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왜 지방자치인가. 현장에 있는 사람들이 현장의 특성과 욕구를 잘 파악할 수 있다는 데서 비롯했다. 지방자치란 지역 살림살이를 지역사람들에게 맡기는 것이니, 지역사람들이 살림꾼을 뽑아 삶의 질을 실질적으로 높여가도록 하는 것이 그 방향성이다.

선출된 자치단체장에게 지방자치시대가 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우선 중앙집권체제에서 굳어졌던 획일적인 사고와 주종관계의 틀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지역사람들의 목소리를 듣고 답하며, 지역사람들에게 묻고 답을 찾는 것이 핵심 덕목이다.

지방자치제가 출범한 지 24년이 지났다. 그런데 정착되고도 남았어야 할 지방자치의 취지를 새삼 반추하게 되는 까닭은 무엇인가. 정헌율 호 익산시의 이상한 행태를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워서다. 무엇보다 불투명한 의사결정과 모르쇠식 일방통행이 만연한 탓이다.

그것은 관선시대로 되돌아간 느낌을 주며, 오히려 과거 관선시대의 적폐보다 큰 폐단들을 낳고 있다는 절망감을 안겨준다. ‘공동의 목표 추구’는 구실일 뿐 수많은 정책과 행정행위에 다른 의도가 있다는 의심들이 꼬리를 물게 하는 것이다.

익산시가 한창 추진하고 있는 시청사 신축과 민간공원특례, 광역상수도체계 도입 등이 그 대표적인 예다. 시청사 신축은 응모 형식을 빌었다. 노후 청사를 헐고 그 자리에 새로 짓는 것을 전제로 하면, 정부가 보증하는 우선협상 대상자(LH)를 붙여주는 청사리뉴얼사업 공모에 참여했다.

익산시는 국토부가 공모한 이 사업에 선정됐다. 이에 따라 익산시와 LH는 서로 협력하는 관계를 맺었다. 기본적으로 LH가 청사를 지어주는 것이 골자인데, 익산시가 보유하고 있는 땅을 제공하면 LH는 그 땅에 아파트를 지어 분양수익으로 비용을 회수하는 방식이다.

그래도 비용이 모자라면 익산시가 시비로 충당하게 된다. 말하자면 익산시가 ‘노후청사리뉴얼사업’이라는 정부공모에 선정된 것은 청사를 새로 짓는 계기를 맞이한 것일 뿐, 달리 ‘선정’에 따른 혜택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이 정부공모사업으로 익산시가 얻는 게 하나 있다. 사업의 이름이 말해주듯이 그 전제 조건이 오래된 청사가 있던 자리에 새청사를 짓는 것이므로 새청사의 부지를 따로 물색하며 고민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 공모사업은 익산시에 ‘새청사부지 선정을 위한 여론수렴 생략’이라는 혜택을 준 것이다.

이 정부 공모는 행정편의주의의 발로이며 과거 중앙집권시대의 적폐에서 비롯했다. 그 공모요강을 읽어 본 익산시의 공무원, 혹은 그 공모요강을 보고 받은 정헌율 시장은 익산시의 입장에서 이 공모에 응모하는 것은 지극히 위험하고 결코 응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직감했어야 맞다.

이 공모는 본질적으로 지방자치를 역주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익산시에는 1995년 이리시와 익산군이 서로 통합할 때 작성한 합의서가 엄존한다. 합의서에는 새로운 행정타운은 북부권에 조성한다고 명시돼 있다.

시·군이 통폐합되면 도시는 팽창되는 반면 농촌지역은 낙후 일로 속에서 극심한 박탈감에 빠질 것이라는 우려가 컸고, 그에 따른 반발을 조정하는 수단이었다. 도시의 균형발전이라는 통합정신과 시대정신에도 부합되는 합의 내용이었다.

익산시가 노후청사리뉴얼사업 공모에 응모하지 말았어야 하는 이유다. 응모한 순간 행정편의주의를 선택한 것이며, 주민의사를 우선하는 지방자치의 정신에 정면으로 배치(背馳) 되기 때문이다. 다 차치하고라도 익산시는 신뢰를 잃게 되었다.

단적으로 정헌율 시장은 불신받는 시장이 되었고, 주민들의 분쟁과 갈등을 중재할 수 있는 조정력을 상실한 것이다. 정치인에게 이보다 큰 손실이 어디 있으며, 이에 버금가는 중과실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특히 선출직 단체장이 ‘주민’을 중심가치로 삼지 않는다면 지방자치는 왜 필요한 것인가.

꼭 정부공모에 응모해서라도 청사를 새로 지을 명분을 만들고 싶었다면, 응모하기 전에 최소한 북부권 주민들에게는 의견을 물었어야 했다. 하다못해 익산시의회의 의견 정도는 들었어야 했다. 하지만 청사 신축을 그렇게 서두를 필요도 없었다.

민선4기 이후 청사는 계속 보강되어 비교적 안전한 상태가 되었다는 구조안전진단 평가를 받아놓고 있다. 어차피 익산시의 재정으로 청사를 짓는 방식이라면, 신축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었다. 하지만 정헌율 시장은 지방자치를 유린하는 청사신축 방식을 선택했고, 그 정부공모 선정에 따라 익산시비는 하나도 들이지 않고 청사를 지을 수 있게 되었다는 얼토당토 않는 궤변으로 또 불신을 샀다.

갈등과 반목을 양산하는 이상한 정치

익산시가 일방통행식으로 밀어붙이고 있는 민간공원특례사업은 ‘일몰제가 임박했다’는 사실을 전제한다. 그동안 도시공원에 부속된 사유 토지와 건물에 대해 개발을 제한해 왔지만, 일몰제 시계가 다 돌기 전에 공원관리기관인 자치단체가 사유재산을 매입해 공익목적을 달성하거나, 개발을 허용해야 하는 기로에서 익산시는 민간공원특례사업을 선택했다.

말하자면 익산시는 스스로 제한한 두개의 선택지 가운데 전자를 선택한 것이다. 그런데 민간공원특례사업은 민간건설업자들을 끌어들여 민간자본으로 당초 목적을 달성하는 방식이다. 해당 사유토지들을 매입할 재정이 부족한 익산시로서 불가피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는 ‘일몰제 대응’에만 핀을 맞춘 단세포적이며 근시안적인 결정이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민간공원특례사업의 기본 틀은 건설업자가 공원 내에 아파트를 지어 분양수익을 회수하고, 나머지 사유토지에 공공시설을 짓거나 공원을 조성하는 방식이다.

당초 공원 내의 사유재산권 행사를 침해할 수 있었던 근거인 ‘공공의 이익’을 고려했다면, 민간공원특례사업은 선택할 수 없었다. 기본적으로 공공재를 훼손하는 일이고, 난개발이 불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시민들의 기본권을 직접적으로 침해하는 문제인 것이다.

일몰제 대응을 위해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은 선택이 아닌 ‘필수’사항인 것이다. 시간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익산시가 시인하는 바와 같이 해당 도시공원 내 토지들에 대한 ‘재정사업실시 인가’를 받으면 일몰제 이후 5년의 시간을 벌수 있다.

정부도 도시공원 일몰제의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다각적인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중이다. 서두를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민간공원특례사업을 추진하는 익산시는 모르쇠 일변도다. 도시공원 일몰제는 근원적으로 일방적인 기본권 침해 시대의 종언을 의미하는데, 익산시는 환경을 훼손하고 시민의 건강권과 행복추구권을 유린하면서 이 사업을 강행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시민들의 의견을 전면 묵살하면서 시대를 역주행하고 있다. 대아리 물을 용담댐 물로 바꾸는 먹는 물 체계개선도 그와 궤를 같이 한다. 기존에 먹어온 물을 공무원들이 생수로 마시며 맑은 물로 치면 전국에서도 으뜸이라고 자랑하던 익산시다.

그런데 민선 6기 들어 먹는 물을 바꾸려던 익산시는 강력한 시민 반대여론에 봉착했다. 체계개선 비용도 막대하고 몇 곱절 더 비싼 물을 먹고 싶지 않다는 의견이었다. 이에 따라 먹는 물 체계 개선론은 슬그머니 꼬리를 감췄었다.

시민들이 요구하는 바대로 공론화를 통해 결정하겠다는 꼬리표를 단 뒤였다. 그렇게 3년이 지나는 동안 먹는 물과 관련해 아무 말이 없던 익산시가 지난 3월 수도정비기본계획변경 용역을 발주했다. 전문기관이 타당하다고 하면 익산시는 또 밀어붙일 것이 뻔하다.

일방통행의 구실을 만들어낼 것이다. 그동안 보여 온 정헌율 호의 행태를 감안하면 그런 의심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이제는 익산시가 한 번이라도 어떤 일을 벌일 때 시민들의 의견을 묻는 태도를 보는 것이 희망사항이 되었다.

행정공무원 출신의 한계를 절감하는 것이다. 세상은 지방분권시대를 달리지만, 정헌율 시장은 중앙에 예속된 획일적 사고방식을 수정하지 못하거나 않고 있는데서 비롯한다.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그가 자꾸만 일깨우는 우리의 칠흑같이 막막한 현주소가 아닌가 한다.

여론수렴을 왜 하는가. 사후에 발생할 갈등과 반목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2019년의 세밑에서 묻게 된다. 지역발전은 고사하고 갈등과 반목을 조장하는 것이 정치를 해보겠다고 나선 행정공무원 출신식 정치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