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특정인의 범행에 검찰이 흉기가 되는 구조인 것이다.

다음달 31일 종료를 앞둔 검찰 과거사 진상조사위원회의 활동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었다.

사상 처음으로 실시된 1년 3개월여 진상조사 활동이 당초 기대했던 검찰개혁의 지렛대가 되지는 못했지만, 검찰개혁의 필요성은 재확인했다는 평가다.

과거사위는 지난달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명박 정부 시절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불법사찰 사건을 수사했던 당시 검찰이 청와대 등 윗선 개입 규명에 소극적이었다"며 공수처 신설을 권고했다.

"정치적 중립성을 잃은 검찰을 견제하고 국가권력의 불법에 대해 엄정하게 검찰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공수처가 설치돼야 한다는 것이 명백히 확인됐다"고 했다.

"대통령 등 정치권력에 대한 소극적 수사와 진상 은폐 등 검찰의 문제점이 총체적으로 드러났다"는 지적도 덧붙였다.

그러나 반대로 청와대와 정부의 수사 외압은 여러 차례 검찰 수뇌부를 통해 거침없이 일선 수사팀에 전달된 사실이 드러났다.

검찰 과거사위가 밝힌 진상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 시절 문화방송 '피디수첩' 사건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검찰 수뇌부가 미국산 쇠고기 광우병 위험성을 보도한 피디수첩 제작진 수사팀에 "기소와 무관하게 체포하라" "무죄가 나와도 좋으니 기소하라"는 지시를 내려보냈다.

과거사위는 또 검찰 수사권이 범죄 혐의를 밝히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정부 정책 비판에 대한 이른바 '손봐주기' 차원의 수사였다는 판단도 내놓았다.

이 사건은 1심·항소심·대법원 판결까지 모두 무죄가 났지만 검찰권 남용에 대한 책임은 아무도 지지 않았다.

이밖에도 검찰 수사 관행과 조직 문화의 후진성이 재확인됐다.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의 경우 수사 중 가혹행위가 있었고, 김근태 고문 은폐 사건이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경우 고문 사실을 알면서도 눈감은 사례다.

검찰은 삼례 나라슈퍼 사건에서 경찰의 위법한 수사를 통제하지 못한 민낯을 드러냈고, 약촌오거리 사건에서는 부실한 수사지휘로 진범을 알아보지 못한 무능을 드러냈다.

한국방송 정연주 전 사장 배임 사건은 검찰이 형사처벌이 어렵다는 것을 알면서도 수사·기소한 검찰권 남용 사례다. 이 사건 역시 1심·항소심·대법원에서 무죄가 났다.

검찰 과거사위는 이런 검찰권 남용을 통제하기 위해 '법 왜곡 죄' 도입을 적극 검토하라고 권고했다.

검사 등이 특정인에게 유리하게 법을 왜곡·해석할 경우 처벌하는 법문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행 사법체계 안에서는 특정인이 누군가를 형사처벌을 받게 할 목적으로 모함하더라도 검사가 '수사협력자'로 구분하면 특정인에 대한 '무고죄'를 검토하지 않아도 된다.

특정인의 범행에 검찰이 흉기가 되는 구조인 것이다.

더구나 어떠한 증거도 없이 특정인의 진술만으로 수사를 개시하고 압수수색을 하고 구속영장을 청구하더라도 아무런 장애가 없는 구조다. 국가기관이 의도를 가지면 누군가에게든지 치명적인 폭력을 가할 수 있도록 허용되고 있는 것이다.

그 누군가는 구속상태에서 재판을 받고 무죄가 확정되어도 담당 검사는 직접적인 책임을 지지 않는 위험한 구조다.

고유권한이라 여기니 반성할 턱이 없고, 억울한 피해자에 대한 사과도 기대 할 수 없다.

과거사위의 진상조사 결과는 특히, 권력의 시녀 노릇을 한 검찰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영화에서나 설정될 상상의 산물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현실 속에 버젓이 존재했다는 것이다. 그동안의 검찰은 대한민국의 헌법이 정한 사법기관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지탱해야 하는 삼권(三權) 중 하나가 제자리에 있지 않았다는 걸 믿어야 한다.

검찰은 정권의 예하에 스스로 들어가서 권력 남용의 앞잡이가 되었으니, 자기를 부정하고 삼권의 균형을 무너뜨린 괴물이 아닐 수 없다.

검찰은 정권의 명을 받아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축을 손봐주고 비대한 권력의 비호를 받았다.

사건을 조작하기 위한 가혹행위가 판치고 고문사실을 은폐하고 묵인할 수 있었던 배경이다. 경찰 수사에 대한 부실한 지휘로 멀쩡한 사람이 억울하게 옥살이를 했지만 책임지지 않아도 됐다.

사익에 기울어

헌법을 부정한 검찰

과거사위의 진상조사 결과 발표는 특정인을 손봐주기 위해 법을 왜곡하던 시대의 종언을 고하는 신호탄이다. 정권이 원하면 죄 있는 사람도 풀어주고, 죄 없는 사람을 수사하고 꼴리는 대로 기소하던 야만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는 출발점이다.

검찰 내부에서 검사의 직무를 정기적으로 심사하고, 법을 왜곡한 사실이나 권한을 남용한 사실이 있으면, 준엄히 형사 처벌할 수 있는 제도적인 장치가 필요하다. 선택사항이 아니다. 헌법을 헌법이라고 읽고 사법부를 사법부라고 읽기 위해서다.

인권을 유린하고 권한을 남용한 검찰의 모든 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를 적용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다.

헌법을 거짓된 자들의 바이블로 여기고, 사법부를 복마전으로 삼았던 검찰의 과거에 대한 통렬한 반성과 광명 시대를 확인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도 그 당위를 정면으로 직시하고 있다. "검찰이 과거사를 반성한다고 해서 검찰에 힘을 몰아준 법과 제도를 고치지 않고 그대로 두면, '물 가르기'나 '당겨진 고무줄'처럼 도로 허탕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검찰 개혁을 못할까 두렵다고 했다.

검찰의 저항도 그렇거니와 검찰권 남용 재발 방지를 위한 국회 입법이 헛돌고 있는데 따른 우려일 것이다.

당리당략으로 여야가 대치하는 바람에 목하 국회는 식물 상태다. 공수처 설치, 검찰에 대한 외부 견제 등 검찰개혁 입법을 맡은 국회 사법개혁특별위원회도 엄중한 시대 명령을 거스르고 있다.

지금 검찰개혁보다 더 급한 일이 어디 있는가.

입법부마저 제자리를 이탈했으니, 이 나라가 민주주의 국가가 맞기는 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