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정 시장이 자청해 공식 사과의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자신으로 인해 익산이 전국에서 고립되는 상황을 겪으면서 잡은 균형이다.

그가 위기에서 '솔직'의 리더십을 난국 수습의 방향성으로 삼는 것을 보면서, 부적절한 발언으로 그 자신과 이 도시에 심대한 피해를 끼쳤지만 한편으로는 이번 사태가 값진 경험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정헌율 시장이 예기치 못한 상황에 처했다. 지난 5월 11일 열린 '다문화가족을 위한 제14회 행복 나눔 운동' 행사에서 한 축사가 발단이 되었다.

'생물학적·과학적으로 똑똑하고 예쁠 가능성이 높은 혼혈아'를 집약하는 단어 선택이 문제였다.

정 시장은 '잡종강세'라는 생물학 분야에서는 일반화된 말을 차용했다. 그들의 타고난 자질이 우리사회에 선순환될 수 있도록 잘 지도하는 환경을 구축해야 한다는 취지로 썼다.

하지만 정 시장은 전문적 영역 밖에 있는 우리사회에서는 '잡종'이 비난 또는 비하조로 통용된다는 것을 간과했다.

정 시장은 또 '지도'를 지나치게 우려한 나머지 "잘못 지도하면 파리폭동처럼 문제가 될 수 있다"는 의견을 표명했다.

'잡종'이라는 표현의 오류보다 더 큰 오해와 파장을 불러일으킨 지점이다. 그 말은 그들을 잠재적 위험요인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문화에 대한 '인식의 오류'를 넘어 '인권의식의 부재'를 드러냈다는 평가를 불렀다.

그런데 정 시장은 또 한 번 실언을 한다. 한 언론사에 '잡종' 발언을 해명하면서 '튀기'들이 예쁘고 똑똑한데 그 말을 쓸 수 없어 대신 표현한 말(잡종)로 선의의 뜻이었다고 한 것이다.

'인식 부재론'의 확대경 앞에서 '인권의식 부재' 상태가 포착된 꼴이 되었다.

가뜩이나 인종차별에 예민한 피해 당사자들의 가슴에 불을 지른 직접적인 기제였다.

정 시장이 공공의 언어를 사용해야 하는 정치인이라는 것과 익산이 여성친화도시 1호라는 점, 더불어 익산에 사는 다문화가정 수가 전북에서 두 번째라는 조건이 보태어지면서 걷잡을 수 없는 불길이 되었다.

정 시장은 즉각적으로 각 지역 방송사에 사과문을 보내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악의 없는 단순한 말실수 대가치고는 너무나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었을 수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그가 축사에 나선 행사장에는 600여명이나 되는 다문화가족들이 참석해 있었다. 정치인이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는 유권자들의 행사를 축하하는 자리였다.

그 행사의 주체들을 일부러 모욕하거나 폄훼 할 까닭이 없었지 않은가. 부족한 시간을 쪼개 축사를 하면서 표를 잃을 짓을 왜 하겠는가.

더구나 당시 현장에서는 자신의 본의가 잘 전달됐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 시의원의 정치적 의도에 의해 행사가 끝난지 한 달이 지난 뒤에 문제가 비화되었다는 생각이 들어 억울하기도 했다.

이 같은 정 시장의 심경은 그가 당초 사실을 보도한 언론사에만 사과문을 보낸 점, 사과문의 내용이 말실수에 대한 해명을 곁들이고 있는 점 등에서 그대로 나타난다.

정 시장의 그런 태도가 불길에 기름을 끼얹은 꼴이 되었다.

사태를 읽는 상황인식의 오류가 문제에 대한 인식 부재에서 비롯하고 있다는 오해를 부른 것이다. 피해 당사자들에게 정 시장의 사과가 진정성 있게 들리지 않는 이유였다.

지난 25일 전국에서 몰려 온 이주여성들 앞에서도 정 시장의 태도는 형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사과는 하고 있지만 어딘가 억울한 기색이 있었고, 자신의 실수에 대해 직설적인 어법으로 사과하는 것이 아니라 ‘다문화 1등 도시를 만들겠다' 등 에둘러 사과했다.

그러한 모습들이 경직된 태도로 비춰진 이유였다. 게다가 피해 당사자들의 "인권교육을 받아라"는 요구에 정 시장이 "즉답할 수 없다. 검토하겠다"고 대응하면서 분위는 경색됐다. 이후 양측의 말들은 서로에게 무의미해져 버렸고, 정 시장은 도망치듯 현장을 빠져나갔다.

물론 정 시장은 최후까지 잔류한 이주여성들에게 사과를 했지만, 자신의 실수에 대한 부적절한 태로로 '개선의 여지가 없다'는 인상을 심어준 꼴이 되었다.

왜 그랬을까를 생각해 본다. 상대방이 반성과 사과의 진정성을 가늠하는 척도는 '태도의 성실성'이다.

성실성의 척도는 성찰이다. 사과하는 태도에 고민한 흔적이 묻어나지 않는다면 어떤 수식도 상대방의 가슴에 닿지 못하고, 반발만 사게 된다는 것을 정 시장은 몰랐을까. 그럴 리 없다.

일련의 과정을 짚어보면, 앞서 형성된 그의 감정상태가 그의 사회적 감수성을 둔화시켰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우선 시정질문을 하던 시의원이 오직 정치적인 상처를 주기 위해 시정질문 주제와 아무런 상관이 없는 사실을 폭로했고, 몇몇 지역 방송사가 당시의 일을 취재해 보도했다.

가정해 본다. 정 시장은 한 달이나 지난 행사장의 일을 무기삼아 자신을 공격한 정치인에 대해 분노를 삭이기 어려웠다.

사태의 단초가 피해 당사자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상처를 주려는 정치적 목적에서 비롯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모든 것이 억울했다.

자신이 무심코 했던 발언이 어떤 파장을 미칠지를 생각하기 전에 자기방어 기제가 작동하는 바람에 인지오류를 범했다.

공격에 대한 방어만을 생각하는, 그 흑백논리는 객관적 평가와 대중의 정서를 읽을 기회를 잃어버리게 한다.

그것이 자신의 내부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외부에서 개입해 제동을 걸 틈도 없다. 이런 감정상태 아래에서는 당초 자신의 발언에 악의가 없었고, 오직 선의에서 비롯한 것이기 때문에 문제를 제기하는 피해 당사자의 오해가 또 억울할 뿐이다.

문제의 해법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정 시장이 기자회견을 자청하고 진정성 있게 사과를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둔화된 자신의 정서 때문에 홀린 듯 때를 놓쳐 버렸다.

그를 더 경직되게 하는 문제는 또 있었다. 그가 익산시의 수장이라는 점이었다.

그는 고위직 행정공무원 출신이다. 수장은 아파도 아프다 못하고 좋아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아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가졌을 법한 경우다.

하늘의 뜻을 살피면

수장이 체통을 잃으면 상하의 기강이 무너진다고 여기는 축이다. 공식적인 사과를 생각하기 어려웠고 그 자체가 두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다행히 뒤늦게나마 수장에게 근엄함보다 솔직함이 더 필요한 때가 있다는 것을 깨달은 듯 하다.

정 시장이 자청해 공식 사과의 자리를 마련한 것이다. 자신으로 인해 익산이 전국에서 고립되는 상황을 겪으면서 잡은 균형이다.

그가 위기에서 '솔직'의 리더십을 난국 수습의 방향성으로 삼는 것을 보면서, 부적절한 발언으로 그 자신과 이 도시에 심대한 피해를 끼쳤지만 한편으로는 이번 사태가 값진 경험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정 시장의 용기와 진정성은 분열된 이 도시를 통합하고, 위기 공유 시스템을 구축해 이 도시의 낮은 지표들을 끌어올리는 견인차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인권감수성이 너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처절하게 반성한다. 그동안 다문화가족 당사자의 입장에 서지 못했다. 유사한 실수를 하지 않도록 나와 직원들이 여러 차례 인권교육을 받겠다. 다문화가족 대표들을 만나 진심어린 사과를 하되 집에 직접 찾아가서라도 사과하도록 하겠다"라는 정 시장의 사과가 부디 피해 당사자들의 가슴에 닿기를 바란다.

그는 그렇게 깊이 머리를 숙였다. 이번 사과가 '피해를 입었다고 생각한다면 죄송하다'는 식의 조건부 사과나 해명을 곁들이는 것을 일절 배제한 채 전적으로 심판받는 자세에서 투영되기에, 무한책임론의 기류가 점차 약해지기를 바란다.

근자에 불어닥친 광풍은 이 도시의 수장을 연단(鍊鍛)하려는 하늘의 뜻이 아니었을까 한다.

부디 이번 사태를 계기로 다양성을 요구하는 상호 존중 의식이 정 시장의 뇌리에 이식되었기를 바란다. 그렇게 변화된 지형 위에서 이 도시에 산적한 현안들을 풀어나갈 혜안을 얻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