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이 고도(古都)로서 정체성을 갖고 미래를 설계하기 위해서는 우선 고도다운 면모를 갖춰야 한다는 것은 꾸준히 제기돼왔던 지적이다.

전통과 품위가 있는 도시라는 느낌, 즉 고도의 냄새를 몸으로 체감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정부가 고도로 지정하고,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오를 만큼 세계가 익산을 역사도시로 인정한 것과는 달리, 고도를 상징할 만한 ‘랜드마크’가 없는 것은 우려할만한 점이다.

미륵사 터와 석탑이 대표적인 유물이긴 하지만 현재 남아 있는 현상만으로 상징물이 되기에는 부족한 듯 보인다. 

역사사문화와 관련된 현상을 보존하거나 복원해 익산시의 '오래된 티'를 회복해야 할  뿐만 아니라, 도시 전체를 고도(古都)에 걸맞게 재 디자인할 필요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고도로서의 도시 재설계

세계 유명 고도와 마찬가지로 익산시 또한 도시 전체를 고도에 맞게 재설계하는 작업이 절실하다. 역사문화유적이 인구가 밀집된 시가지와 떨어져 있기 때문에 더 강조된다.

전주 한옥마을이 전국에서 가장 주목받는 전통마을로 부상하고 '슬로우 시티'로 지정된 것은 도심권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박물관에 진열돼 있거나 주민들과 유리된 특정 장소가 아니라 현재 시점에서 주민과 함께 숨 쉬는 공간 조성이 중요한 이유다. 

익산시는 이런 조건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도시 내부 디자인과 문화역사지구 및 그 주변 지역 등 익산시 전체를 포괄하는 도시디자인이 필요하다.

단순히 문화유적지구를 보전하기 위해 유적 주변에 건물을 못 짓게 하거나 증개축에 제한을 두기 보다는, 신축이나 증개축을 할 경우 고도에 맞게 디자인할 수 있는가, 고도의 이미지와 어울리는가의 여부가 더 중요하다.

따라서 익산시와 타 시군과의 경계지점에서부터 익산 시내를 거쳐 모든 읍면까지 도시 전체를 하나의 도시디자인 대상으로 삼고 포괄적으로 접근해야 할 필요성이 강조된다.

특히 각 부서별로 추진하는 크고 작은 개별 사업에 고도(古都)의 개념이 파고들어야 한다.

도서관이나 특정 공공건물을 지을 때, 공원을 조성하거나 하천을 복원할 때, 공단을 조성하거나 공장을 지을 때조차 고도의 이미지가 숨어 있어야 한다. 이렇게 해야만 따로 예산을 들이지 않고 도시 전체에 고도의 분위기를 조성할 수가 있다. 따라서 익산시청 모든 공무원의 정신적 재무장은 필요충분조건이다.   

전문가 자문을 거쳐 건물뿐만 아니라 도로와 교량, 교통표지판, 각종 안내판, 가로등 하나에까지 신경쓰지 않으면 안 된다. 이를 위해서는 '고도 이미지 디자인'과 관련한 도시계획 조례의 제정이 필수적이다. 역사유적지가 아닌 곳이라도 도시를 재 디자인하는데 규제가 필요할 경우, 주민들의 협조를 구하기 위해 예산을 지원할 경우 근거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독특한 구상 필요

익산시가 국비 또는 시비를 투입해 고도를 복원과정에서는 타 지역과 구별되는 독특성이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 용역회사에서 납품한 것만을 참고하거나 타 시군에서 시도된 것들을 모방하는 차원에 그쳐서는 가치가 지속되기 어렵다. 전문가들과 시민들의 다양한 아이디어를 수렴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익산토성과 금마도토성, 미륵산성, 낭산산성, 용화산성, 어래산성 등 10여개의 성곽을 연결해 '마한백제 성곽길'을 조성하는 것은 익산시만 시도할 수 있는 것이다.

고도 이미지를 접목해 역세권을 개발하거나 호남고속도로 익산 나들목을 백제의 향기를 느낄 수 있게 디자인할 수 있다.

요컨대, 도심지역에 옛 도읍지의 흔적이 없는 익산시로서는 대내외적으로 익산시의 고도 이미지를 나타낼 수 있는 ‘랜드마크’ 건설이 절실하다.

익산시 도심에 위치해 있고 외부인들이 맨 처음 발 디딜만한 곳은 '고속철(KTX) 역사 및 복합환승센터'다. 따라서 철도 역사와 센터 건물을 고도 이미지에 걸맞게 설계하는 것도 랜드마크를 조성할 수 있는 방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스토리텔링과 성장동력

역사문화유적의 복원 및 디자인 과정에서 무리하게 스토리텔링을 시도하는 것은 예산낭비를 불러올 수 있다.미륵사지 탑 해체복원과정에서 서동선화공주 설화는 실재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됐다.

또 대왕묘, 소왕묘라고 부르는 익산 쌍릉은 누구의 무덤인지 학계 의견이 통일돼 있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 무리하게 설화나 추측에 기대 사업을 진행할 경우 낭패를 볼 수 있다는 것. 쌍릉은 아직까지 주인을 확인할 수 있는 증거물이 나오지 않은 상태로, 안내판에 자세한 설명이 필요한 사적이다.

반면, 역사유적과 익산시의 전통산업 또는 성장동력산업을 연계시키는 스토리텔링 작업은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현재 시도 중인 미륵사 석탑과 석재산업, 마한·백제 왕도로서의 화려함과 보석산업의 연계는 좋은 예다. 이외에 국가식품클러스터사업과의 연계성 찾기도 고려할만한 사안이다. 

유적들의 체계적인 연결

익산시 일원에 흩어져 있는 유적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작업도 필요하다. 웅포면에 있는 고분전시관과 금마면에 있는 마한관, 왕궁면에 있는 유적전시관을 시대별, 특징별로 연결해 하나의 관광루트로 개발하는 것.

현재 이들 세 기관은 구별되면서도 연결되어 있지만, 연계체계가 느슨한 편이며, 이런 유적들이 시민들에게 각인되어 있지 않다. 또 석탑, 성곽, 사찰, 향교와 같은 교육기관, 인물, 관아 및 가옥 형태의 문화재 등은 주제별로 묶어 특화시킬 필요성이 제기된다.

투자는 확실하게

익산시는 현재 왕궁면 유적전시관을 국립박물관으로 승격시키고, '고도 복원 및 주민 보상에 대한 법적 근거를 강화하기 위해 ‘고도보존특별법' 개정작업을 벌이고 있다. 또 국비 지원을 받아 올해부터 10년간 금마·왕궁면 일대를 역사문화지구로 정비할 방침이다. 이는 국가의 정책과 비용에 편승하는 행정의 일환인데, 익산시 스스로가 문화관광컨텐츠를 만들고 고도로서의 위상을 세우기 위한 자체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여론이 높다.

민선 4기부터 고도로서의 익산을 강조하고 있는 만큼 역사문화에 대한 확실한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 특히 역사·문화와 관련한 예산은 투입에 비해 결과가 겉으로 드러나기 어렵고, 성과를 내기까지 시간이 많이 소요되기 때문에 자치단체장들이 꺼리는 사업이다. 시장의 확고한 의지가 필요한 이유다. 

김경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