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의회 예결위서 지원예산 반영여부 결정

지난 3일께 전라북도의회 교육위원회에서 김승환 전북도교육감의 공약사업인 혁신학교 운영예산을 삭감하자 도내에서 적잖은 논란이 일고 있다.

시민단체나 학부모들은 "교육의 희망을 짓밟는 처사"라고 비난하며 기자회견 및 규탄대회를 열기도 했다.

도의회는 14일까지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계수조정 소위원회 심사 및 의결를 거쳐 15일 본회의에서 도교육청 예산을 최종 의결한다.

혁신학교는 무엇?

혁신학교는 말 그대로 기존의 주입식 교육방식을 혁신해보자는 것이다.

지금껏 학교는 교장과 교사가 중심이 되고 학생과 학부모는 교사들의 가르침과 교장 및 교육청의 방침을 마냥 받아들이는 입장에 있었다.

이런 낡은 교육방식을 교사, 학생, 학부모 나아가서는 지역사회와 함께 하면서 참여와 자율에 바탕을 둔 학교로 변화시키자는 것.

따라서 교사는 자신의 방식에 따라 가르치고, 학습프로그램은 다양하게 편성되며, 학부모와 지역 주민이 마치 교사들처럼 참여해 서로 토론하면서 민주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기본이다.

아이들을 교실 안에 가두어놓고 지식을 주입시키는 것이 아니라, 체험하고, 자발적으로 탐구하고, 학생들 간, 학생과 교사 간에 의견을 교환하면서 개개인의 잠재력을 활성화시킨다.

창조적이며 능동적인 인재로 육성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되면 교실은 단순히 학생 개개인을 모아놓은 곳이 아니라 학생들의 다양한 개성이 발휘되며, 서로 배우고 가르치면서 전체적으로 예상 밖의 큰 효과를 내게 된다.

혁신학교에 대한 철학적 배경은 매우 복잡한 것인데, 기존의 닫힌 구조에서 열린 구조를 지향하는 것이 핵심이다.

교실은 어떤 목표를 정해놓고 이에 매진하는 장소가 아니라, 늘 새로움을 받아들이고 새로운 것을 창조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다. 

지식도 마찬가지. 어떤 확고한 지식이나 진리를 가르쳐주기보다는 기존의 지식을 수용하면서도 그것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질서를 열어가는 과정이다.

학생을 보는 시각도 남다르다. 학생은 단순히 지식을 받아들이는 '미성년자'가 아니라 다양한 개성을 갖고 체험과 사고, 토론, 상호작용 등을 통해 개인의 자율성과 집단의 통일성을 자연스럽게 이뤄가는 존재다.

경제적으로 관점에서 보면, 똑 같은 상품을 대량으로 찍어내는 20세기 방식에서 다양한 상품을 소량으로 개발하거나 맞춤형으로 만드는 21세기의 트렌드다. 1등급 물건을 만드는 경영에서 고객을 감동시키는 경영이다.

정치사회적으로 보면, 힘 있는 몇몇 사람들이 다수의 사람들에게 일방적으로 의사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사람들이 자신의 의사를 윗선에 전달해 관철시킬 수 있는 쌍방향 의사소통과도 같다. 인터넷 혁명이 좋은 사례다.

또 몇몇 권위 있는 사람들이 어떤 방향을 제시해주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주체적으로 사안을 바라보고 해석하며, 창조적으로 규칙을 만들어가는 과정과 흡사하다.

영상에 비유한다면 평면 티브(TV)에서 쓰리디(3D) 입체 화면으로 전환하는 것과 비슷하고, 조직적인 측면에서는 위에서 명령하는 수직적 구조에서 조직 하부 구성원들의 자율성을 강화하고 권한이 아래로 위임되며, 토론을 통해 민주적으로 의사를 결정하는 수평적 구조로 바뀌는 것이다.

하지만 혁신학교는 해당 지역에 맞게 운영되는 것이기 때문에 일률적인 형식이 없는 게 특징이다. 

삼우초등학교의 사례

혁신학교의 정신을 잘 가꾸고 있는 곳이 전북 완주군 고산면 어우리에 있는 삼우초등학교다.
삼우초등학교는 1990년대 말 폐교위기에 처한 고산면 삼기초등학교와 고산서초등학교를 통폐합해 2003년 새로 지은 학교인데, 농촌에 있다 보니 학생 수가 줄어 심각한 위기 상황에 있었다.

이것을 살려보자는 운동이 교사와 학부모, 마을 사람들과 지역의 뜻 있는 인사들 사이에서 일어났고, 결국 도시에서 학생이 들어오는 성공사례가 됐다.

삼우초 학생들은 아침 8시 반에 학교에 들어와 차를 마시며 명상을 하고, 텃밭을 기른다. 뜻 있는 교사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행복을 이어가는 만남'이라는 큰 방향을 정하고 토론을 통해 건물을 새로 짓고 학습 프로그램과 수업방식을 개발했다.

체험 학습을 강조하면서 학생들이 알아서 공부하고 인간과 생명을 사랑하게 만드는 교육을 실시했다.

학교 건물 내부 한 가운데 도서실을 만들고 세미나실과 온돌식 명상방, 극장식 시청각실, 유기농교육실, 목공예실, 도예실, 과학실 등을 마련했다. 교사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공개수업을 통해 노하우를 공유한다. 학교에서 발생하는 비리를 척결하고 모든 중요한 사항들을 회의에서 토론으로 결정한다. 교장이나 교감은 지시하지 않고 안건만 제시한다. 지역행사에 학생들이 다양하게 참여하고, 들녘프로그램을 만들어 전원생활과 식물 기르기를 체감하며 계절학교를 통해 외부인사를 초청해 강의하고 교습하는 프로그램도 있다.

"학교 가는 것을 싫어하는 아이가 얌전해졌고, 스스로 공부하고 남을 배려하는 태도를 갖게 됐다"는 게 학부모의 말이다.

이밖에도 전북에서 성공한 사례도 상당수 있는데, 임실의 대리초등학교, 정읍시의 수고초등학교, 군산시의 회현중학교 등도 자주 오르내린다.  

20곳, 혁신학교로 지정

이 같은 성공사례를 바탕으로 전라북도교육청은 지난달 22일 도내 혁신학교 20곳을 지정했다.
익산시에서는 8개 학교가 신청했는데 성당면 갈산리 성당초등학교만 선정됐다.

이와 관련 익산교육지원청 관계자는 "타 지역보다 (의지가) 좀 부족했다고 본다"며 "혁신학교가 무엇인지를 홍보하기 위해 학부모들을 초청해 홍보 연수를 실시키로 했다"고 말했다. 

혁신학교로 지정되면 학교당 5천만~1억5천만원까지 운영비가 지원된다. 교원 연수, 교육프로그램 운영, 교육여건 개선, 교육과정 개발에 쓰라는 비용이다.

도교육청은 2014년까지 전체 100개교를 목표로 혁신학교 사업을 벌일 방침이다.

이번 혁신학교 지정을 위해 도교육청은 혁신학교추진위원회, 시민단체, 학부모단체, 교육청,

교육계 인사 등 총 9명으로 구성된 심사위원회를 꾸려 서류 심사와 함께 현장 실사를 벌였다.
총 77개 학교가 신청했는데 이번에는 1단계로 20개교가 선정됐다.

인위적으로 "가공한 서류보다는 현지 실사를 통해 교사와 학부모, 지역민들이 얼마나 열정을 갖고 있느냐를 기준으로 판단했다"는 게 도교육청 관계자의 설명이다.

지역별로는 전주시에 서신초 덕일초 덕일중 오송중 우림중, 군산시에는 군산서초, 남원시에는 남원초, 정읍시는 수곡초와 칠보중, 김제시는 금산고, 완주군은 삼우초와 이서초 봉서중, 진안군에 장승초, 무주군에 구천초와 무풍중고등학교, 임실군에서는 대리초 관촌중이 선정됐다.

도의회 예산 삭감

도교육청 살림살이를 심사, 의결하는 전라북도의회는 교육위원회 심사에서 혁신학교 지원예산 16억5천만원과 교사연수비를 비롯한 경비 3억5000만원 등 모두 20억원을 삭감했다. 전액 삭감이다.

교육위원회 관계자는 "혁신학교에 대한 로드맵이 충분히 마련되지 않아 공감대가 형성되지 못했고, 급하지 않은 예산이기 때문에 우선 삭감키로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를 바라보는 도민들의 시선을 곱지 않다.

김승환 교육감과의 정치적인 마찰이 삭감으로 이어진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학부모·시민단체 반발

학부모들은 도의회 교육위원회의 결정에 강력 반발했는데, 예산 삭감뿐만 아니라 이 사안이 정치적인 대결구도로 이어지는 것을 불편하게 생각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한 학부모는 "도의회가 진보적인 교육감과 코드가 맞지 않아 갈등해왔기 때문에 무리한 삭감을 했다고 본다"며 "그러나 이번 사태의 본질은 교육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에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학부모나 시민단체가 반발하는 것을 단순히 김승환 교육감을 지지하는 세력들이 화풀이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잘못"이라며 "우리는 기존의 낡은 교육방식을 혁신하고 아이들이 건전한 인성을 갖고 자율적인 학생으로 육성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반발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익산교육연구회는 지난 6일 성명을 통해 "소통과 협력이 살아있는 학교를 만들자는 게 혁신학교 선정의 목적인데, 도의회가 예산을 삭감한 것은 이런 학부모들의 염원을 무시하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학부모로 이뤄진 비상대책위는 이날 도의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혁신학교 추진은 도내 70여개 학교가 신청할 정도로 공감대를 이룬 사안"이라며 "예산이 삭감될 경우 교육의원 소환운동도 불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북지역 사회단체로 구성된 전북교육혁신네트워크도 이날 기자회견을 열고 "“혁신학교가 경기도에서는 이미 성공사례를 축적해 다수의 기초자치단체에서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며 “도의회는 시대에 역행하는 발목잡기를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또 "도의회가 엠비(MB)식 특권교육의 선봉대를 자처하고 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도 의원 자신들의 재량사업비는 챙기는 이중성을 보였다”고 비난했다. 

향후 전망

도의회 김호서 의장은 6일 학부모 대표들과 마주한 자리에서 교육청이 당초 혁신학교 지정 대상을 10개에서 15개, 20개로 늘렸다는 점을 지적한 뒤 "혁신학교를 안 한다는 게 아니라 10개쯤으로 줄이는 것은 어떠냐"고 반문했다.

참석자들이 반발하자 김 의장은 "학부모님들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한다"며 "결과가 좋은 방향으로 도출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공은 도의회 예산결산특위로 넘어간 상태다. 도교육청 예산안은 오는 13일께 계수조정을 거쳐 14일 의결되며, 이를 바탕으로 15일 본회의에서 최종 확정된다.

상임위에서는 전액 삭감됐지만 여론에 밀린 도의회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주목된다. 의회 안팎에서는 최소한 절반 이상 반영되고 부족한 금액은 추경에서라도 승인되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있다.                     

김경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