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익산시가 익산역이 유라시아 국제철도 거점역으로 선정될 수 있다고 꿈을 꿀 수 있었던 이유다. 정헌율 시장이 익산시가 이 거점역을 통해 향후 대륙철도의 교통경제 성과를 공유할 수 있다고 말할 때 시민들은 다른 의견을 묻었다.

믿고 싶었다. 이 초시대의 초대형 대륙철도 프로젝트의 한 거점으로 익산시가 자리매김 해야만 했다. 이것은 익산이 주어진 여건에서 최상의 도시브랜드 가치를 획득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일부 시민들은 정 시장의 이 ‘거점역’ 선정을 위한 분위기 조성에 적극 동참했었고, 함께 꿈을 꾸었다. 그러나 김정은은 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고, 그 후폭풍에 대륙철도 경제공동체 구축 논의도 날아갔다.

문재인 정부 초반은 우리에게 일대 변혁을 예고했다. 우리는 스스로 의심했다. 과연 닥쳐올 변화를 감당할 수 있을까?

2018년 4월 27일 문재인의 손을 잡고 군사분계선을 넘는 김정은의 퍼포먼스는 우리가 그토록 바라마지 않았던 순간이었다. 하지만 이 뜻밖의 사건은 너무나 갑작스럽게 일어난 탓에 우리는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기대는 벅차올랐으나 심장은 부정맥처럼 뛰는 아주 낯선 경험이었다. 분단 이후 꿈에서조차 통일을 고대했으나 준비가 안 되어있는 우리를 발견한 것이다.

통일을 바라는 마음이 애초에 허황한데서 발원했다는 인식에서 비롯한 문제였다.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들의 오랜 냉전과 그 냉전이 종식된 이후에도 통일을 지향하는 남쪽의 끊임없는 노력은 북의 진정성 없는 태도와 벼랑 끝 전술 앞에서 번번이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바람이 컸던 만큼 우리의 좌절도 컸던 까닭에 우리는 그 시간의 물결에 휩쓸려 절망의 바다 위에서 표류하고 있었다.

그러나 김정은의 태도는 전과 전혀 달랐고, 문재인의 포용도 파격이었다. 두 정상의 적극적인 대화가 수차례 이어졌다.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구축하기 위한 구체적인 약속들이 쏟아져 나왔다.

나아가 온갖 경협을 비롯한 호혜적 협력 방안들이 한반도 하늘을 장밋빛으로 물들였다. 우리는 긴가민가하면서도 다시 꿈을 꿀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별안간 통일이 오구나 했다. 그럴 수도 있나 보다 했다. 김정은이 판문점에 나오기 직전까지 미국 본토에 닿는 미사일을 시험 발사하던, 맥락 없는 불장난을 우리는 어느덧 잊어버렸다.

김정은은 자주적 통일을 누차 강조했고, 문재인도 쌍수를 들어 환영했다. 열강의 뜻에 따라 갈라섰던 우리가 우리 힘으로 통일을 할 수 있다고 믿게 되었다.

그것을 지지하던 트럼프가 함께 잡았던 손을 놓고, ‘선 핵무기 포기’ 카드를 내밀 때까지 우리는 통일의 과업을 곧 이룰 수 있다는 기대를 버리지 않았다. 김정은도 우리에게 확신을 주려는 듯 영변 핵시설 냉각탑을 폭파하는 지상 최대의 쇼를 보여줬다.

그러나 김정은은 미국의 불신을 털어내는데 실패했고, 근원적인 요구사항 이행을 먼저 하라는 압박에 맞서야 했다. 김정은은 거부했고, 미국이 먼저 제재를 풀어야 한다면서 다시 벼랑 끝에 섰다.

남북 평화 논의는 급격히 냉각됐고, 남북은 거짓말처럼 빠르게 원점으로 돌아갔다. 급기야 남북 사이의 모든 통신 연락선을 차단해버린 북한은 2020년 6월 16일 판문점 연락사무소를 폭파했다. 우리가 꾸던 꿈을 단번에 산산조각 나는 순간이었다.

우리가 꾸었던 남가일몽은 제5차 국토종합계획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남북한 교류·협력 확대와 장기적으로는 한반도 통합적 경제 기반 실현을 위한 인프라와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는 성찰이 담겨있다.

중국, 러시아 등 주변 국가와 경제, 문화, 환경,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력과 경쟁이 증가할 것을 전망했다. 중-몽-러 경제회랑 조성(철도 도로 송유관 등으로 연결) 등 동북아 경제권의 형성을 둘러싼 국가 간 주도권 확보 경쟁이 치열해질 것이라 전망했다. 신북방·신남방정책의 지속적 추진으로 동아시아 국가들과 경제·문화·사회적 측면에서 다양한 국가 간 협력 모델이 형성될 것을 전망했다.

정치적 쇼에 그치지 않길

장기적으로 신북방, 신남방(아세안) 국가 간의 협력을 통해 대륙연결형 국토실현을 위한 한반도 통합 인프라와 제도 정비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과 대륙연결형·개방형 국토공간 조성과 글로벌 네트워크 역량 강화, 매력 있는 도시·생활공간 조성으로 경쟁력을 갖춘 국가발전을 도모해야 한다는 방향성도 제시했다.

남북 경제협력을 위한 교류 여건을 진전시켜야 한다는 요구도 담겼다. 이 중에서도 국토공간을 보다 빠르고 촘촘한 체계로 연결하는 철도망을 구축하겠다는 계획이 두드러져 보인다.

당시에 연일 찬양처럼 거론되었던 ‘한반도-유라시아 경제공동체 육성과 글로벌 위상 제고’나 ‘동아시아 철도공동체 설립’, ‘대륙연결형 교통망 구축’ 같은 비전은 익산역을 유라시아 대륙철도 거점역으로 선정해야 한다는 주장의 기원이 됐기 때문이다.

듣기만 해도 가슴 벅찬 일이었다. 한반도 남북철도를 유라시아대륙 횡단 국제수송노선인 중국횡단철도(TCR), 몽골횡단철도(TMGR), 시베리아횡단철도(TSR)와 연결하고 대륙연계 철도 노선에 블록트레인 확대, 도로·항만·물류·철도 등의 인프라를 복합적으로 활용해 유라시아 주요국과 교통물류 네트워크 구축한다는 계획이었다.

초고속열차 시대의 동북아 1일 생활권을 구상했다. 초고속열차, 하이퍼루프(최고 시속 1,280km를 달릴 수 있는 열차 형태의 차세대 이동수단) 등 이용 시 서울, 부산 등 주요 대도시와 동북아 주요도시(단둥, 선양, 베이징, 블라디보스코크) 가 1일 생활권 안에 드는 그 꿈같은 미래가 손이 닿을 듯했다.

익산시가 익산역이 유라시아 국제철도 거점역으로 선정될 수 있다고 꿈을 꿀 수 있었던 이유다. 정헌율 시장이 익산시가 이 거점역을 통해 향후 대륙철도의 교통경제 성과를 공유할 수 있다고 말할 때 시민들은 다른 의견을 묻었다.

믿고 싶었다. 이 초시대의 초대형 대륙철도 프로젝트의 한 거점으로 익산시가 자리매김 해야만 했다. 이것은 익산이 주어진 여건에서 최상의 도시브랜드 가치를 획득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일부 시민들은 정 시장의 이 ‘거점역’ 선정을 위한 분위기 조성에 적극 동참했었고, 함께 꿈을 꾸었다. 그러나 김정은은 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고, 그 후폭풍에 대륙철도 경제공동체 구축 논의도 날아갔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그 꿈을 포기하지 못한다. 통일에 대한 열망은 변할 수 없고, 앞으로 내민 발을 거둬들일 수 없다. 우리는 어떻게 든 진전을 위한 틈을 찾을 것이다.

익산역의 유라시아 국제철도 거점역화도 같은 맥락이다. 익산은 그 첫 단추인‘제4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에 익산역 국제철도 거점역 추진사업을 반영시키기 위한 용역을 발주한 상태다.

정헌율 시장의 유라시아 대륙철도 거점역 비전 제시가 ‘정치적 쇼’냐 아니냐는 ‘제4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에 익산역 국제철도 거점역 추진사업의 포함 여부로 판가름 난다.

새해 벽두에 우리가 김정은에게 속아 놀아났던 것처럼 정 시장에게 속았던 것은 아니었기를 바라며 앞을 내다보게 된 배경이다. 익산시가 익산역 국제철도 거점역 추진사업이 ‘제4차 국가철도망 구축계획’에 반영되도록 전방위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