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광대학교 교수협의회(회장 이주천)가 취직이 안 되는 11개 학과를 폐지하겠다는 정세현 총장의 결정을 공개적으로 반대하고 나섰다.  

교수협의회(이하 교수협)는 22일 오전 숭산기념관 앞에서 폐지가 결정된 학과 학생 수백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기자회견을 열고 "정 총장의 학과폐지 방침은 학생·학부모·교수들과 협의 없이 내린 독단적 결정"이라며 철회를 촉구했다.

교수협은 "학과 폐지 같은 중대 사안은 법인이사회와 교무위원회, 대학평의원회 등의 심의를 거쳐 신중히 결정해야 하는데, 정 총장은 민주적인 의사결정과정을 무시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특히 "이제라도 회계법인이 실시한 경영진단 결과를 학내 구성원이 공유하고 충분한 시간을 갖고 발전적인 구조조정안을 도출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교수협 관계자는 "요구사항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정 총장 사퇴운동과 함께 1인 시위에 돌입하는 방안을 검토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 경영의 잣대로 재단

교수협은 교육과학기술부가 사학진흥재단에 의뢰해 삼일회계법인이 지난해 말부터 이달 초까지 실시한 경영진단이 애초부터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기초학문을 경영의 잣대로 평가하는 것 자체가 관료적인 발상이고, 일자리 창출을 하지 못하는 정부의 무능을 대학에 떠넘기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특히 문,사,철로 대변되는 전통 인문학이나 음악, 무용 등 예술분야는 전공지식이 재화로 창출되는 데 오랜 시간이 필요하며 취업의 형태도 다양하기 때문에 실용학문과는 구별된 잣대로 평가했어야 옳았다는 것.  

◇ 단순한 등수 매기기

교수협은 회계법인이 지난해 12월 경영진단을 하기 전 정량·정성평가를 병행하겠다고 했지만, 실제로는 대학본부로부터 받은 자료를 근거로 획일적인 평가를 하는데 그쳤다고 비판했다.

계열이나 학과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77개 학과 및 전공에 등수를 매긴 후 5등급(A~E)으로 분류해 최하위 등급을 받은 11개 학과 폐지를 결정했다는 것이다.

또 원광대는 정년을 앞둔 교수들의 강의 비율이 낮은데, 학과별로 이를 고려하지 않고 편의적으로 강의평가 점수를 매겼다고 주장했다.

◇ 독단적 결정

원광대는 회계법인으로부터 결과가 통보되자 11개 학과장을 소집해 일방적으로 폐지결정을 통보한 후 기자회견을 열어 발표했다. 교과부의 최종 통보가 오지 않았는데도 정 총장이 폐과 결정을 기정사실화한 것은 비민주적이고 독단적인 행태이며, 이는 정 총장이 관료출신으로서 교육현장을 이해하지 못한 소치라는 게 교수협의 주장이다. 이에 따라 학생들은 대학본부와 교수로부터가 아닌, 언론을 통해 이 같은 사실을 알았다.

교수협은 또 회계법인이 학교에 요구한 것은 입학정원 10% 정도의 감축이었지, 학과 폐지가 아니었다고 말했다. 회계법인 관계자와 전화 통화했다는 A교수는 "회계법인이 11개학과를 폐지하라고 한 것이 아니라, 지난해 원광대가 입학정원 430명을 줄였기 때문에 그 정도면 11개 학과 정도가 되지 않겠느냐는 의견만 제시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이미 입학정원을 감축한 원광대는 충분한 시간을 두고 구조조정을 할 여유가 있었고, 학과 폐지가 아닌 유사한 학과 통폐합 또는 학과 신설 등 실용적 방안을 도출할 수 있었다는 것.

B교수는 "지난 수년간 원광대에서는 유사하거나 중복되는 학과를 통폐합하고 새로운 학과를 신설하는 방안이 논의됐지만, 본부에서 이를 반영하지 않았다"며 "이번에도 과거의 논의결과를 무시한 채 일방적으로 결정을 내렸다"고 비난했다.

학생 수 감소, 학문 트렌드 등 변화된 환경을 수용하지 않겠다는 학과나 학생, 교수는 아무도 없는데, 굳이 대학본부가 독단적으로 결정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 건학이념 포기

교수협은 마지막으로 이번 학과폐지 결정은 원광대의 건학이념을 포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폐지키로 한 11개 학과는 모두 성숙하고 건전한 인간 형성을 목적으로 한 인문사회 및 예술계열이고 기초학문인데, 원불교가 건립한 종립대학이 이런 학과를 폐지하는 것은 '물질이 개벽되니 정신을 개벽하자'는 건학이념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는 것.

교수협 관계자는 "인문학과 예술은 원광대를 대표할 학문으로 육성해야지, 폐과 대상 운운할 수 있는 학과가 아니다"며 "교수들은 원광대가 건학이념으로 돌아갈 것을 구한다" 고 말했다.     

김경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