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형편이 빈한하여 가까스로 목구멍에 풀칠 정도나 하며 사는 처지에 낡은 집을 허물고 새집을 짓는다 하면 혀를 차지 않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더구나 십여 년 동안 집을 보강하면서 그나마 허리끈을 졸라맸다는 것을 생각하면 낭비도 낭비이거니와 많은 것을 양보했던 세월이 억울하지 않을 수 없다.

익산시가 딱 그 꼴이다. 구조물 안전진단 결과 청사 건물이 붕괴 우려가 있는 등급으로 평가된 이래 지금까지 십억원 가까운 보수·보강비를 투입했다.

적잖은 빚을 진 처지였으나 변제를 미루고, 주민숙원사업들을 미루면서 우선적으로 안전을 확보한 것이 지금의 익산시 청사다.

특히 자주재원도 쥐꼬리만큼 밖에 되지 않는 익산시는 새청사를 지을 엄두를 감히 낼 수 없는 입장이었다.

재정을 안정화한 뒤 연차적으로 청사 건립을 추진해도 충분했다. 현 청사의 내구연한을 초과하지 않고도 새청사를 건립할 수 있는 여건이 무르익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운이 좋게도 정헌율 시장이 입성한 익산시는 2017년부터 매년 증액된 1,000억원 가량의 돈을 중앙정부로부터 교부받게 되었다.

행정안전부가 지방교부금 산정기준을 보완·개선한 덕분이었다. 4대 복지비 반영비율이 3% 확대된 것을 비롯해 출산장려 항목이 신설되었다.

무엇보다 교부금 산정기준이 도농복합도시 가운데 낙후지역에 유리하게 개선되었는데, 낙후도시 익산이 딱 그 대상이었다. 한마디로 돈벼락을 맞고 있는 것이다. 부채를 빠르게 청산해 나갈 수 있었던 배경이다. 남은 지방채가 올해 초 현재 408억원 정도 된다.

익산시는 올 연말에 200억원을 갚고, 내년에는 남은 빚을 완전히 청산한다는 계획이다. 익산시는 이 같은 교부세 기조가 당분간 변함없이 유지될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2021년부터는 매년 200억원 이상의 새청사 건립 기금을 조성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다.

의지만 있다면 그로부터 5년 뒤에는 1,000억원 정도의 청사 건립비를 거뜬히 조성할 수 있는 추이인 것이다.

익산시의회는 지난해 10월 행정사무감사를 통해 집행부에 청사 건립기금 조성을 촉구했다. 지난 2014년 익산시 청사 건립기금 설치 및 운영 조례가 제정되고 그 해에 3억원의 기금을 조성한 이래 4년 동안 단 한 푼의 기금도 조성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자 익산시는 지난해 말 즉각 100억원의 청사 건립기금을 조성했다. 이 조례가 매년 순세계잉여금(연평균 500억원 이상 발생)의 5%를 청사 건립기금으로 조성토록 한데 따른 것이다. 이처럼 익산시는 시기만 늦추면 자체 재원으로도 충분히 새청사를 지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익산시는 지난 2017년 12월 국토교통부가 시행하는 '노후공공건축물 리뉴얼 선도사업' 공모에 응모했고, 2018년 1월 2일 이 사업의 대상 지자체로 선정되었다.

정헌율 시장은 이 사업이 선정된 직후 익산시의 돈은 한 푼도 들이지 않고 새청사를 짓게 되었다고 여러 차례 자랑을 했다.

공교롭게도 6.13 지방선거가 6개월 앞에 다가온 시기였다. 정 시장은 '노후공공건축물 리뉴얼 선도사업' 선정 사실을 선거공보물에 자신의 업적으로 게재하기도 했다. '사업 개요가 민자를 유치해서 새청사를 짓되 수익사업을 통해서 그 건축비용 전부를 충당하는 방식이어서 익산시는 돈을 한 푼도 들이지 않게 되었다'는 게 그가 대내외에 공표한 내용이다.

그러나 그로부터 1년 5개월이 지난 5월 14일, 익산시는 현재 계획상 새청사 건립비용 시비 부담이 400억원에 달한다는 것이 확인됐다.

1년 5개월 전에 정헌율 시장이 시민들을 상대로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이 들통 나는 순간이다.

그런데 익산시가 이날 발표한 계획상 신청사 건립 추정사업비 850억원 가운데 '시비 400억원 부담'조차도 실현될지 미지수다. 국토부가 '노후공공건축물 리뉴얼 선도사업'에 선정된 도시 3곳에 대해 사업모델 수립 연구용역을 실시했는데, 그 결과 익산시의 경우는 200억원 가량의 수익을 낼 것이라는 결과를 내놨기 때문이다.

LH가 새청사를 건립하되 익산시가 제공한 부지에 아파트를 지어 분양수익금으로 공사비를 충당하는 방식인데, 국토부는 그 분양수익이 200억원이라는 산출 평가 결과를 내놓은 것이다.

두루 알다시피 익산시는 이를 수용할 수 없는 입장이다. 즉각 LH와의 협상에 나섰다. 그렇다기 보다는 'LH가 250억원 정도는 더 내놔라'고 일방 통지를 했다. 새청사 건립비용 중 450억원 가량을 부담하라는 익산시의 요구를 LH가 어떻게 평가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익산시는 LH가 450억원을 내놓는 것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400억원 이상의 시비 부담은 용납할 수 없다는 결기로 봐줘야 할 태도다. 그러나 익산시의 '시비 400억원 부담 결정'은 자가당착이다. 정헌율 시장은 이미 '시비를 들이지 않고 새청사를 지을 수 있게 되었다', '익산시가 그런 일을 해냈다'고 공표하여 6.13 지방선거에서 득을 봤기 때문이다.

공직선거법의 공소시효가 지났다고는 하지만, 만약 익산시가 단돈 몇 억이라도 시비를 들여 새청사를 건립한다면 정 시장은 선거기간 중에 허위사실을 공표한 꼴이 된다. 시효 이득 때문에 사법적 처벌은 피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정 시장 개인의 도덕적 책임은 막중하다.

익산시 행정에 대한 신뢰도가 크게 추락하게 된다. '노후공공건축물 리뉴얼 선도사업' 방식의 새청사 건립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하는 이유다.

재검토의 중대한 당위는 또 있다. '노후공공건축물 리뉴얼 선도사업' 은 현 청사를 허물고 그 자리에 새청사를 짓되, 익산시가 LH에 아파트 건설 부지를 제공하는 방식이라는 함정이 있다.

익산시는 현 상하수도사업단(영등동, 1,500평)과 구 경찰서(중앙동, 3,000평 ) 부지를 LH에 제공하는 것을 검토 중인데, 주변 거래가(평균 200만원 상회)를 감안하면 두 곳의 거래가 총액은 90억원을 상회한다. 익산시는 90억원이 넘는 사업 재원을 LH에 제공하고 수익금 중 일부를 받는 방식인 것이다.

익산시는 LH가 아파트를 분양해 수익금 450억원을 내놓더라도 500억원에 가까운 새청사 건립비용을 감당하는 꼴이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익산시가 직접 공영개발사업으로 해당 부지에 아파트를 건립해 분양한다면, 그 수익금으로 새청사를 짓고도 남게 되어 있다.

거짓말쟁이 이미지

극대화 결정판

익산시가 추진하고 있는 '노후공공건축물 리뉴얼 선도사업'은 익산시민들의 고혈을 짜서 토목 사업자 LH만 배를 불리는 호구짓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딱 하나 익산시가 500억원 가까이 들여서 얻는 것이 있다면 현 청사 부지에 새청사를 짓는다는 점이다.

익산시는 아무런 실익도 없고 손해만 보는 '노후공공건축물 리뉴얼 선도사업'에 스스로 손발을 묶었다.

이 방식대로라면 새로운 청사 부지를 물색할 필요가 없고 그래서도 안 된다. 현 청사 부지에 새청사를 지어야 하다는 구조적인 구속력을 확보한 것이다.

'새청사 북부권 건립'을 명시한 이리시와 익산군의 1995년 도농통합 협약서를 폐기처분할 수 있고, 논란을 잠재우는 길이 '노후공공건축물 리뉴얼 선도사업'인 것이다. 부도덕한 우민정책의 모델이라 할 만하지 않은가.

지역사회의 담론을 원천 봉쇄하고, 행정편의주의로 일방통행 하면서 막대한 재정을 허비하는 것이 '노후공공건축물 리뉴얼 선도사업'이다. 나아가 정헌율 시장의 '거짓말쟁이' 이미지를 극대화하는 결정판이다. 이래도 원점 재검토해야 할 이유가 부족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