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맥지청소년사회교육원 이사장

이강래

우리는 양은냄비다. 너무 쉽게 끓어오르고 너무 쉽게 잊어버린다. 왜들 그렇게 참지 못하는가?
그렇게 ‘빨리 빨리’를 입에 달고 다니다가 요즘에 와 조금씩 반성하는 기미를 보인다. 압축 성장 뒤에 오는 여유일 수도 있다. ‘느림의 철학’을 생각할 만큼 우리나라도 선진국에 진입했다는 생각이 든다. 천천히 음미하고 관조한다. 방송매체에서도 맛 기행이 제법 재미가 쏠쏠하다 한다.

미소와 같은 느림 속의 여유는 어머니의 품처럼 편안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러한 가운데서도 깨달아지는 것이 하나 있다. 나의 본질은 무엇인가란 물음이다. 그래서 되묻는다. ‘양은 냄비면 어때? 내가 바로 양은 냄비인데?’라고 생각하며 나는 양은 냄비의 이로운 특성들을 찾기 시작했다.
결국 내가 양은 냄비인 것이 스스로 마음에 들었다. 무엇이든지 바로바로 끓여준다. 찌개도 끓여주고 라면도 끓여준다. 급하면 얼른 밥도 지을 수 있고 계란찜도 간단히 해치운다. 화덕에 올려놓자마자 후다닥 끓어 버리는 그 화급함이 왜 나쁜가?
그릇 중에 양은 냄비처럼 다용도이면서 편리한 것은 없다. 양은 냄비처럼 가볍고 ‘열효율’좋은 놈도 없다. 굴러 떨어져도 깨질 것을 염려할 필요조차 이 놈은 없다.
약간 찌그러져도 제 나름의 모양새를 갖고 언제나 ‘출동태세’다.
무엇이든지 타이밍 맞추고 주인님 눈동자를 맞춘다. 지금도 대충 5000만개의 냄비가 대한민국 여기저기서 보글지글 끓고 있지 않은가?
그래서 어쩌면 빨리 빨리 IT산업을 일궈내서 평택에 P6을 기획하고 G4칩에 속하고 쉽게 사계절을 이겨내서 명품 방화 힛트작을 연발하며 전천후로 적응하는지 모른다.

그렇다. 쉽게 말하고 너무 쉽게 잊어버리는 것도 그다지 나쁘지 않다. 모두 다 마음에 담으면 실수를 하지 않는 대신 좀생이, 안달뱅이, 남 속 후려 파는 악질애비 맞다 꼰대 되기 안성맞춤이다. 카페에 꼰대라떼도 등장했다.
이 엄청난 세상과 인생을 앞에 놓고 아무데나 줄자 들고 선을 그으면 안 될 일이 다. 다만 제대로 하는 것이 중요 할 뿐이다.  예컨대 ‘슬로푸드’운동은 단순히 음식물을 천천히 씹어 먹자는 운동이 아니다. 자연스럽게 천천히 만들어진 식재료로 음식물을 만들자는 운동이다. 약품이나 유전자 조작으로 속성 재배된 음식물을 먹지말자는 운동인 것이다. ‘슬로시티’운동도 마찬가지이다.

세상은 상대적일 뿐 아니라 조화의 관계에 다다른다. 먼저 자신에게 정직해야 하며 매사 열려 있어야 한다. 물리적 속성에서도 빠르면 에너지가 생기는 것이고 느리면 무게가 더 실린다. 빠르거나 느리거나 성실히 자연스럽게 사는 것이 중요한 일이다.
여기서 ‘자연스럽다 ’는 컨셉은 급한 것은 빠르게 생각하고 중요한 것은 느리게 행동하되 다만 자기 절제가 필요하다는 것인지 모른다. 급하고 조급한 만큼 돌아서서 그냥 잊어버리면 된다.

한번쯤 분주하고 바쁜 일과 속에서 마음을 비우고 발길을 멈추어 본다. 낯익은 풍경들이 갑자기 낯설어지면서 뵙게 되어서 영광이라고 명함을 내미는 것 같다.
빠르다고 나쁘고 느리다고 모두 다 좋은 건 아니다. 정답은 역시 자연의 속도다.
음악에도 빠르고 느림이 있다. 알레그로와 안단테가 없으면 음악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더 빠르거나(모데라토) 더욱 느리게(아다지오) 리듬을 주어 아름다운 곡이 연주될 수 있는 것이다. 무엇이 정답인가? 앞으로는 이런 질문하기가 쉽지 않을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