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제사리호와 사리봉안기

문헌에 의하면 미륵사는 조선 초기까지 사찰이 유지되어 내려왔다고 전해져 온다. 금마에서 태어난 조선 인조 때 문인 소동명(蘇東明, 1590∼1673)은 시 ‘미륵사를 지나며’에서 이렇게 읊조렸다.  

  옛날의 크나큰 절 이제는 황폐했네.

  외로이 피어난 꽃 가련하게 보이도다.

  기준왕 남하하여 즐겨 놀던 옛터건만

  석양에 방초만 무성하구나.

  옛일이 감회 깊어 가던 걸음 멈추고

  서러워 우는 두견 쫓아버렸네.

  당간지주 망주인 양 헛되이 솟아 있고

  석양의 구름 아래 저물음도 잊었어라.

이 시에서 기준(箕準)은 고조선의 41대 왕으로서 위만에게 쫓겨 기원전 198년경에 금마지역으로 남천(南天)하여 익산 최초의 왕도를 건설하였다. 위 시 첫 구절인 ‘옛날의 크나큰 절 이제는 황폐했네’로 미루어 짐작하건데 조선의 억불숭유(抑佛崇儒) 정책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대가람을 유지하기 위한 재정상태가 여의치 않았는지 잘 모르겠지만 인조 이후에는 폐사된 것이 확실한 것 같다. 기울어져가는 이 미륵사터의 서탑에서 사리장엄구가 2009년 1월 14일에 발견되면서 새로운 백제문화의 부활을 꿈꾸고 있다.   

미륵사지 석탑을 해체하는 과정에 1층 심주석 상면의 방형사리공에 3중으로 된 사리호를 비롯하여 금제사리봉안기, 은제관식, 금제소형판, 청동합 6개, 작은 칼자루 7개, 작은 금괴, 금실, 판유리 등의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사리장엄구가 모셔져 있었다.

사리장엄구란 부처나 스님의 법신(法身)을 다비하여 나온 사리를 봉안하는데 쓰이는 공예품으로 사리를 담는 사리구와 이 사리구를 탑 속에 봉안하는 사리장치를 통 털어 일컫는다

 사리장엄은 화려하게 장식된 금동으로 만든 사리호안에 다양한 유리구슬과 사리 내호 안에는 사리와 유리 조각들이 함께 담겨 있었다. 발견된 해 6월에 미륵사지유물전시관에서 개최된 사리장엄특별전 때 관람했었다.

금빛 찬란한 세공기술이 예술에 문외한이 보더라도 백제인의 미적 가치가 과연 국보급임을 실감할 수 있었다. 1,400년 만에 잠에서 깨어나 백제 미륵사의 신비한 수수께끼를 하나둘씩 풀어주고 있다.

금판에 193자의 글자를 새겨 넣은 <금제사리봉안기>에는 무왕의 왕비이자 귀족인 좌평(佐平) 사택적덕(沙宅積德)의 딸이었던 왕후가 639년 정월 29일에 봉안하며 부처님에게 간절한 기원을 함께 담았다. 그 금판에 새겨진 문구는 이렇다.  

 대왕폐하의 장수를 기원하며 나라는 산악과 같이 견고하여

 치세가 하늘땅과 함께 영구하길 기원합니다.

 불교 정법을 널리 펼쳐 중생이 교화되게 하소서.

 깨끗한 사리는 항상 법계를 밝게 비추는 부처의 몸이라 했습니다.

 무릇 중생들은 마음이 있습니다.

 이 사찰의 사리로 인해 불도를 이루어 성불하길 기원합니다.

왕비는 석탑에 사리장엄을 봉안하며 노쇠한 무왕의 무병장수와 백제의 영원한 발전을 빌었다. 또, 백성들이 불교에 귀의해 부처님의 설법대로 살기를 소원했다. 백제시대 불교가 곧 국가통치의 근간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사리장엄 일체는 보존처리를 위해 현재 국립문화재연구소에 임시보관 돼 있다.

하지만 그 운명은 발견되자마자 태어난 익산땅을 떠나서 국립박물관으로 입양가야 할 처지에 놓여있다.

만약 어미인 미륵사지 석탑과 생이별을 하게 된다면 이곳 시민들은 후손들에게 대대손손 원망의 목소리를 듣지 않을까 괜한 걱정이 앞선다.

보존 장소와 국보 승격이 결정되기 전에 뜻과 지혜를 모아야 한다. 시민들이 문화와 종교를 초월하여 한뜻이 되어 ‘익산국립박물관’ 건립을 두 손 모아 기도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한다. 아프리카에서는 마을의 노인이 죽으면 작은 도서관 하나가 없어진다고 했듯이 익산에서 발굴된 국보가 그 현장에서 없어진다면 위대한 백제 역사문화의 가치가 폄하되거나 그 지역성이 상실 될 것이 뻔해 보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미륵사지를 방문한 관광객들이 그곳에서 발견된 국보를 타 지역에  위치한 박물관에 찾아가서 관람해야 하는 수고로움을 감수해야 한단 말인가? 무엇을 위한 해체발굴이자 누구를 위한 보존과 전시인지 곰곰이 따져보아야 한다.

국민소득 2만불 시대. 국가적으로는 사회부조화와 조세불균형을 바로잡아 국민들이 골고루 평등하게 살 수 있도록 나라의 기틀을 바로 세워야 한다. 즉, 소득수준에 걸맞게 최소한의 기본권과 생존권을 누릴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그러면서 국민들도 물질적 집착에 너무 매몰되지 말고 조금씩 문화적인 삶으로 변화를 추구 할 때 인간적 가치가 넘쳐나는 진정한 생활 속의 복지가 꽃피울 것이다. 경제 강국과 문화대국의 위상에 걸맞게 이제 먹고 마시는 유희문화에서 만지고 떠드는 단체문화를 넘어서 생각하고 느끼는 정신문화를 아름답게 물들여 나가야겠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사리장엄은 국가적으로나 국민에게 있어서 소중하고 고마운 존재의 이유이다.

채수훈
(익산시청 사회복지전담 공무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