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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8호 진정성이 무너진 시대의 ‘우리’

편집국장 공인배

돌이켜 보면 우리는 극단의 위험 국면에서 더 높이 뛰어올라 위험을 피할 수 있었다. 한계를 경신할 수 있는 근육이 자라는 것은 우리의 체질이다. 우리가 그렇게 위험을 극복하고 그 너머로 이동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에 대한 믿음으로 연결되었기 때문이다.

연결 또는 ‘결속’은 생존과 진화의 유전자다. 그 ‘우리’는 누구인가. 4.19에서 4.16에서 혹은 지금 이 사월에서 확인되는 진정성 있는 ‘너와 나’다. 널리 이롭게 하며, 오늘을 내일에 부끄럽지 않게하며, 남과 내일을 위해 나를 기꺼이 희생하는 ‘나’의 집합이다.

위험에 처한 ‘우리’를 조건 없이 구하려하는 ‘나’의 생존 체제, 그것에 대한 믿음이 ‘우리’를 지탱해 온 것이다.

그것은 존재의 근원 혹은 존재의 질서와 같은 것이어서 극한에도 견디는 힘이며, 산산조각이 나도 다시 재편되는 원동력이다. 우리가 목을 조르는 권력을 뿌리치고 단장(斷腸)의 상실를 딛고 일어선 후에, 부당한 권력을 무릎 꿇리고 우리에게 상처 주지 않을 정부를 세울 수 있었던 힘은 거기에서 비롯한다.

우리는 또 그렇게 코로나19를 극복할 것이다. 그런 다음에는 유해 바이러스가 전혀 두렵지 않은 방역체계를 세울 것이다.

4월은 격변의 달이다. 60년 전 4.19 의거가 체제의 변화를 촉발했다면, 6년 전 4월 16일에 발생한 세월호 침몰 사건은 정부의 재난대응시스템 개혁의 단초가 되었다. 코로나19에 맞서는 우리의 오늘은 그 사월정신이 집약 된 토대 위에 있다.

거리의 광장에서 뜻을 모았던, 불의가 퇴출 될 때까지 물러서지 않았던, 그 사월의 의식은 오늘도 치러지고 있다. 스스로 바이러스의 집단 숙주가 된 신천지 교회 탓에 바이러스의 온상이 된 대구로, 도시의 길목으로 마치 운명에 이끌리듯 달려간 사람들이 바이러스의 침범에 육탄으로 저항하고 있다.

사람들은 사회적 거리두기로 옹색해진 가운데서도 물심양면의 뜻을 보탠다. 절망을 희망으로 변환하는 저력이다. 온기 한 조각을 보태는 일에 너나 할 것 없고, 사회적 약자들이 더 자기 주머니를 뒤진다.

어떻게든 공동체 누리에 한 구실을 하겠다는 의지들은 우리를 서로 끊임없이 이어주는 유전(遺傳)의 동인(動因)이 아닐까 한다.

위험에 처한 ‘우리’를 조건 없이 구하려하는 ‘나’의 생존 체제, 그것에 대한 믿음이 ‘우리’를 지탱해 온 것이다.

우리는 또 그렇게 코로나19를 극복할 것이다. 그런 다음에는 유해 바이러스가 전혀 두렵지 않은 방역체계를 세울 것이다.

그렇다면 2020년 4월은 무엇을 바꿔놓을까. 총선 이후에 우리가 당도할 변곡점은 어디일까. 사흘 앞으로 바싹 다가온 4.15총선은 세상을 얼마나 바꿔놓을까.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정부를 의심한다.

궁극적으로는 ‘우리’를 의심한다. 우리가 삶의 척도로 삼아왔던 ‘나’의 내면이 혼탁해진 탓이다. “우리는 여전히 나와 우리의 양심을 믿는가”라는 질문 앞에서 단선적으로 대답하지 못하는 이유다.

우리가 함께 가던 길 위에서 주변을 둘러보면 우리는 형편없이 무너진 우리의 대오를 발견하게 되는 탓이다. 우리의 열기는 여전한데 각기 다른 목적으로 흩어지고 있다.

무엇보다 최전선에서 열성을 다했던 ‘우리’중 일부는 권력이 되었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였다. ‘우리’가 거는 기대는 컸다. 그들은 ‘우리’의 확장이었고 우리의 뜻을 펼칠 힘을 가지는 ‘우리’였기에.

그러나 그들은 권력에 취해 ‘우리’를 이탈했다. 정치공학적 계산을 앞세운 위성정당 꼼수를 펼치며, 국회 의석 과반 이상을 차지하는 거대정당이 되도록 압도적으로 지지해 달라고 호소한다.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두 거대정당의 진영논리는 4.15 총선의 중심 의제가 되었다. 군소정당들의 목소리는 그 난전에 밀려 벼랑 끝으로 몰렸다.

다양성의 시대에 정치생태계는 오히려 진영의 전면전에 교란 되고있는 것이다. ‘다양성을 전제하는 사회가 민주사회’라는 명제는 그 획일화의 반대편으로 격리되었다.

우리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는가. 우리 중 일부는 배신감에 가슴을 친다. 절망감에 광장을 떠난다.

‘우리’를 배신한 그들은 ‘우리’의 적이 되었다.

준연동형비례대표제’는 패스트트랙을 동원하여 극적으로 세운 게임의 법칙이다. 거대 양당이 주도하는 대결의 정치를 완화하기 위해 소수 정당의 의회 진출을 돕자는 취지였다. 여러모로 불완전하지만 그나마 ‘민주사회’로 가는 선거법개정이었다.

그러나 민주당과 통합당은 ‘위성정당’을 만들어 소수정당의 설 자리를 빼앗음으로써 그 결사항전의 결과물을 형해화시켰다.

어떻게 이룩한 선거법개정인가. 민생을 담보하는 국회 파행의 장기화로 지리멸렬하던 끝에 가까스로 쟁취한 21세기 대한민국의 성과물이다.

민주당은 이 연동형비례대표제를 요구하는 정의당을 이용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법을 제정했다. 통합당이 ‘청와대의 검찰 장악 기도’라고 반대했지만, 민주당은 정의당의 진정성을 방패로 삼았다.

지금 민주당은 어떤가. 원했던 것은 지키고 마지못해 동조했던 것은 버리는 패륜을 저지르고 있다. 더이상 ‘우리’가 아닌 것이다.

개정된 선거법을 변칙과 탈법, 꼼수가 가능한 법으로 전락시킴으로써 80년 이래 ‘우리’가 청산하려 했던 ‘그들’이 된 것이다. 역대 최저의 투표율을 기록할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하지만 ‘우리’는 또 정치개혁과 사법개혁의 퇴행을 막기 위해 진영을 선택해야 하는 기막힌 지형에 서 있다.

‘우리’의 덕을 잃어버린 우리가 어떻게 변화의 기폭제로 작동 할 수 있을까. 보이지도 않고 소리도 내지 않는 적 앞에서는 당장 생존을 위해 우리 스스로에 대한 고민을 뒤로 미룰 수 밖에 없다. 4.15 총선은 그런 와중에 불쑥 다가왔다.

우리가 그토록 피하려고 했던 퇴행의 물결에 우리는 속수무책인 것이다. ‘우리’가 누구인지를 잊어버린, 왜 존재하는지를 망각한 현주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