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익산은 바야흐로 '환경유해 업체들의 천국'의 명성을 전국적으로 드날리고 있다. '장점마을' 사태는 그 정점이다.

마을 옆에서 비료를 생산하는 비료공장이 발암 물질을 배출해 주민들의 건강에 치명적인 해를 끼쳤다. 작동하지 않는 익산시 환경행정의 현주소다.

이 공장에서는 발암물질들이 제대로 처리되지 않고 대기중으로 배출됐다. 법상 퇴비로만 사용하도록 되어있는 담뱃잎 찌꺼기를 유기질 비료로 생산하는 불법이 자행된 탓이다.

생산공정에서 담뱃잎 찌꺼기를 건조시킬 때 발암물질이 수분과 함께 증발되어 공기중에 섞인 것이다.

비료공장에서 배출한 발암물질은 대기중에 확산되어 장점마을을 덮쳤다. 허술한 대기배출시설 탓이었다. 생산공정에서 발생하는 악취도 20년 가까이 주민들에게 고통을 안겨줬다. 폐기물 처리도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공장 가동이 중단된 지 1년 뒤에 매립되어 있던 폐기물 1,444루베가 공장바닥에서 발견됐다. 이로 인해 비료공장이 설립된 2001년 이후 2017년 말까지 주민 99명 중 22명(국립암센터 기준, 주민들은 33명이라고 주장)에게 암이 발생했다.

이 중 14명이 사망했다. 장점마을의 암 발병률은 간암, 기타 피부암, 담낭 및 담도암, 위암, 유방암, 폐암에서 전국 표준 인구집단에 비해 많게는 25배의 범위를 보였다.

환경부는 지난 14일 지역에 대한 환경오염 노출평가와 주민건강영향평가 결과를 종합·분석해 비료공장이 배출한 유해물질과 주민들의 암 발생간에 역학적 관련성이 있다는 최종 결과를 발표했다.

주민들은 문제의 비료공장이 가동을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부터 자신들이 어떤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가를 직관적으로 알았다.

공장에서 발생하는 극심한 악취로 두통과 구토증, 호흡곤란을 겪으면서다. 특히 인근 저수지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하는 기현상을 수차례 목격했다.

마을의 생활용수에서 전에 없던 냄새가 나고, 역겨운 맛이 났다. 농업용수로 쓰는 지하수에서는 더 강한 냄새가 났고, 갈수록 탁도가 높아져갔다.

주민들은 이 같은 위험신호를 익산시에 수시로 알렸다. 이 모든 환경 오염원으로 인근에서 가동되고 있는 비료공장을 지목했다.

그러나 익산시는 2016년 말까지 이 같은 주민들의 주장을 전면 묵살해 왔다. 또한 지속적인 지도감독권 이행 요구에 꿈쩍도 하지 않았다.

장점마을 주민들이 전라북도에 집단민원을 제기하기 전까지 익산시에 문제의 비료공장에 대한 점검일지가 일절 존재하지 않는 이유다.

익산시가 가장 기본적인 책무를 저버리고 장기간 방관하는 바람에 비료공장의 오염 물질은 대기를 타고 주변 토양에 끊임없이 쌓였으며, 수로를 타고 주변 농지의 용수로 쓰이는 저수지에 반복적으로 섞여들었다.

2017년 4월과 8월 공인 조사기관의 시료 분석 결과는 직무를 유기한 익산시 환경행정에 대한 보고서다.

비료공장의 처리수와 집수조, 마을 소류지에서 발암가능 물질과 발암확정 물질이 검출됐고, 소류지의 오염도 역시 높았으며, 마을 지하수에서도 발암가능 물질이 검출되었다.

익산시 환경부서 공무원들이란 환경유해업체를 방목하면서 시민들의 혈세를 축내는 철밥통이라는 사실을 단적으로 방증한다.

그러나 정헌율 시장은 고위직 관료출신으로 뼛속 깊이 공무원이었다. 장점마을과 관련하여 직무태만 또는 직무를 유기한 어떤 공무원도 징계하지 않았다. 주민들이 상급 관청에 집단민원을 제기한 이후 3년이 지나가도록 자체감사를 벌인 일도 없다.

문제가 구체적으로 드러나지 않아서 감사 대상에 이르지 못했다는 변명은 '눈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다.

장점마을 주민들 사이에서의 암 발병 등 비특이성 질환이 비료공장에서 배출한 발암물질과 역학적 관련성이 있느냐를 확인하는 시간이 늦어졌을지언정, 비료공장이 20여년 동안 환경오염 물질을 배출한 사실은 집단민원 발생 직후에 밝혀졌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20년 동안 익산시 공무원들이 직무유기를 한 사실, 그로 인해 토양과 수질이 극심하게 오염된 사실은 사태 초기의 시료분석 결과로 충분히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심각성은 그 이후에도 조사와 분석결과를 통해서도 누차 확인되었다.

공무원들은 특정업무와 관련하여 2년이 지나면 징계 대상에서 벗어난다. 공소시효와 같은 맥락이다. 정 시장이 비위 공무원들을 징벌하지 않는 이유로 이 징계시효를 내밀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시에도 담당공무원은 있었고, 시효의 기산점이 적발된 일시인 만큼 이후에도 계속 징계 대상은 존재했다.

징계시효가 지나면 징계할 수 없는가. 아니다. 법에 따라 처벌 할 수 없더라도, 자치단체장은 특정 공무원의 보직을 박탈하여 무보직 상태로 대기시키는 등 징계에 준하는 조치를 얼마든지 할 수 있다. 행정조직의 수장이 자신의 의지를 보이는 수단으로 징벌 또는 징벌적 조처만큼 효과적인 게 또 있을까.

자위적 관점에서 그릇된 과거를 청산해야

하지만 정헌율 시장은 장점마을 사태 이외에도 재임 중 수차례의 대형사건들이 터졌지만 징계권 행사에 지극히 소극적이었다.

오히려 특정 사업 관련 비위행위로 형사처벌을 받고 퇴직한 사무관을 국가식품클러스터 식품산업정책보좌관에 임명했다.

당시 관련 사무관의 비위행위에 정헌율 시장이 연루되지 않았나를 의심하는 목소리가 비등했다.

또 눈길을 끄는 사건이 있다. 일반산단 진입로 공사 비리다. 이를 감사한 전라북도는 '법정 의무 불이행, 과다 준공, 보고 태만, 허위 공문서 작성, 지연배상금 면제 특혜, 설계변경 공사비 부풀리기, 관급자재 허위 검수, 안전점검 부적정' 등을 밝혀냈다.

이 비리 백화점은 공사를 시행한 익산시 담당부서가 복마전이었다는 사실을 적나라하게 말해 준다. 하지만 감사가 뒤늦게 이루어진 바람에 관련 공무원들에 대한 징계시효가 지났다. 정헌율 시장은 관련 공무원들을 '훈계' 조치 하는데 그쳤다. 보직을 박탈하지도 않았다. 이들이 인사상 불이익을 받지 않는 상태를 유지시켜준 것이다.

정 시장은 더 나아가 여러 서기관 후보자들 가운데, 비록 '훈계'에 그쳤으나 산단비리에 직접적이고도 깊이 관련된 것으로 지목되는 사무관을 서기관으로 승진시켰다. 공무원의 비위행위를 옹호하는데 그치지 않고 비리를 권장한 것이다.

이런 비정상의 인사권 행사를 지켜보면서 정헌율 시장이 관련 공무원들과 결탁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무리가 있다고 할 수 있겠는가.

이런 과정에서 정 시장이 주창하는 '청렴'이 공무원들에게 하달 되겠는가. 가증스럽지 않겠는가.

환경부가 장점마을 역학조사 결과를 발표할 때 정헌율 시장은 해외에 있었다. 그는 그 일정을 알고 있으면서도 익산시와 자매결연을 맺은 중국 진강시에 가서 발표 기일을 넘겼다. 그는 당일 보도자료를 통해 장점마을 주민들에게 공식사과하고 재발방지 대책마련을 약속했다.

그러면서도 책임자 문책은 또 감사원 감사결과 후로 미뤘다. 지금까지 드러난 사실로는 공무원들을 문책하기 어렵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익산시장으로서 익산지역의 환경파괴를 막기 위한 자위적 노력 의무를 방기하는 태도가 아닐 수 없다.

우리 모두가 충분히 알고 있는 바와 같이 그릇된 과거를 청산하지 않고는 새로운 내일을 맞이할 수 없다.

정 시장이 또다시 그러한 책무를 방기하지 않는지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게 되는 이유다.

전직 공무원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정 시장에게 다시 닥친 시험대가 아닐 수 없다.

철밥통이었던 사람으로서 공무원을 보호하려는 본능이 익산시민들과 익산의 산하에 얼마나 막대한 피해를 끼치고 있는가.

다시 생각해 보아도, 정 시장의 그러한 양태를 단순히 전직 공무원의 습속 탓으로 돌리기에는 뭔가 크게 부족하다.

정 시장이 전문적으로 비위 공무원들과 한통속이 아니냐고 의심하게 되는 단초다.

한 번이라도 그가 후세에 부끄럽지 않은 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 하는 게 기적을 바라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