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망성면 내촌리 출신인 정정렬(1876~1938)은 조선 말기에 활약한 판소리 명창으로 ‘인류명창’, 국창의 칭호를 받고 훗날 평자들에게 근세의 5명창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어려서부터 판소리에 소질이 있었고 오직 소리 공부에만 전념하여 익산의 심곡사에서 수년간, 부여 무량사에서 수년간 기예를 닦아 점차 소리가 성숙해지고, 다시 공주 갑사에 들어가 40세까지 연마 적공하였다. 이 때 이미 그의 실력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대가를 이룬 그는 마산에 가서 몇 해 동안 후배를 지도하는 동안에 그의 요한 요인은 ‘소리 목’을 제대로 갖추지 못했으나 그 약점을 독특한 음악 해석으로 극복하여 명창이 되었다는 점으로 이해된다.

판소리에서는 고음부의 음역이 좋지 않아 자유로운 소리 표현이 잘 안되고, 소리가 심하게 거친 목을 '떡목‘이라고 하는데 소리꾼으로 대성하기에는 아주 치명적인 조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악조건을 오랜 공력으로 다듬어 내면 거칠면서도 힘이 있고, 소리의 극적인 면을 살려낼 수 있는데, 바로 그러한 가능성을 실제로 확인시켜준 대표적인 명창이 곧 정정렬이다.

그는 세상을 뜨기 직전까지도 입산수도 하는 방식의 득공을 할 만큼 무던한 노력을 기울였다. 1926년에 50세의 나이로 특히 그는 상경하여, 춘향가 중 “일야는 꿈을 비니....”로 시작하는 몽중가로 더욱 유명해졌다.

그는 고종으로부터 참봉벼슬을 제수받기도 하였다. 오랫동안 <춘향가>를 연마하였고, <춘향가>를 새로 짜서 정교한 음악적 특징을 가지도록 하였다. 그리고 이것을 발표하자 많은 제자들이 그에게 <춘향가>를 배우게 되었다.

또한 <춘향전>, <심청전>을 완전히 창극으로 상연하게 된 것도 다 그의 노력의 결정이었다. 당시의 창극발전에 끼친 지대한 공은 독보적인 것이다.

1936년 무렵 그는 창극사의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하는데도 크게 기여하였다. 193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소리의 배역을 나눠 부르는 식의 ‘분창’ 형식의 공연이 주류를 이루었다.

하나의 줄거리가 있는 창극을 여러 날에 걸쳐 연속해서 공연하는 식의 ‘연쇄창극’도 시도되었는데, 처음에는 청중들의 흥미를 끌었으나 점차 관심이 저조해지고 말았다.

바로 이 무렵 정정렬은 창극의 연출을 맡아 기승전결의 구조가 완결되도록 구성하며, 소리꾼들이 직접 연기를 하면서 소리를 불러 소리와 극이 겉돌지 않고 조화롭게 표현한 형식의 창극을 선보여 대성공을 거두었다.

공연장인 동양극장에는 연일 관람객이 넘쳤고, <춘향전>이 큰 성공을 거두자, 그 여세를 몰아 <홍보가>등의 후속프로그램을 속속 발효함으로써 1936년은 그야말로 창극사에 신기원을 마련하였다.

그가 시도한 창극은 오늘날까지 창극의 전통으로 이어져 오고 있으며, 정정렬의 이러한 노력에 주목한 판소리 학자 중에는 그를 ‘현대 창극의 아버지’라는 말로 그의 공로를 평가하기도 하였다.

그의 소리는 눈을 보는 듯이 근경과 정상을 뚜렷하게 밝혀내고 붙임새가 능한 점으로는 당시 누구도 따라갈 수 없었다.

그러므로 판소리 역사의 흐름이란 측면에서 볼 때 본격적인 판소리 발전의 전환은 바로 이 고장 출신의 소리꾼에 의해 주도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빛나는 전통을 지닌지라 각종 판소리 축제와 경연대회가 일찍부터 우리 고장에서 출발하여 육성되어 왔다.

19세기에 판소리 명창의 등용문으로 시작된 ‘전주대사습’이 그것이다. 뿐더러 1931년부터 시작된 춘향제의 ‘판소리경연’ 역시 역사 있는 축제였다.

그런즉 전북은 판소리 전통을 이어나갈 마지막 보루라 할만하다. 그건 어느 고장보다도 판소리에 대한 민중의 관심과 열의가 높기 때문이다.

전국 최초로 설립된 ‘도립국악원’과 각시군 국악원이 많은 후진들을 길러내고 있을 뿐 아니라 실제 판소리 청중으로서도 타 지역과는 달리 노래를 들으며 자연스레 추임새가 터져 나오는 열띤 관경을 볼 수 있다.

익산시는 인류의 명창인 국창 정정렬 선생을 기념하기 위해 마동에 위치한 솜리예술회관에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김수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