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궁(王宮). <익산의 전래지명>을 보면 왕궁면은 백제 때부터 금마저(金馬渚)에 속해오다가 통일신라시대에는 우주현(紆州縣)에 속하였고, 고려시대에는 금마의 일부에 속하였다. 그러다가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제석면(帝石面)과 우북면을 합하여 옛적에 이곳이 왕궁이 있었다는 설에 의거하여서 왕궁면이라 이름 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간행된 익산읍지인 <금마지>에 의하면 왕궁평(王宮坪)은 용화산에서 남으로 내려온 산자락이 끝나는 곳에 있으며 마한 때의 조궁(朝宮)터라는 성터가 남아 있다고 말했다. <동국여지승람>에도 왕궁평은 군의 남쪽 5리에 있다며 세상에 전하기를 옛날 궁궐터라고 기록하고 있다.

<익산향토지3>에서 왕궁리 유적은 왕궁면 왕궁리 탑리 마을 일대에 해당한다. 지형 상으로 미륵산 동편에서 이어진 한 자락의 낮은 능선이 남쪽으로 2km 이상 길게 이어지다가 마무리되는 마을의 바로 북편 능선에 자리하고 있다. 지정면적은 약6만5,700평으로 조사결과 백제시대의 성벽, 석축, 대형화장실, 정원, 공방폐기지 등 다양한 궁성 관련 유구와 왕궁리 5층석탑과 관련한 금당지, 강당지 등 통일신라시대 사찰 관련 유구가 확인되었다.

이 석탑의 내부에서 발견된 사리장엄구 유물일체는 국보 제123-1에서 제123-5까지 지정되어 인근 국립전주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현재에도 옛 흔적을 찾기 위해 땅을 파며 발굴조사는 계속되어지고 있다. 혹시 보물급이 발견되더라도 익산에 박물관이 없기에 또 다시 어디로 떠나야 할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봄에 왕궁 고도를 찾으면 유적지 앞에 흐드러지게 핀 벚꽃만이 화사했던 그 시절 궁성의 옛 영화라도 말해주듯 반겨주고 있다.

하지만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이라 했듯 꽃이 피면 지는 법, 역대 고대국가 치고 망하지 않은 나라가 어디 있었겠는가. 우리는 다만 과거의 역사유물이란 거울을 통하여 현재를 들여다보고 미래로 새롭게 나아가기 위해 유적지를 찾아가지 않을까 싶다.  

역사적으로 백제 말기부터 통일신라시대까지 이곳이 정치·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임이 <삼국사기> 등의 문헌을 통해 널리 알려져 왔다. 이 일대가 마한의 기준(箕準) 천도설(遷都說), 백제 무왕의 금마 천도설 혹은 별도설(別都說), 통일신라시대 안승의 보덕국(報德國) 도읍설(都邑說), 후백제 견훤의 도읍설 등 고대의 왕궁과 관련된 여러 학설이 꾸준히 제기되어 오고 있다. 이 지역에는 다분히 고대국가 통치 이념인 불교와 그 문화가 함께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제석사지(帝釋寺址). 왕궁면 왕궁리 궁평에 있는 백제시대의 절터로 사적 제405호이다. 궁평은 백제 때의 내궁(內宮)터로 알려져 있다. 내궁이란 내원당(內願堂), 내불당(內佛堂), 내궁(內宮)의 성격을 띤 제석천을 주존(主尊)으로 모시는 제석사원(帝釋寺院)을 말한다.

이곳의 터가 제석사라는 것은 왕궁면이 일제 초기인 1913년 이전에는 제석면(帝釋面)으로 불리었다는 데서도 알 수 있다. 고대국가에서 불교는 왕실과 밀접한 관련을 갖고 있었다. 따라서 왕실이나 국가 차원에서 거대한 사찰을 건립하였다. 신라에서는 황룡사가, 백제에서는 미륵사가 그와 같은 성격의 사찰이다. 그리고 고대의 도읍지에는 제석천을 주존으로 모시고 신앙하는 제석사가 있었다고 <익산향토지3>에 쓰여 있다.

제석사지는 중국 육조시대 육고 등이 지은 <관세음응험기>에 의하면 정관(貞觀) 13년(639년) 뇌우로 인하여 불당과 7급부도(七級浮圖) 및 낭방(廊房)이 모두 불탔다는 기록이 전해져서 7층의 목탑과 불당과 회랑 및 승방 등을 갖춘 대규모 사찰로 추정된다.

이 절과 연관된 제석(帝釋)이라 함은 불교의 우주관에서 본 수미산 산정인 도리천에 거주하는 천주로서 호국안민하고 인간의 선악을 주제하는 신으로 숭앙되어지고 있다. 이러한 제석을 바탕으로 한 제석신앙의 사찰 중에 하나인 제석사도 백제 무왕이 창건한 것으로 기록되고 있기 때문에 왕실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렇게 왕실에서 다투어 제석신앙을 숭앙하고 있음은 국조 신앙이 천제 신앙으로 그리고 이러한 신앙이 불교의 제석 신앙으로 전개되어 왕실의 권능을 불교에 의해 신장하고 보호해 나가는 한편 밖으로는 호세 안민을 염원하고자 제석사 창건은 필수불가결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익산의 백제시대 유적은 왕궁리 유적과 제석사지만 보더라도 불교와 잇닿아 있어서, 마치 스마트폰 없는 정보화 사회를 상상할 수 없듯이 불교 없는 백제는 영원히 존재하지 않아 보이는 것 같다.

채수훈
(익산시청 사회복지전담 공무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