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스스로 등불이어서 행복한 우리다. 저마다 눈을 뜨고 길을 비추니 우리의 길이 열렸다. 이 길의 노정에서 우리는 완전히 다른 문명을 이룩할 것이다.

저마다 스스로 맑아지고, 저마다 맑아지게 하는 본보기가 되고, 오염된 것들을 씻어내는 물이 되어 아래로 아래로 흐를 것이다. 흐르는 것은 끊임없이 섞이고 변하지만, 고이지 않으니 부패하지 않고 우리에게 해로운 것을 만들지 아니하는 도도한 문명이 저 아래에서 이룩될 것이다.

저 아래에서 만난 우리는 또 쉬지 않고 약동하며 저마다 함께 살기를 도우리라. 그곳은 생존의 문제란 너와 나를 분리하지 않으며, 누군가는 멈추고 누군가는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는 진리가 공유되는 세상이리라.

어떤 종교에도 속하지 않은 입장이다. 그런데 이맘 때가 되면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들의 현상에 사로잡히게 되는 건 왜 일까. 초목에서 움이 트고 꽃이 피었다 지고 신록으로 번지는 것으로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엄연한 질서가 드러나기 때문일까.

거리거리에 매달려 바람에 흔들이는 때 아닌 연등이 낯설지 않은 것은, 온기가 연못의 수심에 더하고 더하여 연뿌리에 닿으면 새순이 돋고 물밖으로 이파리를 벌리고 마침내 꽃이 피리란 걸 직관하기 때문일까. 왠지 4월 말일의 석가탄신일이 오묘하게 느껴진다.

사람이란 오고가는 것을 사유하게 될 때 한 순간의 철학자가 된다. 필경 태어나면 늙어가고 종국에는 죽음을 만나게 된다는 불변의 진실과 마주치는 탓이다. 그 시선의 끝에는 시나브로 죽음에 다가가고 있는 삶의 가치란 무엇일까 하는 질문이 있다.

공교롭게도 코로나19가 엄습한 상황이다. 우리는 매순간 우리 안에 잠재해 있던 생존전략에 눈을 뜬다. '나'와 '너'가 다르지 않고, '너'가 있어야 '나'가 있다는 생존의 원리가 가까운 거리에서 발견된다.

남을 돕느라 자신을 돌아볼 겨를이 없는 생존의 첨병들이 도처에 존재한다. 그들은 '남을 이롭게하면 나도 이로워진다'는 공동체의 정신보다 앞선다. 담지자의 정신이다. 그들 내부에 내장되어있던 장치는 순명(順命)의 순간을 감지하면 작동하고 위험에서 벗어날때까지 그치지 않는다.

우리는 뜻밖에 닥친 코로나 환란 속에서 역설적이게도 '그들' 때문에 살맛이 났다. 우리 가운데 그 살맛을 나누려는 이들이 점점 늘어났다. 암담한 칠흑 속에서 하나둘 켜지던 등불이 점점이 늘어나더니 이제는 만방에서 빛나고있다.

스스로 등불이어서 행복한 우리다. 저마다 눈을 뜨고 길을 비추니 우리의 길이 열렸다. 이 길의 노정에서 우리는 완전히 다른 문명을 이룩할 것이다.

저마다 스스로 맑아지고, 저마다 맑아지게 하는 본보기가 되고, 오염된 것들을 씻어내는 물이 되어 아래로 아래로 흐를 것이다. 흐르는 것은 끊임없이 섞이고 변하지만, 고이지 않으니 부패하지 않고 우리에게 해로운 것을 만들지 아니하는 도도한 문명이 저 아래에서 이룩될 것이다.

저 아래에서 만난 우리는 또 쉬지 않고 약동하며 저마다 함께 살기를 도우리라. 그곳은 생존의 문제란 너와 나를 분리하지 않으며, 누군가는 멈추고 누군가는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는 진리가 공유되는 세상이리라.

스스로 도우며 함께 부대끼는 이런 세상이야말로 생불(生佛)들이 사는 곳이 아닐까. 함께를 이루는 계율은 따뜻해야 하니, 그 계율이 공동체의 리듬이 되고, 공감하고 공명하는 그런 신명나는 세상은 우리가 혹은 종교가 도달하고자 하는 곳이 아닐까.

누구도 부정하지 못할 것은 그 지점이 모든 종교의 교집합이며 생존에 필요한 전략이라는 점이다. 그보다 먼저 생존본능의 반응체계 혹은 행동체계라 할 법도 하다. 그것은 과학이나 지식에 앞선다. 코로나19가 그것을 명증한다.

백신은 없고 언제 개발될지 모르지만, 우리는 공동체의 힘으로 맞섰고, 결국 극복해나가고 있다. 미지의 적은 우리의 세포를 교란하고 세포를 복제 도구로 삼아 증식을 거듭했지만 적을 우리들 일부에 가둘 줄 알았다. 더 이상의 확산을 막는 것에 집중할 줄 알았다. 그 나머지를 포기하고 극한의 고통을 감내할 수 있었다.

과학에 앞선 생존의 가치

그것은 과학이나 지식, 혹은 이념과 무관하게 작동했다. 저 바다 건너에서 오랫동안 개인주의를 구축하고, 그 개인주의에 대한 지식이 일반화 된 세상은 적 앞에서 무방비상태였다. 목하 쓰러져가는 그들은 의료 혹은 과학에 대한 막연한 신봉자들이다.

그들은 단적으로 교만의 댓가를 치르고 있다. 과학은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인간의 행위가 원래 품고 있던 소중한 의미를 하나씩 빼앗아간다고 했던 톨스토이가 부활하는 오늘이다.

"인간의 머리 위에 하늘의 법칙이 있고, 또 하나는 그에 필적하는 휼륭하고 귀한 세계가 인간의 내부에도 있다. 전자는 자연의 법칙이고 후자는 인간의 도덕률과 같은 것이다. 그러나 시대는 그것들의 연관을 파괴하고 나아갔다"던 칸트의 유지가 귀해지는 오늘이다.

'지(知)'라는 것이 가치에서 떨어져나가 전문적으로 분화되고 그를 통해 반대로 개인의 주관적 가치는 객관적 근거를 가질 수 없게 되고, 그 결과로 대립되는 여러 가치들이 영원히 다투게 될 것이라던 막스 베버의 예측을 통해 오늘 생각하게 된 '삶의 가치'를 본다.

사회현상에 끊임없이 조응하는 '나'는 사랑의 실체이고, 그러한 삶의 의미에 대해 확신하는 '나'는 가치 있는 삶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자기가 '사회 속에서 살아가고 있어서 좋다'는 실감은 실존적 가치를 좆는 방향타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