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얘기였던 기본소득 논쟁이 성큼 다가와서 내년 3월 9일 대선의 주요 화두로 등장했다.

 재난 기본 소득 때문에 기본소득이라는 명칭이 전국민적으로 낯설지 않게 되었다.

모든 국민이 정부로부터 기본소득이라는 명칭으로 현금을 받은 것이다.

현재 여권의 대선 지지율 1위 주자인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대표 공약이니 내년 대선 때까지 뜨거운 이슈가 될 것 같다.

격렬한 찬반 논쟁 속에 앞으로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듣게 될 기본소득 의제가 왜 이 시점에 이슈의 중심에 서 있는가?

 지금까지는 경제성장을 통한 1차 분배로서의 고용보장과 2차 분배로서 사회안전망을 확충하는 복지국가 비전이 주요 이슈가 되었었다.

2012년 대선의 주요의제는 여야 모두 복지정책이었다.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까지 노령연금 20만 원 등 복지공약을 중심으로 내걸었었다.

그 이후 무상급식, 무상보육, 기초연금,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 기초생활 보장 부양의무자 기준 완화, 아동수당 도입 등 많은 복지정책이 실시되었다. 하지만 사회안전망 바깥의 사각지대에 노출된 사람들은 여전히 많고 대한민국 자살률은 슬프게도 압도적인 OECD 1위이다.

 엄청난 속도의 디지털 기술 발전으로 인한 소위 4차 산업혁명은 비정규직과 플랫폼 노동 등 고용 불안정을 더욱 확대시키고 있다.

 더구나 목전에 닥친 기후 위기로 말미암아 석유, 석탄 등 탄소 기반 경제는 종말을 맞이하고 있다.

인류 종말을 막기 위해 탄소 경제의 종말을 최대한 빨리 앞당기지 않으면 안 되는 현실은 고용불안정을 극대화하게 될 것이다.

작년과 올해에 걸친 코로나 팬데믹은 불평등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노출시키고 있다. 이제는 기존의 복지정책을 훌쩍 넘어서는 새롭고 강력한 소득보장대책이 필요해진 것이다.

재난 기본소득 논쟁으로 전 국민에게 익숙해진 기본소득의 실체는 무엇인가? 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BIEN, basic income earth network)에 따르면 기본소득은 모든 사람에게 자산심사나 노동 요구 없이 정기적이고 개인적으로 지급되는 현금이다.

보편성, 무조건성, 개별성, 정기성, 현금성의 다섯 가지 특징으로 요약된다.

충분성은 기본소득 모델의 한 구성요소이기는 하지만 본질적 요소는 아니라고 한다.

 기본소득만으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수준이 되도록 하는 것은 중요한 목표이지만, 액수가 그에 못 미치더라도 기본소득이 아닌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결국 문제는 필요한 재원을 얼마만큼 확보하는 가이다. 사회적 합의의 문제이다.

 재원만 확보 가능하다면 매월 개인적으로 지급되는 기본소득으로 노동 여부와 상관없이 기본 생활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의 세계관과 상식과는 다른 삶이 다가오는 것이다.

과연 가능한 일일까? 또 지금까지의 복지 급여와 기본소득이 어떤 관계를 가지는가도 큰 쟁점이다.

진보와 보수가 모두 기본소득을 얘기하지만, 그 내용은 매우 다르다. 보수적인 모델은 기존 사회보장을 폐지하고 기본소득으로 일원화하자는 것이다.

불필요한 행정비용을 최소화하고 작은 정부와 시장 자유를 구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진보적인 모델은 생활이 충분한 수준의 완전 기본소득을 지급하면서 기본 사회보장을 유지하거나 일부만 통합하자는 것이다.

혼합모델은 사회보장을 유지한 채 가능한 수준의 부분 기본소득을 결합시키자는 것이다. 최근 대개의 기본소득 주창론자들은 혼합모델에 속할 것이다.

완전 기본소득 지급이 과연 가능할 것인가라는 쟁점은 접어놓고라도, 사회보장을 유지한 채 소액의 부분기본소득을 결합시키는 혼합모델이 현재의 복지제도를 강화시키는 것보다 나은 사회적 의미가 있는 것인가? 충분히 토론하고 논쟁해야 할 중요한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기본소득 논쟁에서 몇 가지는 주목할 만한 의미를 가진다고 생각한다.

제일 큰 의미로 볼 수 있는 점은 기본소득의 근거는 공유부(공동의 부)에 대한 사회구성원의 권리라고 규정한다는 점이다.

 BIEN(기본소득지구네트워크)에 따르면 공유부라 함은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귀속되는 자산을 말하는데 이는 자연적 공유부(토지, 천연자원, 환경), 인공적 공유부(빅데이터), 역사적 공유부(지식, 문화재)로 구분한다.

공유부에서 나온 수익은 일부라도 구성원들과 나누는 게 마땅하다는 생각이 기본소득의 출현 근거가 된 것이다.

이를 근거로 토지보유세, 환경세, 빅데이터세, 개인소득세를 기본소득의 재원으로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이를 통해서 부동산 투기 문제, 기후 문제 등 환경 문제, 지속 불가능한 불평등 문제 등을 해결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것이 무한경쟁 속에서 사유화되고 이기적 욕구의 대상이 되는 상황에서는 공유지가 남아날 수가 없다는 것이 기후 위기의 실체이고, 극심한 불평등의 본질이라는 성찰에 함께 이를 수 있다면 불평등과 기후위기를 해결할 수 있다는 가능성에 주목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비록 소액이라 하더라도 현행 복지제도에 부분기본소득을 결합시키는 혼합모델도 그 의미를 찾아볼 수 있을 것 같다.

공유부라는 개념의 대중화, 이를 토대로 한 재원 확보와 소액이라 하더라도 기본소득을 지급해나간다면 다수의 국민들에게는 내는 세금보다는 받는 기본소득이 크다는 점에서 조세 저항을 최소화하고 증세의 국민적 합의가 가능해질 것이라는 점이다.

강남훈 이사장의 <기본소득의 경제학> 시뮬레이션 결과에 따르면 월 30만 원의 기본소득을 지급하기 위해 시민소득세, 환경세, 토지세를 걷어 기본소득을 전국민에게 지급할 경우 82%가 순수혜가구(기본소득을 위해 내는 돈보다 받는 돈이 더 많은 가구)가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본소득 논쟁에서 이 부분의 진보적 변화 가능성에 특히 주목한다.

출세정치, 불신의 정치로 말미암아 대한민국의 조세 저항은 대단히 크다.

 하지만 현실의 불평등과 기술변화, 기후위기에 함께 대처하지 않으면 더 이상 사회를 지속 가능하게 유지하는 것이 어려운 지경 앞에 놓여 있다.

최근의 부동산 문제도 이런 관점에서 접근하지 않으면 풀어나가기 어려워 보인다.

 인류 공멸의 기후 위기 앞에서, 더 이상 감내하기 어려운 극심한 불평등 앞에서 함께 살아가기 위한 연대와 협동의 철학과 실천이 필요할 때이다.

기본소득 논쟁에서 공유부라는 문제의식의 확산, 증세에 대한 합의와 재원 마련, 부분 기본소득과 복지제도의 강화 등을 이뤄낼 수 있는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면 기본소득주의자가 될 충분한 이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