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지익산키퍼트리 이사장 이 강래

모든 사물은 알과 껍질로 되어있다. 그런데 먼저 껍질이 보이고 그 속의 알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먼저 껍데기가 중요한 것처럼 대접받고 점점 껍데기 치장에만 매달리게 된다. 성형수술이 성행하는 이유가 그 하나다. 그래서 속 다르고 겉 다르다는 이야기가 일상적으로 쓰여 지는가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알맹이가 있어야 껍데기가 있다는 사실이다. 내용이 차고 넘쳐 들어나는 껍데기가 진짜 이미지다. 본질을 간과한 채 알맹이도 없이 디자인만 덧씌우기에 급급하니 디자인의 본말이 전도될 뿐 아니라 그 정체성 또한 간 곳이 없게 된다.
모든 것이 턱없이 부족했던 지난 시절에는 먹어도, 먹어도 채워지지 않았다. 그래서 무엇이라도 채워 넣어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 시달렸다. 우선 껍데기만이라도 빨리 그럴듯하게 바르고 싶은 허욕이 앞섰다. 바로 그 허기가 탐욕을 불러왔다. 그 동안 우리는 앞만 보며 달려왔다. 어느새 우리 사는 세상에는 껍데기의 탐욕만이 도처에서 활보한다.

익산 툴 게이트에서 시내로 들어오다 보면, 크고 조잡한 원색의 광고타워들을 만나게 된다. 차로 몇 분만 달리면 중심에 들어서는 소도시인데도 주변의 전원과는 조금도 호흡하지 못하는  디자인 색채와 거인 같은 글씨체에 소시민들은 무력하게 굴복하고 만다. 물론 서울의 이태원 거리를 즐비하게 감아 도는 정체불명의 번들거리는 철제 장식물도 예외는 아니다. 거기에 어떤 철학이 있다한들 누가 얼마나 공감하겠는가? 또 시내 도로 양쪽 상가를 뒤덮고 있는 원색의 광고문구들!!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다. 하나로 주변에는 오래 전 옮겨 놓은 꽤 훌륭한 조각들이 도로변을 장식하고 있는데 그것마저도 지나친 채움 때문에 허허롭기만 하다. 껍데기를 예쁘게 치장하려는 마음이 앞섰지 그것이 이 도시의 진정한 알맹이를 고민한 흔적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들 조각들이 도시의 비움과 잔잔히 대화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앞으로도 수십 년 같은 자세로 그 시간과 공간을 차지하고 있을 조각의 모습과 그 조각을 선택의 여지없이 쳐다보아야 하는 시민들이 서글프다. 차를 타고 달리면서 감상하다보니 예술을 바라보는 시선이 곧이어  또 다른 예술품으로 방해받는다. 결국 조각예술이라는 존재감이 사라지고 생각할 여유조차 없이 또 하나의 조각품이 포개진다. 느낌과 생각의 여백이 들어 설 구석이 없는 것이다. 공간 그 자체를 호흡으로 생동함으로 인정하지 못한다.

그렇다. 비워져 있는 공간을 채우면 또 다른 아쉬움이 남는다. 한번 뱉어버린 말들이 그렇고 지금까지 열심히 달려 온 길이 아쉽다. 그 갈증을 없애려고 또 다시 덧칠하고 두꺼운 옷을 입힌다. 하지만 칠할수록 공허해지는 것은 알맹이 없이 껍데기만 찾는 사람의 숙명이다. 찰흙으로 열심히 몇 날을 세워 자기를 구워내니 안이 뻥 뚫여 있다. 이 허무한 공간이 진정한 가치였다. 쓸데없이 덧칠해진 곳을 찾아 원래의 공간을 되살려주면 여백이 살아날 것이다. 무언가 채우고 싶었던 욕망의 껍데기를 긁어내면서 우리의 무리한 탐심도 지우면 다시 그 속에 아름다움이  자리 잡을 것이다.
우리는 내려놓음으로서 더 중요한 것을 경험하게 된다. 비워진 곳에서 넉넉함을 만나고 채움의 집착을 벗어나 새로운 창조의 세계를 경험하게 된다.
화가는 빈 캔버스에 그림을 그린다. 음악가는 깨끗한 오선지 위에 악보를 적어나가고 달리기 선수는 아무도 없는 트랙을 노려보며 힘찬 고동의 자기 숨을 고른다. 우리들은 텅 빈 백사장이나 광장 앞에서 맘껏 달리고 싶은 새로운 에너지를 느낀다.
비워진 곳은 창조의 공간이고 위대함을 꿈꾸는 새로운 무대이다. 그렇다 무대에 올라 가고 싶은가? 그러면 지금부터 내려가 보아야 한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