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남곡

(인문운동가)

우주 자연계에 가장 신비로운 것은 생명이다.
그중에서도 ‘인간’이다.
공자 사상의 핵심으로 이야기되는 인(仁)은 바로 이 인간의 생명력을 신장시키기 위한 <관념의 진화>와 <구체적 실천>을 말한다.
공자가 그 시대와 사회의 조건에서 제시한 규범 예절 윤리 질서 등은 공자 사상의 알맹이를 싸고 있던 껍질에 불과한 것인데, 그것을 알맹이로 잘 못 인식해 온 오랜 역사가 있었다.
공자의 반대자들은 물론이지만, 그의 후계자를 자처하는 사람들에 의해서도 수없이 왜곡되어 왔고, 특히 권력 이데올로기로 작용하면서 심각한 폐해를 나타내기도 했다.
비록 부족한 사람이지만, 현대 인류의 지성의 빛에 비추어서 앞으로 몇 차례에 걸쳐 인(仁)에 대해 살펴보려고 한다.

인(仁)은 극기복례(克己復禮)다.

안연이 인(仁)에 대하여 묻자 공자 말하기를, “극기복례(克己復禮)가 곧 인(仁)이니, 하루 극기복례 하면 온 천하가 다 인으로 돌아가게 마련이다. 인(仁)을 이룸이 자기로 말미암은 것이니, 어찌 남에게 연유하는 것이겠는가.”
안연이 그 구체적 조목을 청하자 공자 말하기를, “예가 아니면 보지 말고(非禮勿視), 예가 아니면 듣지 말고(非禮勿聽), 예가 아니면 말하지 말며(非禮勿言), 예가 아니면 움직이지 말라(非禮勿動).” 안연 말하기를, “제가 비록 불민하나 그 말씀대로 실천하겠습니다.” (12-1)

‘극기복례’(克己復禮)라는 말은 많이 귀에 익은말이다. 그러나 그런 만큼 그 참뜻을 이해하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극기훈련’이라는 말이 있다. 절대빈곤이나 독재가 지배하던 시절에는 싫어도 참아내야 할 일이 많았지만, 경제가 성장하고 민주화가 진척되다 보니 높아진 자유도(自由度)에 반비례해서 참아내는 힘이 약해졌다.
연세 많으신 분들이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자식들에게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참아내라’라는 충고를 많이 하시는데 젊은이들의 참는 힘이 적은 것도 있지만 그분들의 관념 속에는 ‘참는다’는 것이 중요한 덕목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극기’(克己) 를 그저 ‘참아서 이겨내는 것’ 것으로 이해하는 것은 공자가 말하는 극기와는 거리가 멀다고 생각한다.
진정한 극기는 절사(絶四)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즉 무의(毋意), 무필(毋必), 무고(毋固), 무아(毋我)의 네 가지 끊음을 통해 극기란 결국 ‘무아집(無我執)’으로 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참아야만 하는’ 부자유의 세계가 아니라 ‘아집에서 벗어나는’ 자유로운 세계인 것이다.
복례(復禮)를 ‘사람 사이에 지켜야 할 규범이나 예절에 따라야 한다’라는 식으로 생각하기 쉽다. 물론 ‘하고 싶지 않아도 참고 다른 사람을 생각해서 행동거지를 사회규범에 맞게 하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그 바탕에는 부자유가 있을 수 있다. 즐겁지 않은 것이다.

공자가 여러 곳에서 강조하는 것처럼 예(禮)를 즐긴다는 것은 사람과의 관계가 즐거워지는 것이다. 그것은 딱딱한 규범의 세계가 아니라 ‘아집’을 넘어설 때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사이좋음’인 것이다. 즉, 극기복례는 ‘아집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되어, 다른 사람들과 아름다운 질서를 만들어 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것이 우주 자연계에서 가장 진화된 인간이 지향해야 할 인간과 사회의 본연의 모습이 아니겠는가!

현대인들의 높아진 자유도(自由度)와 물질과 제도의 진전에 비추어 볼 때 공자의 ‘극기복례’는 현대에 와서 비로소 개인과 사회의 보편적 목표로 삼을만하게 된 것이다.
나는 논어의 많은 주석서들에서 극기복례에 대한 해석이 마음에 와닿지 않았는데, 오히려 탄허 스님의 해석에서 공자의 뜻과 만나는 느낌이 들었다.
그는 극기복례를 ‘자기망상을 극복하여 본연의 천리(天理)인 도(道)로 돌아가는 것’이라 해석하고 있다.

사회와 국가 그리고 세상의 진보라는 점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분노와 미움에 휘둘리지 않는 마음으로 되어(克己) 세상의 부조리와 부정의를 바로잡아 건강하고 아름다운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復禮). 그렇게 할 때 비로소 증오와 분노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고 천하가 인(仁)으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으로 세상이 진보하는 길이다.
이렇게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우리 시대의 진정한 선구자인 것이다.
극기(克己) 즉 아집을 넘어서는 인격의 성숙과 복례(復禮) 즉 정상적이고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일, 탄허 스님의 표현으로 하면 자기중심의 망상에서 벗어나 천리(天理)에 부합하는 세상을 만드는 일이 하나로 이어지는 것이다.

그것이 ‘나’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인(仁)은 자기로부터 말미암은 것(爲仁由己)이지 다른 사람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다. 내가 인을 원하기만 하면 그 인이 이르러 온다(我欲仁 斯仁至矣). 실제로 해보면 바로 증명되는 것이다.
좌측 깜박이를 넣고 있는 차를 위해 잠시 차를 세우는 것만으로도 그 근방에 인(仁)이 흐르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남을 배려하고 남에게 양보하는 따뜻한 말이나 행위 하나가 사회적 공기를 바꾸기 시작하는 것이다.

‘예가 아니면 보지 말고, 듣지 말며, 말하지 말고, 움직이지 말라’라는 말도 잘못 읽으면 소극적 은둔적 사고방식이나 금기(禁忌)나 계율(戒律)로 읽기 쉽지만,
논어 전체를 관통하는 공자의 태도를 볼 때 그렇게 해석하기보다, 보통 사람들의 근기(根機)에 부합하는 실천을 말했다고 생각된다.

‘인간이 지향해야 할 아름다운 질서(禮)’에 반(反)하는 것에 끌리는 마음을 차단하는 연습으로 시작하자는 것이다.
극기복례는 금기나 계율의 세계가 아니라 자각과 자율의 세계로 보는 것이 옳다고 본다.
진정한 생명력의 신장이야말로 인(仁) 사상의 핵심이며, 금기나 계율 같은 규범을 확대하는 사회는 결코 생명력을 신장시키는 사회가 아니다.

대립과 분열로 인한 나라의 어려움과 지구적 범위의 팬데믹과 기후 변화 등 이중의 위기 앞에서, 나에게는 극기복례가 ‘통합’과 ‘전환’이라는 우리 시대의 절실한 메시지로 다가온다.
‘극기(克己)로 마음의 문을 열고, 복례(復禮)로 사랑의 길을 닦자!’
사랑으로 생명과 평화의 길, 문명을 전환하는 길을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