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코로나 때문인가. 올해는 자연재해들이 유난히 많은 데다 그 양태가 재앙에 가까웠고, 말세의 전조를 보는 듯했다. 23일에는 인도에서 메뚜기떼가 출현하더니 같은 날 멕시코 남부에 7.4의 지진이 발생했다. 7월 10일에는 러시아에서 전례 없는 산불이 나고, 다음 달 5일에는 열대성 폭풍이 미 동부를 강타했다.

지난해 12월 말일, 중국에서 코로나가 발생했다. 우리는 올 연초까지 그것이 신종 감기려니 했다. 고작해야 신종 플루나 사스일 것이라고, 방역을 촘촘하게 잘하면 몇 달 안에 이 바이러스를 우리 주변에서 완전히 박멸하리라고 생각했다.

오히려 우리의 관심을 끌었던 것은 새해 벽두에 발생한 인도네시아 홍수, 호주 산불, 필리핀 화산폭발 같은 자연재해가 우리들의 관심을 끌었다. 1월 20일 국내 첫 코로나 확진자가 나온 이래 거의 매일 한 명씩 확진 판정을 받아 같은 달 20일 일곱 번째 확진자가 발생할 때까지도 왕년의 농구 스타 ‘코비 브라이언트’ 헬기 사고나 강도 7에 가까운 터키의 지진에 더 놀랐다.

1월 마지막 날 영국이 유럽연합을 탈퇴하는 브렉시트 단행 소식에 세계가 충격에 빠졌고, 2월 7일에는 트럼프의 탄핵 위기 소식이 타전되면서 세계 주식시장이 요동쳤다. 우리의 막연하고도 안일한 바이러스에 대한 인식은 그렇게 외부 세계의 문제에 일희일비하는 근원이었다.

우리의 평온은 기민하고도 철두철미한 국가의 방역 시스템에 힘입은 바 크다. 해외 코로나 확진자 발생 추이에 비하면 국내 확진자 발생 규모는 걱정할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정부의 투명한 코로나 발생 정보 공개와 확진자 동선 추적과 방역 활동 덕분이었다.

21대 국회의원 선거 초입에서 들려 온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오스카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에 온 국민이 한껏 쾌재를 부를 수 있었던 이유다. 그러나 우리는 2월 16일 대구 신천지 교회에서 집단으로 코로나 감염자가 나오면서 만만치 않은 재앙과 마주해야 했다.

코로나는 수도권과 대구 등지에서 들불처럼 번졌다. 급격한 감염 상황은 병상 부족과 의료인력 부족 사태를 불렀다. 우리는 지방의 의료인력들이 코로나 현장으로 뛰어들어가는 긴박한 전선을 목도 하게 되었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했을 때 나타나는 민족의 본능이었다.

2월 27일, 유럽에서 코로나가 급속한 확산세를 보인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우리는 이 코로나의 위험성과 가공할 생존력을 직감했다. 재난 컨트롤타워가 개인 방역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국민이 그 필요성을 절감하면서 마스크 사태 불안 사태가 닥쳤다.

같은 달 28일에는 전국 초중고가 개학을 연기했고, 방역 당국은 3월 8일부터 119개국의 한국 입국을 금지했다. 12일에는 WHO가 코로나19 팬데믹을 선언했고, 16일에는 전 세계가 스포츠 경기들을 잇따라 연기했다.

그런 가운데 국내에서는 코로나 확산세가 진정국면에 들어서는 듯 보였다. 이때까지도 우리는 코로나가 그리 오래지 않아 완전히 잡힐 것이라고 믿었다. 3월 23일 터진 N번방 아동 청소년 성 착취 동영상 파동에 온 나라가 들썩였다. 다음날 일본이 도쿄올림픽 연기를 선언하고, 4월 11일에는 전 세계 코로나 확진자가 170만명이나 발생해 10만명이 사망했지만 우리의 일은 아니었다.

그쪽은 방역망이 허술해서 그럴 것이라고 여겼다. 우리의 방역체계 아래에서는 안심해도 된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더 나은 일에 대한 사회구조의 변화에 더 집중했다. 4.15총선 결과는 180석을 차지한 민주당의 압승이었다. 우리는 어떤 안건이든 단독으로 처리 할 수 있는 슈퍼 여당을 탄생시켰다.

우리는 5월 7일 이후 코로나로 인해 우리 삶의 양태가 달라질 수 있다는 걸 예감했다. 이날 이태원 클럽발 코로나 집단 감염 사태가 벌어졌다. 전날에는 세계의 중심국가를 자부하는 영국이 최다 코로나 사망자를 냈다. 우리는 스스로를 돌아보며 시나브로 코로나에 잠식된 우리를 발견했다.

코로나를 막는다고 ‘단절 지상주의’를 따랐지만, 코로나는 여전히 우리 내부에 엄존했다. 그사이 우리는 생계 기반을 잃고 활력을 잃었다. 정부는 5월 13일 사상 최초로 전 국민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했다.

그래서 우리가 코로나 이외의 문제에 대해 깊이 고민하지 않는 태도를 갖게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우리의 피로도가 높은 탓도 있었거니와 코로나가 그걸 허용하지 않았다. 중국이 홍콩시위대를 탄압한 날 국내 쿠팡 물류센터가 코로나에 집단 감염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6월 초순에 들어 미국 경찰에 의해 흑인이 사망하고 미국 내에서 폭력 시위가 벌어져 무정부 상태가 되거나 6월 16일 김정은의 북한이 남·북 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해도 남 일 같았다.

코로나 때문인가. 올해는 자연재해들이 유난히 많은 데다 그 양태가 재앙에 가까웠고, 말세의 전조를 보는 듯했다. 23일에는 인도에서 메뚜기떼가 출현하더니 같은 날 멕시코 남부에 7.4의 지진이 발생했다. 7월 10일에는 러시아에서 전례 없는 산불이 나고, 다음 달 5일에는 열대성 폭풍이 미 동부를 강타했다.

새로운 인류

절박하고 각박한 토양에서는 기회주의가 싹튼다. 절박한 상황을 볼모로 삼는 탐욕에 눈이 먼 비정상이 자란다. 8월 14일의 의료계 파업은 그 전형일 것이다.

날씨도 미쳐 날뛰었다. 6월부터 시작되었던 장마는 8월 16일까지 54일간 이어지며 한국 사상 최대를 찍었고, 한숨 돌리는가 싶던 22일에는 태풍 ‘바비’가 한반도를 강타했다. 중국에서는 3달째 홍수가 계속됐다.

이날 이후 우리 사회는 8월 22일 사랑제일교회가 촉발한 코로나 ‘집단감염’ 연쇄 현상의 공포에 빠져들었다. 28일에는 사회적거리두기가 2.5단계로 격상된 가운데 같은 날 전 세계 코로나 확진자은 2,400만명에 달하고 82만명이 사망했다.

9월 첫날에는 태풍 ‘마이삭’이, 7일에는 ‘하이선’이 한반도를 강타했다. 10월 30일에는 터키와 그리스에 7.1 규모의 강진이 닥쳤다.

12월 3일에는 국회에서 내년 예산 558조원이 통과된 가운데, 코로나로 인해 거듭된 재난지원금 지원 등으로 국가채무는 사상 최대인 956억원에 이르렀다. 7일에는 영국이 첫 코로나 백신을 대량 접종해 코로나 종식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는 희망을 갖게한 가운데, 12일 현재 전 세계 코로나 확진자는 7,150만명에 달하고 159만명이 사망했다.

미국, 독일, 프랑스, 중남미 지역이 백신 접종을 개시했고, 우리나라도 1,600만명분의 백신을 확보했다. 그러나 우리 중 누구도 이 백신을 신뢰하지 않는다. 백신의 임상기간이 충분하지 않은 데다 코로나는 계속 생물학적 구조를 바꾸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 변종은 무증상 숙주에 잠복하고 옮겨간 숙주의 몸속에서 끊임없이 분열하며 우리 곁에 머물 것이라는 공포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최근 며칠 동안 코로나 확진자 수가 1,000단위를 오르내리고 있다. 코로나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가 모든 면에서 완전히 달라져서 새로운 인류로 거듭나야 한다는 지표를 2020년의 대미에서 재확인하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