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그들의 망언은 더는 표방할 것이 없는, 존립 근거를 상실한 붕당의 단말마다. 도태를 받아들이지 않고 오직 존속을 위한 패도(覇道)에서 버티는 울부짖음이다.

자유한국당 의원들 몇이 '5.18 광주' 폄훼와 망언으로 온 나라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그들은 민족의 대명절인 설이 갓 지난 지난 8일 국회 공청회에서 광주민주화운동을 '폭동'으로 재규정했다. 또 5.18유공자회를 '괴물집단'으로 명명했다. 한 공청회 주최자는 "5.18은 북한군이 주도한 게릴라전"이라고도 했다.

39년이 지난 광주항쟁이다. 그동안 국가차원의 조사가 여섯 차례 이뤄졌다. 이를 통해 5.18 북한군 개입설은 모두 사실무근으로 밝혀졌다. 별도로 2년 6개월간 조사를 진행한 국방부 과거사위원회도 "북한군이 개입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공식화한 바 있다.

대법원은 1997년 "전두환은 12.12 군사반란과 5.17 내란, 5.18광주항쟁 유혈진압 수괴"라고 최종 확인했다. 2017년 국방부 과거사위는 5.18 당시 헬기 기관총 사격의 탄흔 185개를 확인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전남경찰청의 5.18백서는 계엄군이 시민들을 향해 발포하자 시민들이 이에 대항하기 위해 총기를 탈취한 사실을 확인해주고 있다. 이 같은 확인이 없었더라도 군부의 독재에 온몸을 던져 저항했던 386세대나 80년대를 산 사람들은 모를 리 없다. 죽음을 불사하고 현장을 담아낸 내외국인들의 동영상이 전국 방방곡곡에서 상영되던 시절이었다.

문제의 5.18 진상규명 대국민공청회는 한국당 김진태·이종명 의원, 극우 논객 지만원 씨 등이 주축인 5.18역사학회가 공동 주최했다. 5.18 기념재단을 비롯한 여당 및 야 3당이 "그들의 발언은 당의 공식입장이 아니라고 선을 긋는 자유한국당에 해당 의원들을 퇴출시키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자유한국당은 공청회 파문 이후 6일 만에 '폭동'을 들먹이며 허위사실을 유포한 이종명 의원을 제명하고, 5.18 유공자를 "괴물집단"이라고 지칭한 김순례 의원과 공청회를 주최한 김진태 의원에 대해서는 징계유예 결정을 내렸다.

'전당대회 출마자 신분 보장' 규정을 그 이유로 들었다. 반헌법적 망언에 대한 철퇴는커녕 되레 지도부로 입성할 수 있는 길을 터줬다는 비판을 자초한 것이다. 자유한국당은 국민적 반발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울며 겨자 먹기로 꼬리를 잘랐을 뿐, 망언을 쏟아놓고 민의의 전당인 국회와 국민을 모독한 의원들과 뜻을 함께 한다는 방증이다.

이들은 왜 이러는 것일까. 그동안 그들이 스스로를 세뇌한,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독자성을 상실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에 설득력이 실린다.

남·북한, 북·미간 형성된 화해무드가 갈수록 고조되면서 '안보정당' 노선에 빨간불이 켜졌다. 그들만의 박정희 신화를 내세운, 근대화의 주역이며 시장경제를 대변한다는 '경제정당' 노선도 박근혜가 탄핵으로 몰락하면서 막혀버린 형국이다.

그들의 망언은 더는 표방할 것이 없는, 존립 근거를 상실한 붕당의 단말마다. 도태를 받아들이지 않고 오직 존속을 위한 패도(覇道)에서 버티는 울부짖음이다. 끔찍하다. 그렇게 스스로를 수정하지 않고 시간을 역주행하는 그들은 세간의 웃음거리가 되었다.

그러나 그런 사실을 그들만 모른다. 국민을 속이고 현혹하는 것은 그들의 속성이니 더 말할 것이 없고, 거기에다 흉내내기 스킬을 장착했다. 걸핏하면 대통령 탄핵을 외치고, 무엇이든 꼬투리만 잡히면 장외로 나간다. 내용이 없는 생떼라는 사실을 국민들이 아는 이상 그들은 끊임없이 스스로를 희화화하는 꼴이다.

그런데도 그들이 과장과 과잉행동을 포기하지 않는 것은 타깃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의 말이라면 무조건 받아들이고 동조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아니, 그 사람들은 오히려 한국당이 자신들의 신념에 동조하는 것이라고 받아들인다 해야 옳을 것이다.

그들이야말로 왕조시대의 선민의식에 향수를 느끼는 '수구'세력이 아닌가. 그렇기에 그들은 친일(親日)을 할 수 있었고, 권력의 시종이 될 수 있었다. 민주공화국이 수립된 이후에도 그들은 전제군주 시대의 '독재' 아래 맹종했던 부류다.

독재의 향수에 미혹된

극우세력의 발호

독재 없이는 존속할 수 없었던 그들은 독재 유지의 앞잡이들이었다. 저항하는 젊은이의 머리를 몽둥이로 내리찍고, 무리 지으면 최루탄을 직격 했다. 저희 스스로가 민주주의의 실질적인 구성원이 아니면서도 공산주의에 물든 용공세력이라며 젊은이들을 잡아다가 고문하고 가두었다.

그들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국가보안법 아래서는 젊은이들의 말이 제한되었다. 책조차 자유롭게 읽을 수 없었다. 수많은 표현들이 그들만의 기준에 의해 금지되고 억압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은 단 한 번도 안보정당이었던 적이 없다. 냉전을 국민 탄압 수단으로 악용해왔을 뿐이다.

5.18은 그들의 적자(嫡子) 전두환이 저지른 희대미문의 사건이다.

군부의 군홧발로 한 번 짓이기면 평정되리라는 오판이 부른 비극이었다. 더는 물러 설 곳이 없었던 민중들 앞에서 그들의 사고체계는 정면으로 도전받았다. 그러나 '대중은 극단적인 공포 속으로 몰아넣으면 말을 듣게 되어있다'는 확신은, 국민을 지키기 위해 존재하는 군인들로 하여금 국민들을 향해 발포하도록 명령하는 오판의 근원이었다.

대한민국 방방곡곡에는 전시에나 울리는 경보 사이렌이 울렸고, 모든 매스컴은 군부가 공급하는 보도자료만을 읽었다. 영문을 모르는 국민들은 '광주사태' 소식을 들으며 막연한 공포에 휩싸였다. 보도 통제 속에서 폭도들에 의한 폭동은 사실로 굳어져갔다.

이원집정부제 개헌론 등을 제기하며 권력 장악을 가속화하는 신군부를 저지하기 위한 전국적인 저항운동은 그로써 급격히 위축되었다. 전두환은 대통령이 되었고, 정·관계는 신구부가 장악 했다. 단적으로, 5.18을 '폭동'이라고 말하는 자들은 39년 전 전두환이 발령한 비상계엄의 향수에 미혹된 자들이다.

그들은 국가폭력을 신봉한다. 그만큼 효과적인 정치는 없다고 생각한다. 다른 진영의 말을 들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대의적 비판에 아랑곳하지 않는 이유다. 유약한 대중과는 다른 자신들이 선민들이고 강하며 그러기에 승리하게 될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그들이 야당 속에서도 이상한 여당 코스프레를 하며 차별성을 부각시키는 이유일 것이다. 우리 앞길이 더욱 암담한 것은 그들이 '헬조선'에 대한 불만으로 현 권력에 무조건적인 반감을 가진 젊은이들과의 야합을 꿈꾸고 있다는 점이다.

극우가 그들의 표상인 이상, 펄펄 끓는 국민들의 정서는 그들의 목적에 기여할 수도 있다. 그들은 실로 '승리'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광기를 동력 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