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법은 권리 위에 잠자는 자를 보호하지 않는다.

의회가 부당한 침해에 자위권을 행사하지 않음으로써 스스로 위상을 떨어뜨리는 것은 유권자인 시민을 배신하는 행위다.

의회의 감시와 견제 기능이 약화되어 발생하는 문제들의 피해는 결국 시민들에게 고스란히 안겨지기 때문이다.

집행부 역시 과잉반응으로 스스로 신뢰를 떨어뜨리고 있다.

관련 행정행위가 절차와 법 앞에 떳떳하다면 끈기 있고 성실하게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

익산하수슬러지건조시설 인허가 문제가 의회에서 거론되자 익산시와 익산시공무원노조가 잇따라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익산시는 관련 사안에 대한 결백을 주장하며 사법당국에 자진하여 수사를 의뢰했고, 노조는 의혹을 제기한 시의원을 규탄하며 사죄를 요구하고 나섰다.

이례적인 일이다. 그래서 눈길을 끈다. 익산시와 노조가 시민들의 관심을 자초한 까닭을 살펴보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발단은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임형택 의원이 지난 6월 13일 열린 제217회 익산시의회 정례회에서 던진 시정질문이다.

'오랜 세월 악취를 배출해 동산동 주민들에게 피해를 안겨 온 음식물쓰레기처리업체(A사)를 하수슬러지 건조시설 사업자로 인허가해 준 것은 특혜'라는 게 시정질문의 요지다.

임 의원은 시민의 대표기관인 의회와 대다수 주민들이 모르는 사이 진행된 이 비정상적인 허가가 어떻게 날 수 있었는지 그 배경을 도무지 알 수 없다고 했다.

'관련자들은 환경적폐, 환피아'라고 성토했다.

임 의원은 그로부터 일주일 뒤인 19일 기자회견을 열고, 익산시의 부실한 환경유해업체 관리 행태와 하수슬러지 건조시설을 인허가하는 과정의 문제점을 구체적으로 짚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A사는 공공하수처리시설과 함께 동산동을 비롯한 영등동, 어양동, 부송동 등 반경 4킬로미터 일원에 20년 넘게 악취피해를 유발해 왔다.

대기배출시설을 불법으로 운영해 과징금을 부과 받는 등 시설개선이 필요하고 관리감독을 강화해야 하는 사업장이었다.

그런데 익산시는 과징금을 부과한지 2개월이 지난 뒤에 A사가 약 7.5미터의 악취배출탑(굴뚝)을 5미터 이하로 낮추는 개선계획서를 제출하자 이를 수리해줬다는 것이다.

법상 굴뚝이 5미터 이하일 경우에는 굴뚝에서 악취를 측정하지 못한다. 업체 경계지에서 측정해야 하는데, 경계지의 대기에서는 악취가 허용기준치를 초과하지 않아 A사는 악취제로사업장이 되었다는 것이다.

A사는 그로부터 2개월 뒤에 사업체를 국내 굴지의 환경업체인 K사에 매각했다. K사는 기존 음식물쓰레기처리시설에 하루 74톤의 하수슬러지를 처리할 수 있는 건조시설을 증설토록 해 달라는 허가 신청서를 익산시에 제출했다.

사업체를 인수한 날로부터 열흘되는 날이었다.

익산시는 이를 불허했다. 동산동 주민들의 악취민원을 그 이유로 들었다.

2018년 5월 익산시장 선거운동 과정에서 정헌율 후보는 하수슬러지 건조시설과 같은 악취시설을 막아내겠다고 주민들 앞에서 공언했다.

그럼에도 K사는 민선 7기 정헌율 호가 출범한 지 3개월만에 건조시설 증설허가를 신청했다. 더구나 하루 처리용량이 이전보다 22톤 늘어난 96톤 규모의 증설계획이었다.

익산시는 그로부터 29일 뒤인 2018년 11월 8일에 허가를 내줬다. 이 같은 전격적 허가 처리 또한 이례적인 사례다.

의회도 모르고 대다수 주민들도 모르는 사이에 진행되었던 일이었다.

익산시는 또 268억원을 들여 추진하고 있는 익산공공하수처리시설의 하수찌꺼기 감량화사업으로 생산되는 연간 10억원어치 상당의 소화가스 사용계획을 변경했다.

당초 계획은 익산공공하수처리시설의 소화조 보일러 가동에 연간 7억원어치 정도를 쓰고, 3억원어치의 소화가스는 전기에너지로 전환해 판매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익산시는 이 소화가스 전량을 K사에 공급하는 것으로 계획을 변경하고, 2019년 1월 17일 K사에 총 20년 동안 소화가스를 공급한다는 협약을 체결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익산시는 이 같은 임형택 의원의 주장들을 '허가 절차상 어떠한 하자도 없고, 위법한 행정행위는 없었다'는 취지로 일축하는 입장이다.

특히 의혹제기의 핵심이 되는 '굴뚝을 낮춘 것'은 신고대상이지 허가대상이 아니라고 밝힌다.

굴뚝을 낮추는 것은 업체의 임의 선택사안이고, 모든 절차가 적법하게 이루어졌으니 특혜 시비거리가 존재하지 않는다고 반박한다.

특히, K사가 신청한 허가 조건이 형식상 충족되어 승인을 해줬을 뿐이다.

익산시와 K사가 익산시에서 발생하는 하수슬러지 처리 위탁 계약을 체결한 것도 아니다.

공고를 통해 위탁처리사업자를 공정하고 투명하게 선정하면 된다.

익산공공하수처리시설에서 발생하는 소화가스를 K사에 무상으로 공급한다는 것도 아니다.

익산시는 하수슬러지 건조시설 사업자에게 연간 7억원어치의 소화가스를 팔고, 하수슬러지 건조시설의 폐가스소각보일러에서 발생하는 폐열을 익산공공하수처리시설 보일러의 열원으로 무료로 공급받는다는 계획이다.

그렇다면 익산시와 K사가 밟아 온 족적에 정황상 특혜의혹이 제기되었더라도, 짧은 시간 내에 진실이 규명될 사안이다.

일을 자꾸 부풀리는 이유가 무엇인가

그런데 익산시 관련부서 공무원들은 임 의원이 6월 13일 본회의장에서 시정질문을 한 직후 의장실로 몰려가 "향후 임의원의 질의에 우리는 묵비권을 행사하겠다"고 통보했다.

그 와중에 전례없는 일이 벌어졌다.

익산시공무원노조가 임형택 의원의 막말을 규탄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나선 것이다.

임 의원이 환피아, 환경적폐세력을 운운하여 익산시장과 해당 공무원들을 인격적으로 모독했다는 것이다.

임 의원의 무례는 결과적으로 시의회의 품격을 떨어뜨렸다고 힐난했다.

노조는 이를 전제로 시의회를 향해 막말 재발방지대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또 임 의원의 막말 부분이 방송으로 송출되지 않도록 해당 부분을 삭제한 후 사용될 수 있도록 조치하라고 했다.

임 의원을 향해서는 공개 사과를 요구했다.

망발이 아닐 수 없다. 몰랐을 리 없다.

공무원들이 행정감사권을 가진 대의기관의 수장을 찾아가 법으로 정해진 피감사자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자기부정이다.

동시에 고유권한을 행사하는 시의원을 겁박하는 것으로서 반민주적인 행위다.

무엇보다 직무유기다. 형사처벌을 떠나서도 조례상 의장이 시장에게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할 수 있다.

아니, 몰랐을 수도 있겠다.

특히, 공무원노동조합이 특정 사무와 관련된 의원의 발언을 성토하고 나서는 것은 도가 지나친 간섭이며 월권이다.

공무원노조란 조합원들의 후생복리를 위한 결사체일 뿐이다.

사용자와 노조 사이에 존재하는 이해의 간극을 좁히는 일이 존립 목적이다.

익산시를 대표하는 기관이 아닌 것이다.

사용자의 명예를 지키는 사수대는 더구나 아니다.

그러나 노조가 대의기관 구성원의 그릇된 행태를 거침없이 지적하는 것을 보면, 그런 계통간 질서를 모르고 있었던 것도 같다.

하지만 이런 집행부와 노조의 부당한 행태에 대해 의회는 수수방관했다.

상임위에서 담당국장에게 유감을 표명하는 정도였다.

임 의원으로서는 고군분투가 아닐 수 없었다.

임 의원은 7월 12일 집행부로부터 업무보고를 받는 중에 집행부 관계자들의 묵비권 행사 통보는 너무했다고 짚었지만 집행부는 그에 대한 공식적인 입장표명을 하지 않았다.

집행부는 대신 5일 뒤인 17일 자진해서 하수슬러지 건조시설 관련의혹에 대해 수사의뢰를 했다.

임 의원은 다시 일주일 뒤인 19일 본회의장에서 신상발언을 통해 집행부의 묵비권 통보에 유감을 표명하면서 집행부의 부적절한 의회관을 지적했다.

그러자 공무원노조가 또다시 성명을 통해 임 의원을 노골적으로 비방하고 나섰다.

선거법 관련 재판 진행상황을 언급하며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 부끄러운 시의원'으로 매도하고, '카더라 통신을 인용한 엉터리 주장으로 경찰에 고소 당한 시의원'이라며 허위사실을 공표했다.

'임 의원의 막말 때문에 명예퇴직을 신청한 직원이 있다'는 미확인 된 사실도 공표했다.

특히 노조는 이 성명에서 임 의원이 '환경적폐, 환피아'라는 말로 공무원을 범죄집단으로 몰아갔다고 주장했는데, 임 의원은 특정한 사실관계를 적시하고 그에 대한 합리적인 의심을 충족시키는 행위를 한 공무원들에 한정하여 '환경적폐, 환피아'를 거론했을 뿐이다.

무고한 환경직 공무원 전체나 공무원 집단을 싸잡아 매도한 바가 없는 것이다.

그런 사실을 몰랐을 리 없다. 그런데 왜 공무원노조는 시치미를 떼고 무모한 폭거를 감행한 것일까.

이성보다 감정을 앞세운 노조의 성명전은 의회와 집행부는 물론 자신을 부정하는 행위일 뿐만 아니라 '자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래서 더욱 그 배경이 궁금해진다.

상호존중 공동선 지향 방향성이 절실하다

어쨌든 이 같은 노조의 행태에 대해 익산시의회는 뒤늦게 우려를 표명했다.

정상적인 의정활동을 위축시키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노조의 본연의 목적에 부합하는 활동에는 적극적인 지지와 격려를 보내겠지만, 본분을 넘어선 의회에 대한 도전은 묵과하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적기를 놓친 의회의 대응은 아무런 전환점이 되지 못하고 있다.

노조가 이에 대해 무반응일 뿐 아니라, 집행부와 의회의 대치국면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인 것이다.

한마디로 집행부는 의정활동 중인 시의원의 질문에 묵비권을 행사하고, 노조는 의정활동 중에 나온 시의원의 표현을 꼬투리잡아 공무원 집단의 위력으로 재갈 물리기를 시도하는 일이 반복될 여지가 상존하는 것이다.

법은 권리 위에 잠자는 자를 보호하지 않는다.

의회가 부당한 침해에 자위권을 행사하지 않음으로써 스스로 위상을 떨어뜨리는 것은 유권자인 시민을 배신하는 행위다.

의회의 감시와 견제 기능이 약화되어 발생하는 문제들의 피해는 결국 시민들에게 고스란히 안겨지기 때문이다.

집행부 역시 과잉반응으로 스스로 신뢰를 떨어뜨리고 있다.

관련 행정행위가 절차와 법 앞에 떳떳하다면 끈기 있고 성실하게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

문제를 들고 나온 시의원을 적대시하는 것은 오히려 의심을 살 뿐이다.

행정행위가 중시해야 할 것은 '감시 앞에 떳떳함'과 동시에 '정당하고 선량한 민원인 보호'이기 때문이다.

하수슬러지 건조시설 관련 문제에서 지금은 아무 것도 잘못된 것이 밝혀진 바가 없다.

의혹이 제기되었을 뿐이다.

그런데 이 문제를 다루는 관련자들이 감정적으로 충돌함으로써 본말이 전도되기에 이른 것이다.

작금의 집행부나 노조의 행태를 보면서 누군들 그 배경을 의심하지 않겠는가.

제동이 걸리지 않는 충돌의 결말은 삼척동자도 안다.

상호존중의 자세로 오직 공동체의 공동선을 지향하는 관계 복원이 절실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