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신문 기자 송승욱

“좋을 땐 한없이 좋다. 가진 것을 다 내어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도 서로 맡은 제 역할은 해야 하는 거다.”

20년 전 군인이었을 당시 모 선임이 내게 했던 말이다. 서로 편하고 좋은 관계가 됐어도 지킬 것은 지키고 해야 할 일은 해야 좋은 관계가 지속된다는 얘기다.

익산시는 이번 익산시의회 회기에 공유재산관리 변경계획안을 제출했다. 함라 장점마을 집단 암 발병의 원인으로 지목된 비료공장 부지 매입 등이 내용인데, 관련 예산이 들어간 추경안도 동시에 제출했다. 절차상 하자다. 위법이다.

집행부나 의회나 변경계획안이 먼저 의결된 이후에 관련 예산이 편성돼야 한다는 점을 안다. 관련 법령과 조례가 명시하고 있다. 불과 5개월여 전에 이미 한바탕 소동이 있었다.

이번과 마찬가지로 지난해 말 집행부는 변경계획안과 예산안을 같은 회기에 제출했고, 의회는 부시장까지 소환 출석시켜 잘못을 따졌다. 집행부가 스스로 절차를 위반하면서까지 아니 될 의회의 의결을 요구한 탓이다.

담당 국·과장은 물론 부시장까지 공개석상에서 잘못에 대해 사과했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다고 여러 차례에 걸쳐 약속했다. 결국 사태는, 변경계획안은 원안 통과시키고 관련 예산은 집행부 스스로 삭제 요청하는 것으로 일단락됐다.

그런데 이번 정례회에 같은 사태가 다시 벌어졌다. 일각에서는 의회가 농락당했다는 비아냥도 나온다. 의회 전체 차원에서 추경안 심의 보이콧이라도 해야 할 판이다. 그런데 좋은 게 좋은 거라고 넘어가려는 분위기가 엿보인다.

함라 장점마을 공원조성을 위한 예산의 경우, 전국 뉴스에 오르내리고 주민들이 절실하게 원하고 있다는 점이 의회 압박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불법에 동조하지 않고 정해진 원칙과 기준대로 예산을 삭감 처리하면 주민들의 원성은 의회의 몫이 된다.

집행부가 그런 점을 교묘히 파고들어 시민들의 요구라는 명분하에 예산안과 변경계획안을 동시에 내밀고 생떼를 쓰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그저 적당히 사과하면 이번에도 넘어가겠지 라는 안이한 판단도 배제할 수 없다.

5개월여 전 부시장이 거듭 재발방지를 약속했고, 1달 전 의장단 간담회에서 시장이 직접 1차 추경이 아닌 2차 추경 검토를 주문하기까지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복됐다. 이보다 더한 무시가 있을 수 있을까.

서로 사이가 아무리 좋아도 감시와 견제가 의회 본연의 임무다. 특히나 이번 사태는 불법이다. 게다가 의회까지 불법을 저지르라고 부추기고 있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해야 한다. 불법은 불법이라고 지적하고, 오히려 주민요구사항이 반영되지 못한 결과에 대한 책임을 집행부에 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