등이 있는 지점’이라는 일반 명사라고 설명하며 강의를 시작했다.

이날 강의는 과거 ‘재외 한인문학’이나 ‘외국문학’으로 배제됐던 작가와 작품들을 ‘한국의 디아스포라 문학’의 범주에서 조명해, 그들의 이중 정체성이나 분열적 정체성 등을 있는 그대로 보고, 지역별로 대표적 작가들의 작품을 들여다봤다.

# 재일 - 이회성을 중심으로

한인 디아스포라의 측면에서 재일 한인의 이산의 삶만큼 한국 근현대사의 역사적 질곡과 밀접하게 맞닿아 있는 것은 없기에 가장 중요한 탐구 대상이 된다.
재일 한국인 최초로 아쿠타가와상을 수상한 이회성은 1969년에 단편 ‘또 다시 이길을’이 처음으로 ‘군상’ 신인상에 당선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그의 작품들은 그의 자전적 체험과 재일 한국인의 정체성에서 나온 것이 대부분이다. 사할린에서 태어나 쿠슈와 홋카이도에서 보낸 그의 성장기는 식민지 조선 바깥에서 체험한 일본 제국주의 현장을 겪으며 ‘반쪽발이’ 이회성을 만들었다.

등단 이후 재일 한인 사회를 대표하는 영향력 있는 작가로 역할을 한 그는 70~80년대를 거치면서 보다 넓은 범주로 확대된다. ‘반쪽발이’라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고뇌에서 출발한 그는 점차 ‘개인’에서 ‘민족 전체’로 시야를 확대한다.

중앙아시아의 고려인을 다룬 ‘유역’과 사할린 조선인을 다룬 ‘백년 동안의 나그네’를 통해 그들의 기원이 결국 ‘국민성(국적)과 민족’으로 얽힌 근대국가의 폭력이었음을 깨닫지만, 이를 쉽게 일반화하지는 않는다. 그가 유라시아 대륙을 관통하며 구축하는 초국가적 디아스포라 네트워크는 초국가적 민족 집단이 아니라 ‘탈민족’과 ‘탈국가’ 네트워크다.

# 재미 - 이창래와 돈리를 중심으로

일본과는 또 다른 역사 속에서 형성된 미주 이민 역사는, 다민족 국가 체제라는 점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1990년대 이후 미국은 물론 세계적으로도 주목받은 재미 한인 작가인 이창래는 헤밍웨이 문학상 등 각종 상을 수상한 첫 장편 ‘네이티브 스피커’에서부터 ‘제스처 라이프’, ‘더 높이’를 통해 이민자의 이중 정체성을 탐색하고 있다.
이창래가 역설적으로 자신의 ‘외래성’과 ‘타자성’을 긍정하고 이를 통해 능동적인 삶을 살아가려는 인물을 보여준다면, 돈 리는 반대로 동화된, 혹은 보편성을 향해 나아가는 이주민의 전형을 보여준다.

한국계 미국인 3세인 돈 리는 2000년대 미국 내에서 한인 작가로 이창래와 더불어 주목받은 바 있는 작가이다. 그는 아시아계 미국인의 삶의 초상을 탁월하게 형상화하고 보편적인 삶 전반에 숨겨진 황폐하고 신비한 면면들을 흥미롭게 제시한다는 평을 받았다.

# 생활 속 ‘치유’의 역할

“처음에 거리에 걸려 있는 플랭카드를 보고 교양 차원에서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 참여하게 됐다”고 계기를 밝힌 박예령(여, 모현동) 씨는 친구와 함께 나란히 앉아 강의 내내 필기하는 손을 놓지 않으며 또렷한 눈으로 집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역사 전공을 한 터라 평소 인문학을 비롯한 역사·문화 관련 부분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이런 기회를 유심히 살피던 차에 좋은 시간이 마련돼 기쁘다”면서 “평소 일상 속에서는 눈앞의 일에 치여 주위를 돌아보지 못하고 살아가는 게 대부분인데, 이런 기회를 통해 여유를 갖고 마음이 치유되는 것 같아 첫 강의부터 빼놓지 않고 참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시민들을 위해 강의를 마련해 준 원광대 측과 익산시와 시립도서관의 노력을 높이 평가한다”고 전했다.

강의를 좋은 계기로 삼아 ‘힐링’을 하며 만족해하는 모습에, 흐뭇하고 훈훈한 기운이 엿보인다.                            

송승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