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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0호 불완전한 질문에 대답하는 대중들

편집국장 공인배

수상이 돼지와 성관계를 하는 모습은 생중계 된다. 그 장면을 지켜보는 대중들 중에는 수상을 비웃으며 조롱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몸부림에 가까운 수상의 처절한 행위가 한 시간 가까이 이어지자 대중들은 무거운 침묵 속에 빠져든다.

그러나 이 참담한 장면은 대중들에게 여전히 흥밋거리다.

이 때문에 사건당사자인 남성들은 짧은 기간 안에 '공주와 돼지'에서의 '총리' 신세가 되고 말았다. 뒤집어 보면 수십만명의 대한민국 국민들은 여성의 실험에 놀아난 것이다. 이제 세상은 누구든지 어떤 악의적인 목적을 가지고 미디어를 이용할 수 있고, 사회적 이슈를 등에 업으면 해맑고 선량한 대중들을 무기로 삼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영국에 '블랙미러'라는 드라마 시리즈가 있다. 전자기기들의 꺼진 화면을 뜻하는 블랙미러는, 과학기술이 상당한 진전을 이룬 가까운 미래에 인간과 전자기기들 사이에서 일어날 부정적인 이면들을 다루고 있다. 드라마 안에서 사람들은 우리가 아직은 겪어보지 못한 기술들을 사용하지만, 현재 도달해 있는 기술의 관점으로도 전혀 이질감이 없이 수용할 수 있는 정도다.

무엇보다 '블랙미러'는 사건을 구성하는 인물들을 지극히 건조하게 조명한다는 점이 매력적이다. 선과 악을 구분하거나 권선징악적 서사구조를 추구하지 않는 것이다. 카메라의 앵글은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나 피해를 입는 사람 모두가 가지고 있는 이유들을 중립적으로 조명하며 판단은 시청자의 몫이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그런 맥락에서 블랙미러 시리즈의 드라마 하나하나가 시대의 화두가 되며, 인류에 관한 실험이라고 할 수 있다. 블랙미러의 첫편 '공주와 돼지'는 아주 충격적인 방법으로 그러한 지향점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스토리는 다음과 같다.

어느 날 누군가에게 영국 공주가 납치된다. 납치범은 트위터와 유튜브를 통해 납치 실황을 전송한다. 의자에 앉은 채 묶여있는 공주는 카메라를 향해 괴로운 목소리와 표정으로 납치범의 요구를 전달한다. 오후 4시 정각에 영국 수상이 돼지와 성관계를 가지면 풀어주겠다는 황당한 지시였다.

수상 관저에서 텔레비전 방송을 막기 위한 조치들을 취하고 영국 내 유수의 방송사들도 이 비윤리적인 사건을 다루는 것을 주저했으나, SNS상에서 관련 동영상을 다운로드하는 개인들이 눈 깜짝할 사이에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자 방송사들은 앞다퉈 취재경쟁에 뛰어든다.

어떤 잘못도 없는 수상이 일방적으로 피해를 당하는, 결단코 있어서는 안 되는 요구에 대해 '무반응' 만큼 확실한 방송윤리 수호 밥법이 없었지만, 동영상 확산을 통제할 수 없다는 이유로, 방송사들은 선정적인 상업주의 본능 제어 책임을 내팽개친 것이다.

영국 국민들의 반응은 혐오와 분노였다. 수상이 수치스러운 일을 할 필요가 없다는 여론이 일었다. 그러나 국민들은 초유의 사건에 혀를 내두르면서도 모두가 하나가 되어 텔레비전 화면에 시선을 고정한다. 시내 주요도로가 텅빈 것은 국민들이 이 사건에 몰입하는 정도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수상 관저에서는 만약의 경우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 대역을 써서 CG를 조작하려는 시도를 하는 가운데, 공주의 것으로 추정되는 잘린 손가락 하나가 한 방송사에 배달된다.

방송사는 납치범이 손가락과 함께 보낸 이동형 데이터 기억장치의 재생 화면을 즉각 속보로 송출한다. 손을 등 뒤에 묶인 공주가 손가락을 잘리는 순간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는 장면과 상자에 담신 손가락이 공중파를 타자, 여론은 급변한다.

공주를 구하기 위해 수상이 납치범의 요구에 따라야 한다는 여론이 미디어를 지배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개인적인 삶이 파괴되는 것은 물론 자칫 실각할 가능성도 배제 할 수 없는 부담을 안고 수상은 결단을 내려야 했다.

그러나 이 참담한 장면은 대중들에게 여전히 흥밋거리다. 대중들이 텔레비전 앞에서 떠나지 못하고 있는 사이 공주는 텅 빈 거리에 풀려나지만, 탈진해 쓰러진 채 방치됐던 공주가 구출되기까지는 한참의 시간이 흘러야 했다.

공주는 4시가 되기도 전인 3시 30분에 풀려났지만, 수상의 자극적인 중계가 끝나 뒤에야 집밖으로 나선 사람들에게 발견된 것이다. 수상에 대한 국민들의 가학은 공주의 납치에서 비롯된 것인데, 국민들은 그러한 명분은 까맣게 잊고, 수상에게 부당한 명령을 내린 자신들의 폭력성에 도취된 채 수상의 행위를 마지막까지 지켜보는 폭력을 행사한 것이다.

과연 대중은 공주의 납치를 걱정하기는 했던 것일까. 납치범은 터너 상을 수상한 경력이 있는 현대미술가였다. 그는 영국 국민들을 대상으로 거대 실험을 한 것이다. 이 에피소드는 대중은 단순히 자극적이고 흥미로운 주제에만 관심을 가진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

최근 '미투'운동에 이어 국내 최대 이슈로 떠오른 '이수역' 폭행사건은 '공주와 돼지' 그리고 '블랙미러'를 관통하는 주제가 아닐까 한다. 죄 없는 총리가 총리라는 이유로 여론에 밀려 대중 앞에 발가벗고 나설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남성들은 남성들이라는 이유로 가해자가 되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공주와 돼지'에서 시민들이 공주를 납치한 범인에게는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고 오직 납치 된 공주와 총리의 동태에만 관심을 가졌듯이, 이수역을 바라보는 대중들은 진짜 가해자가 누구인지에는 관심이 없고, 여성이 올린 남성들의 폭행에만 관심을 쏟았다.

흥밋거리에만 취하여

'이수역' 폭행사건에서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여성은 '공주와 돼지'의 납치범 같다. 옆 테이블 커플 중 남성에게 삿대질하고, 남성 일행이 앉아있는 테이블에 다가와 시비를 걸고 남성의 멱살을 잡고 흔드는 등 먼저 시비를 걸어 일을 크게 야기한 것은 여성들이면서도, 거꾸로 남성들에게 뒤집어 씌우는 거짓말을 SNS상에 게시하여 대중들로 하여금 '남성들의 여성 폭행'이라는 가공된 사실에 대중이 집중하게 했다.

CCTV이며 경찰, 소방당국, 목격자들에 의해 확인된 사안이다. 여성들은 또, 큰 소리로 떠들다가 남성들과 시비가 붙자 휴대전화로 동영상 촬영을 했다. 이로 인해 언쟁이 벌어졌고, 남성들도 여성들을 촬영하자 언쟁이 커진 끝에 몸싸움으로 이어졌다.

그들이 찍은 동영상의 몸싸움 장면을 보면 여성이 남성의 멱살을 잡고 흔들고 남성은 만세를 부르며 가만히 서 있다. 그러나 여성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몰래 사진을 찍는 행위까지는 참다 못한 언니가 촬영 제지를 위해 말로 해결하려고 갔으나 말은 듣지도 않고 언니를 밀치는 등 부딪힘이 생겼다"고 썼다.

그러면서 "머리 짧고 목소리 크고 드센 년들도 별거 아니라는 그 우월감을 무너트리지 않으면 우리 같은 다른 피해자가 나올 것을 너무도 잘 알기에, 여러분들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다.

하지만, 이 여성은 자신에게 불리한 내용은 쏙 뺐다. MBC뉴스는 시비 현장이 찍힌 동영상을 방영했는데, 여성들의 일방적이며 얼굴 뜨거운 모욕이 이어진다. 상대방이 작은 고추라고 단정하고, 여성의 성기도 모르는 숙맥으로 매도하고, 관계를 해 본적도 없는 병신들로 폄훼하고, 싸잡아 게이를 만든다.

속사포처럼 퍼붓는 원색적인 성희롱에는 그들의 은어가 난무하고, 감정을 자극하는 그들만의 어법이 침처럼 튄다. 여성은 남성들을 여성으로 비하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하지만 이 같은 진실이 드러나기 전에 그 여성이 올린 거짓말에 분노한 한 누리꾼은 그 거짓말을 퍼다가 전제 사실로 삼아 폭행 남성들의 신원을 밝히고 강력히 처벌해 달라는 청원을 청와대 게시판에 올렸고, 여기에 35만8,967명(23일 오후 4시 26분 현재)이 동의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수많은 질문들에 대답해야 하는 순간들을 만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선택이 어떤 결과를 낳을지를 모른다. 최소한 질문이 완성형인지는 생각해 보고 클릭하지 않으면, 우리가 누군가에 대한 이유도 없는 집단폭행에 가담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은 환경에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