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국악원 임화영 명창이 이끄는 ‘산공부’, 더위 잊고 ‘구슬땀’
심곡사 국창 정정렬 추모 떡목공연장, 판소리의 명소로 급부상

한여름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8월, 미륵산 중턱에 위치한 심곡사에 오르자 독경 소리 대신 판소리가 숲을 쩌렁쩌렁 울리고 있다. 맑은 물이 흘러내려오는 계곡과 숲속 여기저기에 자리 잡고 저마다 판소리 공부에 여념이 없는 예비 명창들. 도심에서와 달리 마음껏 소리를 내뱉으며 득음을 향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이들의 열정에 더위도 한 발 양보하는 듯 시원함마저 느끼게 된다.

국창 정정렬이 득음을 했다고 전해지는 심곡사를 찾은 주인공들은 익산국악원 임화영 명창과 제자들이다. 매년 ‘산공부’를 통해 제자들의 소리의 길을 깊이 있게 닦고 있는 익산국악원에서 올해 처음으로 미륵산 심곡사를 ‘산공부’의 현장으로 삼게 된 것. 학생들부터 일반인까지 오로지 판소리에만 몰입해 ‘득음’을 향해 정진하고 있는 뜨거운 현장을 들여다봤다.

◇ ‘떡목’도 득음했던 심곡사

익산국악원이 찾은 심곡사는 판소리와 인연이 깊은 곳이다. 조선말 5대 명창으로 꼽히는 국창 정정렬(1876~1938) 선생이 수년 간 심곡사에서 소리 공부에 매진한 끝에 득음을 했던 곳이기 때문이다.

익산시 망성면 출신의 정정렬 선생은 선천적으로 판소리를 하기에 치명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일명 ‘떡목’이었지만 심곡사에 들어와 혼신의 힘을 다해 수련했고, 이를 극복해 국창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지난 2012년 국내 유일의 사찰 야외공연장인 ‘떡목공연장’이 건립됐으며 매년 국창 정정렬 추모 ‘떡목음악회’가 열리는 현장이기도 하다.

이런 사연이 깃든 곳인 만큼 심곡사를 찾은 익산국악원의 각오도 남다르다.

임화영 명창은 “정정렬 선생님의 뜻을 이어받아 제자들이 심곡사에서 소리 공부를 할 수 있어서 그 의미가 새롭다”며 “매년 다른 지방에 가서 산공부를 해서 아쉬운 점이 있었는데 올해부터 소리의 고장인 익산에서 공부를 하게 돼 더 힘이 솟는다”고 말했다.

심곡사 주지 화평 스님은 “국창 정정렬 선생의 대를 이을 어린 예비 명창들이 산속에서 득음의 경지를 향해 수련하는 한편 인생 공부도 될 것”이라며 “심곡사는 소리 수련의 장소뿐만 아니라 누구든지 찾아와 휴식할 수 있는 공간이며 문화와 전통 계승에도 많은 노력을 함께 할 것”이라고 말했다.

◇ 하루 종일 판소리 삼매경

익산국악원 임화영 명창이 이끄는 ‘산공부’에 매진하고 있는 사람들은 초등학교 학생부터 판소리 전공자, 일반인을 비롯해 고법(鼓法) 수련생 등 20여 명이 훌쩍 넘는다. 최근 최연소 판소리 완창 기록으로 익산기네스에 선정된 이다은 양도 함께 수련에 매진하고 있으며, 멀리 진주시에서도 찾아와 판소리 공부에 하루 24시간이 모자랄 정도의 땀을 흘리고 있다.

지난 1일부터 입산해 수련을 시작한 이들은 오는 20일까지 아침저녁을 가리지 않고 판소리에 몰입하고 있다. 순서대로 임화영 명창에게 개인 지도를 받고 있으며 그 외의 시간은 개인 수련에 몰두한다.

시원한 물이 흐르는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판소리 한 대목을 구성지게 부르거나 숲속이나 떡목공연장 한켠에서 홀로 또는 삼삼오오 모여 판소리에 매진한다. 더위에도 아랑곳없이 심곡사 경내와 미륵산을 가득 채우는 판소리가 종일 그치지 않고 있다.

임화영 명창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연습하면서 목이 잠기거나 쉬거나 하는 일이 반복되면서 자신의 한계를 극복해 나가게 된다”며 “이런 수련을 통해 일취월장하는 제자들을 보는 것이 보람이며 기쁨이고 정정렬 선생님의 뜻을 기려 훌륭한 제자들이 많이 나오리라 믿는다”고 말했다.  

◇ 국악의 명소로 거듭나는 심곡사

경남 진주시에서 찾아와 미륵산공부에 참가한 장미령(예고 2년) 양은 “친구들과 놀러 다니는 대신 산공부에 참가해 평소에 하지 못했던 공부를 하면서 실력이 느는 것을 느끼게 돼 좋다”며 “심곡사는 판소리를 수련하기에 완전 좋은 장소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예비 명창들의 득음의 현장이 되고 있는 심곡사는 익산국악원의 산공부로 인해 벌써부터 판소리의 명소로 소문이 나고 있다. 지난 10여년 동안 지리산, 고창 등 타 지역에서 산공부를 하면서 그 현장이 판소리의 명소로 소문이 났던 효과가 익산에도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지난 2일에는 미국 컬버시와 중국에서 방문한 홈스테이 참가학생들과 학부모들이 심곡사를 찾아 익산국악원의 판소리 산공부에 참여하기도 했다. 소리의 고장인 익산의 문화와 전통을 세계에 널리 알리는 역할을 톡톡히 해낸 것이다.

임화영 명창은 “익산에서 소리 공부를 하고 싶은 마음이 계속 있어서 심곡사 주지스님께 간곡히 부탁을 드려 허락을 받게 됐다”며 “국악을 사랑하는 익산시민들 누구나 참여해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한편, 오는 9월 7일 오후 7시에는 제 2회 떡목음악회가 열릴 예정이다. 힙합에서부터 판소리까지 아우르는 공연에는 임화영 명창, 모보경 명창, 익산시립풍물단 등이 출연해 심곡사 떡목공연장을 흥겨운 한마당으로 만들 예정이다.                        

정완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