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감(五感) 전부 열고 소통하기
평면 색채 나무에 입혀 새 지평

"떡 잎 하나로 시작된 나무가 몇 사람은 넉넉히 쉴 수 있는 그늘을 만들기까지, 그 세월을 생각하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그 나무가 내 곁에 있다. 난 숨죽여 나무의 노래를 듣는다. 오랜 세월 그가 들은 바람의 노래를.. 그 바람이 전해준 나무의 노래를 조심스럽게 옮겨 본다." 오는 24일 오픈 할 첫 번째 작품전을 준비 해 온 공예작가 박영민씨가 전시 도록에 붙인 머릿 글이다.

3년 전에 공방 '나무'를 열고 나무를 호흡해 온 그는 자신이 의도한 틀에 맞추기 위해 나무를 자르거나 깎는 '작위성'을 배제하는 숨고르기를 중시해 왔다. 머릿 글은 그런 가다듬은 마음가짐에서 출발한다. 오랜 세월 축적 된 개체(個體)의 원형질을 마주하는 경외심, 새로운 만남들에 영락 없이 숨이 가빠지는 오감(五感)의 열림, 몰입하는 자기의 울림과 나무의 울림이 합일될 때까지 기다림, 그런 소통이 있고서야 시작되는 그의 작업이었다.

"나무를 꺼내서 먼지 털고 샌딩하는 과정에서 뭘 하면 좋을까를 생각하는거죠. 그걸 위한 대화 없이는 나무가 원하는 것을 끄집어 낼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하는 그의 말에서 어쩌면 나무의 노래를 듣고 길을 찾는 것이 그가 행하는 작업의 대부분 일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마름질이 최대한 절제 된 그의 작품에서 그런 각성은 더욱 강해진다. 박영민씨는 그것에 대해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균형을 잡느라 안간힘을 쓰기"라며, "조각하나 붙이고 빼는 일은 모자라거나 넘쳐서는 안 된다는 게 작업의 방향성이지만, 누군가는 내 작품 앞에서 작가가 한 일은 무엇이냐고 반문 할 수도 있어서, 가장 잘 어울리는 경계를 찾는데 심혈을 기울일 수 밖에 없고, 그러면서 나무에 박영민이 들어가 있어야 하니, 그런 의미에서 작업은 갈수록 어려워진다"고 고백한다.

박영민씨의 이번 작품들은 나무가 실이 될 수 있고 천이 될 수 있으며, 입체와 평면이 중간 지점에서 안정감을 확보하고 있다는 특징을 보인다. 작품에 퀼트의 질감이 살아있고, 전혀 다른 부재들이 서로 엉겼지만 우연 같은 필연을 자아낸다. 평면에 구사 할 수 있는 색채가 나무에 입혀져 통일성을 획득하며 차별성을 발한다. 그의 작품이 목공예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요소들이다.

그는 이번 전시를 앞두고 보여줬으면 하는 마음과 아무도 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공존한다고 했다. 이번 전시가 도약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희망도 있지만, 자신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것이 다른이들에게 노출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도 있다는 것이다. 그의 목소리로 자아내는 나무의 노래는 다른이들에게 어떻게 들릴까 궁금해진다.

어느 가을 이른 아침 고요한 시간에 잠시 머물러 박영민의 목소리를 들어 본다면, 짧은 만남 긴 이야기에 선문답이 이끄는 일탈을 맛볼 수도 있겠고, 볕좋은 날 오후에 단아한 나무에 앉아 연어의 귀향을 생각하며 고집이 아름다운 당신을 만날 수도 있겠다. 불혹을 지난 박영민은 뜻밖에 어울림을 만나 경탄하고 구석에 앉아 침묵의 시간도 편안한 당신과 커피향 만큼 좋은 나무 향기를 노래한다. 박영민에게 가족은 느티나무이며 행복의 다른 이름이고 기다림이다. 그가 도록 말미에 남긴 마음에서 그것을 엿본다.

“여행으로 치자면 큰 길 놔두고 골목길로만 헤매고 다닌거였다. 그러나 다행이도 그런 부잡스런 취향이 오늘 나를 여기까지 오게 해 주었다. 참으로 감사한 건 그런 엄마 그런 아내를 지치지 않고 응원해 준 가족들이 내게 있음이다.”      

한편, 박영민의 작품전은 오는 24일부터 29일까지 전주공예품전시관 기획관에서 열린다. /고은랑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