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처벌할 필요성이 있는 ‘사건’을 고르기보다 잡아넣고자 하는 ‘사람’을 고르게 된다는 점이다. 법전에는 수많은 범죄가 규정돼 있으니 검사는 거의 모든 사람에게서 작은 법 위반 행위라도 찾아낼 수 있다. 사람을 선택한 뒤 그에게 혐의를 적용하기 위해 법전을 뒤지거나 수사관에게 조사를 시키는 식이 된다. 검사가 싫어하거나 괴롭히고 싶은 사람 또는 사회적 혐오 대상을 선택하고 그들의 범죄 혐의를 찾는 방식이야말로 검찰권의 가장 큰 남용 위험이 도사린 지점이다.

두 개의 비판이 있다.

문재인 대통령을 공산주의자로 칭한 사람에 대해 명예훼손을 인정한 법원의 판결이 역사의 비극에 갇힌 독재적 산물이라는 박경신 교수의 비판이 그 하나다.

또 하나는, 검사는 ‘사람’이 아닌 ‘죄’를 봐야 한다는 지표를 재확인하면서, 이 지표를 견강부회로 악용하는 것을 경계하는 박용현 논설위원의 비판이다.

박 교수는 우리 사회와 정치권의 과잉 문제를 짚었다. 우리가 처한 분단과 냉전을 정권 유지의 수단으로 삼았던 우파의 오류를 지금은 좌파가 범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우파의 독재는 순응하지 않는 사람들을 찍어 누르는 방식으로 존재했는데, 그 도구가 국가보안법이었다. 체제와 이념이 다른 책을 읽었다고 또는 그 근처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도 용공 분자가 되었다.

독재 정권은 눈에 호기심이 가득한 청년들에게 ‘공산주의자’라는 낙인을 찍고, 죄를 씌우기 위해 밀실로 끌고 가서 갖은 고문으로 죄를 시인하는 서명을 하게 했다. 더러는 그 가혹한 폭력을 받아내지 못해서 법정에 서보지도 못하고 숨을 거두는 일도 다반사였다.

청년들의 눈은 빛을 잃었다. 그 암울한 시간 속에서 그러한 폭압은 사회적 공포 게이지를 높였고, 사람들은 그 철권통치를 ‘안보’와 ‘안정’을 위해 필요한 수단으로 받아들이거나 오인함으로써 안식을 얻을 수 있었다.

우파의 독재가 장기화하면서 그런 환경은 더욱 심화했고, 정부의 온갖 심의가 강화되었다. 가수나 사람들은 슬픈 노래조차 부르지 못했고, 각가지 이유에 의해 금서(禁書)들이 양산되었다. 심지어 사람들은 말도 가려서 해야만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가 원수를 모독한다거나 정권을 비판하는 모든 행위가 제한되었다. 그 기준은 독재 정권이 정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말이 왜 그렇게 평가되었는지 알지 못한 채 끌려가서 경을 쳤다. ‘종북세력’이라는 누명은 그야말로 ‘천형’과 같았다. 독재 정권의 명예를 훼손한 사람은 이 세상 바닥을 기지 않고는 살아갈 방법이 없었다.

이 같은 독재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가 치른 대가를 돌아보면 치가 떨린다. 더는 견디지 못하던, 차라리 죽어서 벗어나고 싶던 그 분노를 형용할 수 없기에. 그 많은 울부짖음과 피를 흘려야 했던가. 그 참혹함이란 기억의 문을 닫고 싶어지기에.

우파는 제 버릇을 개에게 주지 못했다. 지난 20년간 좌·우의 진퇴가 거듭되면서 우파란 ‘종북몰이’를 포기하지 않는 종자들이라는 사실을 재확인해야 했다. 그들이 뿌리내린 토양은 ‘불안’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 이 좌파 정권의 법정이 대통령에게 ‘공산주의자’라고 칭한 사람을 처벌하는 판결이 나왔다. 이는 반세기 이상을 이 땅에서 살아온 모든 이들의 기억에서 ‘독재’를 소환하는 키워드가 되었다.

이 사건을 기소한 검사는 여전히 진영논리에 갇혀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사건이다. 박 교수가 ‘문재인 공산주의자’에 대한 형사처벌은 역사의 비극으로부터 너무 많이 배우려다가 역사의 비극 속에 갇히는 사례가 될 것이다라고 경고하는 까닭이다.

이 같은 판결을 뒤집어 보면, 우파 정권은 독재 정권이 악용한 종북몰이가 정당성 하다고 인정하는 판결이 아닐 수 없다. 이 정권은 ‘민주주의를 공부하듯 공산주의를 공부하는 것이 자유다’고 말하던 우파가 아닌가.

담당 검사가 문재인을 공산주의자라고 칭한 죄보다는 그렇게 말한 사람이 어떤 진영에 속해있는지를 기소 판단의 기준으로 삼지는 않았는지 의심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우파 정권의 국가원수 모독죄 처벌과 무엇이 다른가. 더구나 명예훼손 형사처벌은 세계 각국에서 사문화하거나 폐지하자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는데 우리의 좌파 정권은 그런 변화에 마저 둔감해 보인다.

우리가 경험한 바와 같이, 공산주의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결의만으로 가득 찬 사회는 자본주의의 착취로 나아갔다. “양극단 사이에서의 진동이야말로 진정한 비극이 될 것”이라는 박 교수의 말이 큰 울림을 갖는 이유다.

그런 의미에서 박 교수의 “이제 ‘공산주의’를 포함한 다른 진보적인 사상들, 즉 사회주의 등등은 우리 사회가 절대로 언급해서는 안 되는 극악의 지표로 남게 될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번 판결을 절대로 진보적인 판결이라고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특히 ”명예훼손이 형사처벌의 형태로 존재하면 기소와 압수수색만으로도 피의자들의 삶을 피폐화할 수 있는 검찰은 쉽게 권력 연장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박 교수의 말은 무엇이 진보의 길인가를 뚜렷이 보여준다.

박용현 논설위원은 미국 연방 검찰총장을 지낸 로버트 잭슨(1892~1954)의 다음 연설을 인용한다.

“검사라는 직책의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는 사건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검사가 사건을 고른다는 것은 곧 피고인을 고를 수 있다는 뜻이다. 바로 이것이 검사의 권한에 내포된 가장 큰 위험이다. 즉 처벌할 필요성이 있는 ‘사건’을 고르기보다 잡아넣고자 하는 ‘사람’을 고르게 된다는 점이다. 법전에는 수많은 범죄가 규정돼 있으니 검사는 거의 모든 사람에게서 작은 법 위반 행위라도 찾아낼 수 있다. 사람을 선택한 뒤 그에게 혐의를 적용하기 위해 법전을 뒤지거나 수사관에게 조사를 시키는 식이 된다. 검사가 싫어하거나 괴롭히고 싶은 사람 또는 사회적 혐오 대상을 선택하고 그들의 범죄 혐의를 찾는 방식이야말로 검찰권의 가장 큰 남용 위험이 도사린 지점이다. 여기에서 법 집행은 사적인 것으로 전락한다. 기득권·지배층이 싫어하는 사람, 잘못된 정치적 태도를 지지하는 사람, 검사에게 혐오스럽거나 방해가 되는 사람들이 진짜 범죄자를 대체하는 것이다.”

박 위원은 잭슨은 이와 같은 ‘사람’이 아닌 ‘죄’를 봐야 한다는 명제로 검사의 막강한 재량권을 어떻게 독립적이면서도 책임 있게 행사할 것인가에 대해 답했다고 평가한다.

‘죄’를 좇아야 검찰이 바로 설 수 있다

그러면서 우리 법조계의, 특히 특수통 검사 출신 변호사들은 스스로 여전히 우리의 검찰이 ‘죄’가 아닌 ‘사람’을 보고 있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점, 나아가 법정에서 공식적으로 ‘검찰이 특정 대상 기소를 목표로 정해놓고 수사를 진행했다’고 주장하는 기막힌 현실에 경악한다.

이 같은 행태는 검찰의 집단적 경험의 소산이다. 박 위원의 말마따나 ‘죄’가 아닌 ‘사람’을 기소의 기준으로 삼는다면 검찰 내부에 ‘봐주기 수사’가 만연하더라도 이상할 것이 없다.

우리는 저 전직 특수통 변호사들이 말하지 않아도 검찰이 정권의 시녀 노릇을 하면서 사람을 목표로 정해 수사하고 기소한 사건들을 무수히 보아왔다. 검찰이 기소한 억울한 사람들이 무죄를 확정 받고 혹자는 수사 과정에서 생을 등졌으나 결코 책임진 바가 없는 검찰도 지켜 보아왔다.

우리가 공수처 신설 같은 사법개혁을 말할 때 우리 가슴 속에서 메스꺼움을 일으키는 지점에 검찰의 삿된 동기가 도사리고 있다.

잭슨의 통찰은 검찰의 지표를 제시하고 있다. 검사는 ‘죄’를 좇아야 하고, 두 극단에서 늘 성찰해야만 비례성을 견지 할 수 있다. 그것은 무엇보다 국민적 신뢰를 회복하는 길이다.

박 위원의 다음 말은 오늘 검찰이 금언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검사는 본래 역할을 다할 때 사회에 최선의 기여를 하는 권력이지만, 악의나 비열한 동기로 행동할 때는 최악의 권력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