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려 34년 만이지만, 마치 어제 만난 것처럼 스스럼없이 함께 추억을 떠올리며 마음을 나누는 이들이 있어 눈길을 끈다.

언제나 어디서나 누구라도 격식 차리지 않고 마음 터놓고 얘기할 수 있는 친구들. 가장 어렸을 때 아무런 경쟁 없이 만난 허물없는 친구들. 고현초등학교 31회 졸업생들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초등학교를 졸업한 지 34년이나 지나 같이 만나기는커녕 소식조차 서로 전하지 못할 정도의 세월이 흘렀지만, 지나간 시간이 그들에게는 전혀 무색치 않게 느껴진다. 시시각각 각자의 소식을 전하고 더불어 마음을 전하고 있는 그들에게서 미소 한 가득 행복이 묻어나기 때문일까.

그들이 졸업 후 처음으로 같이 자리를 하게 된 것은, 지난해 1월 SNS인 밴드가 만들어지면서부터다.

총 270여명에 달하는 졸업 동기들 중 120여명 정도가 밴드에 가입해 활동하고 있다. 가입만 한 채 눈팅만 하고 가는 것이 아니라,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하루에도 수십 건의 게시글이 올라오고 댓글도 실시간으로 이뤄진다.

각자 나름의 소식을 전하거나 평범하지만 소중한 일상들을 공유하고, 댓글을 통해 따뜻한 말 한 마디 건네며 밴드를 통해 그들은 함께 한다는 사실에 감사한다.

잠깐 짬을 내 보며 웃을 수 있는 동영상이나 초등학교 시절 함께 찍었던 추억의 사진을 올리는 센스만점 친구가 있는가 하면, 매일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간추려 올려주는 고마운 친구도 눈에 띈다.

각자 가정을 꾸리고 먹고살기 바쁜 현실이지만, 잠시나마 추억에 잠겨 순수했던 옛날 그 시절로 돌아가는 행복은 자연스레 얻게 되는 덤이다.

이들을 이끌고 있는 동창회장은 주진영 씨.

스스로를 고현마을 이장이라 칭하는 그는 주위 연락이 닿는 친구들 몇몇의 의견을 들어 밴드를 통해 동창들을 한 자리에 모이게 한 장본인이다. 그도 일상이 있고 가족이 있어 책임져야 할 부분이 한 가득인 평범한 가장이지만, 동창들을 위해 선뜻 나서게 된 것은 다름이 아니라 그저 좋아서다. 그저 옛날 그 시절 고현마을을 만드는 것이 그의 작은 소망이다.

마을이장 주진영 회장과 함께 동창회의 살림살이를 도맡아 하는 또 하나의 고마운 친구가 있다. 동창회 총무를 맡고 있는 김기옥 씨는 밴드 모임이 오프라인 모임으로 이어지면서 각종 모임과 행사의 기획에서부터 준비, 진행 등을 책임지고 있다.

지난해 밴드 개설 이후 동창생들의 폭발적인 관심이 이어졌고, 이러한 뜨거운 열기는 고스란히 오프라인 자리로 이어졌다.

지난해 3월 22일 첫 공식모임에는 무려 70여명에 달하는 친구들이 모여 서로 생사(?)를 확인하고 잊지 못할 추억의 시간을 가졌다.

이후에도 익산지역을 비롯한 호남권은 물론이고 서울·경기권, 중부권 등 지역별 팀장 두 명씩이 선발돼 만남을 이어가고 있으며, 이들의 추억 나눔은 이제 국내를 넘어 해외까지 퍼져 나가고 있다.

특히 그저 모여 식사하는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추억의 수학여행을 기획해 단체여행을 다녀오거나 둘레길 탐방, 등산, 삼겹살 파티 등 다양한 이벤트가 마련돼 동창회 모임이 생활의 활력소가 되고 있다는 평가다.

동창생 중 병원에 입원해 있는 친구를 위해 성금을 걷어 전달하는 선행도 하고, 가수로 데뷔하는 친구의 뮤직비디오에 단체로 무료 출연을 감행하는 우정을 과시하기도 한 이들은 어찌 보면 시간을 거스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마을이장 주진영 씨는 “순수했던 그 시절, 동심을 찾고 추억을 되새기고자 하는 마음에 시작했던 동창회가 이제는 삶에 행복을 더하는 생활의 일부가 됐다”면서 “오손도손 친구들과 함께 추억을 떠올리며 아름다운 고현마을을 만들어 나갈 예정”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오는 11일 모교에서 동창회 및 명랑운동회를 기다리고 있는 그들. 손꼽아 간절히 기다리는 날이니 만큼 기대감에 찬 소식들이 밴드에 가득하다.

밴드에서 마음을 전하는 글로, 또 직접 만나 좋아하는 음식과 술도 한잔 나누면서, 사람 사는 향기를 느끼고 있는 그들에게서 행복 가득한 고현마을을 기대해 본다.

송승욱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