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의 익산천도는 무왕 때보다 120년 정도 앞선 동성왕 때부터 계획됐고, 무왕에 이르러서 실제로 천도했을 것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원광대학교 마한백제문화연구소(소장 안승모)는 지난 10일  국립고궁박물관 강당에서 '백제 말기 익산 천도의 제문제(諸問題 )'라는 주제로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는 3명의 국내 학자와 1명씩의 중국·일본 학자가 나와 백제의 익산천도설와 관련된 주제발표를 했다.

국립김해박물관 박중환 학예연구실장은 '웅진기 백제의 천도 추진과 익산'이라는 주제 발표를 통해 "백제의 익산지역 경영은 웅진기 동성왕대(479~500년)부터 시작됐다"며 "이때 부여와 익산을 제2의 왕도 후보지로 채택해 부여·익산 세력간 갈등관계가 시작됐다"고 밝혔다.

야마모토 다카후미(山本孝文) 일본대학 교수는 "사비성(부여)의 한계점을 극복하기 위해 건설됐던 도성이 익산"이라며 "앞으로 익산시가 천도사실을 밝혀내기 위해서는 주민들의 생활흔적을 찾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그는 이어 "익산에서 발굴된 도성, 묘제, 장신구, 토기와 그 생산체제를 보면, 무왕 때는 동아시아 고대사회에서 가장 성숙한 고대국가로 접어든 상태였다"며 7세기 초 익산이 백제사회에서 어떤 위치였는지를 규명했다.

중국 사회과학원 고고연구소 주옌스(朱岩石) 주임은 중국의 '업성'이라는 지역과 익산을 비교하며 "업성은 동위(同委)의 천도지로 발굴조사 결과 궁성 ,성벽, 성문, 도로, 해자 등의 시설이 익산 왕궁리 유적과 유사하다"며 백제의 익산천도설에 무게를 실었다.

송호정 교수는 익산의 역사지리적 환경과 대동지지, 방여총지, 관세음응험기 등의 기록을 근거로 백제가 익산을 근거지로 삼아 정치군사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의미가 강한 왕도를 건설하고자 노력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최완규 세계유산등재추진위원장은 “백제의 익산천도론 규명은 익산의 백제문화유산이 지니는 역사문화적 정체성을 밝히는 동시에 앞으로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함에 있어서 이들 문화유산의 성격을 규정하는 방향키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이번 학술회의의 쟁점인 백제 말기의 ‘익산천도’의 문제는 1957년 황수영 박사에 의해 제기된 이후 끊임없이 논의되어 온 백제사의 중요한 논쟁 중 하나다.

최근 들어 미륵사지와 왕궁리유적, 제석사지 등과 관련된 새로운 자료가 발굴됨으로써 익산의 역사문화적 가치는 어느 때보다도 활발하게 규명되고 있다.

익산시 유기상 부시장은 "익산이 백제왕도의 천도지였다는 사실은 익산시민들의 정체성 확립과 자부심, 애향심 제고에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 본다"며 "이와 연장선 상에서 시청 공무원들에게도 익산에서 만든 소주를 소비하도록 권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는 이번 회의로 익산의 역사문화적 정체성이 밝혀져 2006년부터 마한백제문화연구소와 익산시가 추진하고 있는 '익산역사유적지구' 세계문화유산 등재추진 작업에 힘을 실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편 익산은 백제 무왕대의 천도지로서 왕궁터, 국립사찰, 산성, 무왕릉 등 백제 왕도로서 갖춰야 할 유적이 모두 확인돼 지난 2월 문화재청으로부터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우선 추진 대상으로 선정됐다.

김경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