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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6호 민주당의 전 당원 투표 유감

편집국장 공인배

대선이라는 정치적 결전을 앞두고 향후 당이 처할 입장에 대한 숙고 없이 대중의 지지를 얻으려고 당헌에까지 명문화했던 무공천 약속을, 당원 대중의 다수 의견을 근거로 5년 만에 뒤집었다.

너무나 뻔한 수순으로 국민을 기만했다. 민주당의 이런 행태가 처음이 아니기에 국민적 공분은 더 크다.

민주당이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 후보를 내기로 결정했다. 지난 10월 31일부터 11월 1일까지 내년 재 보궐선거 후보 공천에 대한 전 당원 투표를 실시한 결과 찬성 의견이 86.64%에 달했기 때문이다.

보궐선거 공천이 ‘약속 파기’이자 ‘원칙 훼손’이라는 비판을 무릅쓰고 감행한 전당원 투표 결과다. 민주당은 이에 따라 ‘귀책 사유가 있는 재보선에 후보를 내지 않는다는 당헌 조항’을 삭제하는 개정 절차를 밟게 됐다.

이 조항은 문재인 대통령이 민주당 대표를 하던 시절에 만들어졌다. 민주당의 당헌 개정이 문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큰 부담으로 다가오는 이유다. 또 민주당은 줄곧 보궐선거 원인을 제공한 것에 책임을 지겠다고 말해 왔기에 국민들의 실망감이 적지 않다.

당헌은 정당의 정체성이다. “귀책 사유가 있는 재보선에 후보를 내지 않는다”는 민주당의 당헌 조항은 ‘책임정치’를 표방한다. 잘못 공천한 책임을 지겠다는 것이다.

그 책임져야 할 의무는 국민에게 불편을 주고 국민에게 막대한 선거비용 부담을 지우는 것에 따른 반성에서 기인했다. 반성은 거듭됐고 오래됐으나 그 잘못을 개선하는 행동을 보여준 것은 민주당이 처음이었다. 그 자체로 민주당의 도덕성은 높아 보였고 진보정당다웠다.

민주당은 그 정체성을 종이 가면 벗듯 내팽개친 것이다. 물론 명분을 만들었다. 전 당원 여론조사다. 당헌을 고치기 위해서는 전 당원 여론조사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당헌을 고쳐야 할 명분이 될 수는 없다. 당헌을 고치기 위한 절차일 뿐이다.

명백한 사실은 당헌을 고쳐 새로운 정체성을 선택해야 할 명분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야당과 다르지 않은, 보수정당과 전혀 다르지 않은 정체성을 선택했다. 정체성을 이렇게 필요에 따라 선택해도 되는 것일까.

민주당이 얻는 실리는 두 개의 국회 의석이다. 문재인 정권이 추진하는 검찰개혁 완수 등을 위해서는 의석수의 유실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내·외부적인 공감대에 기대고 있다. 당헌 개정에 찬성한 당원들의 생각도 거기에 있는 것으로 읽힌다.

그러나 목적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정권의 최후를 우리는 알고 있다. 명분을 버리고 실리를 쫓는 정당이 어떻게 되는가를 우리는 알고 있다. 무엇보다 민주당은 이번 전 당원 투표율이 26.35%로 저조했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86.64%의 찬성률을 두고, 당원들은 재보선에 대해 “압도적으로 찬성하는 관심이 반영된 것”이라고 평가하는 건 지극히 자의적인 해석이다.

오히려 민주당은 투표하지 않은 73.65%의 생각을 읽기 위해 공을 들여야 한다. 하지만 민주당이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후보를 내서 진정한 책임을 지겠다”는 말은 국민 정서를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에서 비롯한다.

귀책 사유가 있는 재보선에 책임을 지겠다는 강령을 지키지 않으면서 무엇을 책임지겠다는 것인가.

민주당은 낮은 투표율에 대한 당 내부의 목소리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중요 결정에 당을 적극 지지하는 이들만 참여한다는 방증’이라든지 ‘중요 의사결정에 적극 지지층의 목소리만 반영되는 것 아니냐’는 등의 고민이 그것이다.

특히 2015년 해당 당헌 제정을 주도한 문재인 당시 민주당 대표는 고성군수 재선거 현장을 방문해 “새누리당은 재선거의 원인 제공자이기에 후보를 내지 말아야 한다. 고성군수 재선거에 국민이 부담할 예산만 수십억원이다”고 비난했다.

이는 야당의 “내년 서울 보궐선거에 571억원, 부산 보궐선거에 267억원 합해서 838억원의 선거비용이 든다”는 비판을 불렀다.

너무나 뻔한 수순으로 국민을 기만했다. 민주당의 이런 행태가 처음이 아니기에 국민적 공분은 더 크다. 민주당은 지난 3월 비례위성정당 참여를 묻는 전당원 투표를 실시해 당원 30.6%의 참여와 74.1%의 찬성률로 가결한 바 있다.

선택적 정체성

국회 의사결정의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해 소수 정당의 국회 진입 기회를 확대하겠다던, 그 목표(준 연동형비례대표제)를 향해 치열하게 매진했던 시간과 가치들이 일거에 물거품이 되는 순간이었다.

이유는 있었다. 새누리당이 그런 짓을 하니 우리도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비례위성정당은 꼼수 짓이라고 비난했던 민주당은 새누리당과 함께 소수 정당의 의석을 가로채 공룡 정당이 됐다. 국민을 배신하고 진보와 결별한 결과다.

그러나 민주당은 여전히 짐짓 진보 행세를 한다. 이번 당헌 개정을 앞두고도 당원들에게 “국정과제 완수와 정권 재창출을 위해선 내년 재보선 승리가 매우 중요하다”는 시그널을 보냈다.

무엇보다 방향을 이미 정해놓고 당원에게 뜻을 묻는 방식은 ‘당원을 도구화’하는 행태다. 지도부의 독주를 견제하고, 당의 핵심 가치와 정책에 대한 내부 동의를 강화하기 위한 절차적 수단으로 도입한 전당원 투표 정신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약속을 뒤집으면 지지율이 떨어지거나 중도층이 이탈하는 등의 징벌효과가 있어야 하는데 그게 없으니 당헌이 휴지 조각 취급당하고, 정치는 혐오와 냉소의 대상이 되는 것”이라는 진단이 소중해지는 오늘이다.

민주당 당헌에서 사라지는 제96조 2항의 마지막을 본다.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사건 등 중대한 잘못으로 그 직위를 상실해재보궐선거를 실시하게 된 경우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아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