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이런 사정을 인문학적으로 말하면, 이 도시는 외형에서부터 끌림이 미약하다.
사람의 마음을 끄는 비언어적 요소나 비언어적 표현 자체가 딱히 없는 것이다. 이 도시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의 자긍심이 묽은 이유일 법도 하다.
이제 익산의 유물과 유적지들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주목받게 되었지만, 익산시민들은 아직 그것을 소화하지 못한 상태다.
익산사람들에게서조차 세계문화유산을 보유한 사람의 표정이나 몸짓이 배어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 자랑스러움이 표정으로 드러나는 순간까지 얼마나 시간이 필요할 지도 모른다. 지금 처럼 세계문화유산이 도시 외곽의 섬에 갇혀 있다면 그 시간은 요원할 수도 있다.
가치는 사람이 평가하는 것이라는 맥락에서도 직관적이고 감성적으로 세계문화유산의 배경과 원리를 읽을 수 있는 공간이 도심속에 있어야 한다.
익산사람들부터 먼저 말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 공간에 관광객들이 돈을 써도 아깝지 않은 체류 조건들을 구축해야 한다.

정헌율 시장은 지난 13일 정책 당면 업무보고에서 "이제 무왕의 도시로서 관광마케팅을 본격 시작해야 할 때"라고 선언했다.
지난 11일 개관한 국립익산박물관을 거점 삼아 한층 높아진 천년 고도(古都) 익산의 이미지 판매에 전격 나서겠다는 의지의 천명이다.
정 시장은 그 실천방안으로 철도교통 중심지인 익산역의 장점을 최대한 살리라고 주문했다.
그동안에는 용산역에서만 전국 대상 관광홍보를 해왔는데, 앞으로는 수서역 등 주요 역들로 홍보 범위를 넓혀가라고 한 것이다.
세계유산의 도시이자 역사문화의 도시 위상을 알리는 것이 홍보의 주요 목적이다.
2022년 ‘익산방문의 해’ 추진의 일환으로 국립익산박물관을 찾아오는 관광객들의 편리한 관광을 위해 표지판을 개선하고 편의시설을 정비하라고 지시했다.
또 관광산업에 연계하는 토산물 직거래장터를 개설해 지역경제 활성화에도 최선을 다해 달라고 당부했다.
외부관광객 유치 못지 않게 시민의 관심과 참여가 중요하다며 시민의 자긍심 고취에 적극 나서라고도 했다.
기 운영하고 있는 '내고장 바로알기' 프로그램과 연계해 익산지역에 소재한 10개의 박물관을 돌아보는 박물관 투어를 적극 활용하라고 방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익산시가 이렇게 관광 활성화에 나선다고 하니, 더 많은 관광객들의 방문이 익산이라는 도시의 성장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까를 질문하게 된다.
그 답은 의외로 단순하다. 관광객이 스쳐지나가는 도시라면 그 효과가 미미할 것이고, 관광객들이 며칠씩 체류하는 도시라면 성장가도에 들어설 것이다.
그런데 익산의 중심 관광축은 근래 백제권 관방벨트에 편입된 금마와 왕궁 일원이다. 도시의 동측단에 물러나있어 철도이용객들의 접근성 조차 떨어진다.
단적으로 공주·부여 일원을 둘러본 관광객들이 금마와 왕궁을 경유해서 고속도로로 빠져나가는 구조다.
관광지의 성과를 도심이 공유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관광객들을 끌어들일 만한 도시의 매력이 없는 탓이다.
볼거리, 먹거리, 즐길거리는 물론 익산만이 축적한 공간도 내놓을 만하게 보존된 것이 없다.
도심속의 건축물들만 해도 역사·경제·문화적 산물들을 쉽게 볼 수 없다.
역사의 변곡점을 맞이할 때마다 과거를 헐고 지운 뒤 허상의 체계를 구축해 온 탓이다.
도로는 어디나 그렇듯이 자동차들이 점령했다. 이런 기계의 영역을 따라 형성된 가로에서는 사람들이 산책하는 풍경도 되찾기 어렵다.
익산을 상징할 공간이 무엇보다 필요한 이유다.
마침 중앙동·송학동·인화동 등 익산의 주요 구도심들에 대한 재생이 국비사업으로 추진되고 있다. 기왕에 천년도고 익산의 담론들이 내재하는 공간으로 재편되기를 요청할 만한 시점인 것이다.
문화적으로나 역사적으로 익산을 상징하는 건축양식 또는 건축물들을 생산하고, 관광객들을 체류시킬 만한 즐길거리를 담아내는 방향성이 설정되지 않으면 겉핥기식 도시재생에 머물 공산이 크다.
도시를 대표하는 건물을 짓기 위해서는 헐어야 할 건물은 헐어야 한다.
스토리가 있는 공간을 구축하기 위해서는 천년고도 익산이 지향하는 도시의 이념을 투영할 공간의 재배치가 필요하다.
현재 추진하는 국비사업으로 그 뼈대를 세우고 그것을 실현하는데 익산시비 투입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천년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익산이라는 도시의 이념은 무엇인가. 사랑이다. 신분과 국경을 초월한 서동과 선화의 사랑이다.
기가 막히게 '사랑하기 좋은 익산'이어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들의 천국이어야 한다.
구도심이 사랑을 위한 시각은 물론 소리와 감촉, 냄새와 맛으로 채워진 공간으로 거듭나야 한다.
박물관에 있는 세계문화유산들은 사랑이 박제된 기억의 조각들이다. 도심속에 부활한 사랑을 풀어놓은다면, 미륵사지와 왕궁터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구도심이 멀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관광객들에게 박물관과 같은 엄숙한 고찰만을 요구하는 것이 '관광객 수요 증대를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라는 모토에 부합하기 어렵기에, 상상력을 자극하는 감각적 공간으로 관광객들을 유인해야 한다는 제안이다.
관광산업이라는 것은 궁극적으로 '나'를 내보이고 찾아와 보는 이를 담는 일체의 활동이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관광객들이 머물러 생각하고 즐기지 않는 관광지가 지속가능하다 할 수 없듯이 도시의 옛 기억을 소환하고 체험하며 몸과 마음으로 몰입할 수 있는 공간은 관광지의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특히 익산의 박물관들이 소장하는 유물들이 생활을 통해 구현된 미술품들이라고 한다면, 그 연표를 외우는 것은 관람객에게 무의미하다.
생활의 일부로서 소통수단으로서 관람객에게 정신적인 풍요를 주지 못한다면, 우리가 소장하는 오래된 기억은 해독하기 어려운 암호에 불과 할 것이다.

시민들이 먼저 표정으로 말할 수 있어야

이 도시에는 사람을 잡아끄는 힘이 없다. 왜 그럴까. 무엇보다 자연환경이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내지 못한다.
산은 대부분 야산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그나마 몇 개 되지 않는다. 가장 높은 산이 금마면·삼기면·낭산면에 걸쳐 있는 미륵산인데 가장 높은 봉우리인 우제봉의 높이는 430m에 불과하다.
이 익산시계의 동쪽 끝에 남북으로 길게 뻗은 미륵산에 국립익산박물관을 비롯한 대부분의 문화재가 집중되어 있다.
미륵산성(전북 기념물 12), 익산 미륵사지(사적 150), 익산 쌍릉, 익산 연동리 석불좌상(보물 45)등이 그것이다.  
모현동과 신동에 위치한 배산의 경우는 해발고도가 95m밖에 되지 않는다.
용화산과 함라산이 있지만 이들 산도 대부분 야산 수준을 넘지 못한다. 산의 고도나 깊이가 방문객들을 압도하지 못하는 것이다.
외지인들을 끌어들이지 못하는 이 야트막한 산들은 익산시민들의  발걸음조차 받아내기 어려워 휴식년제가 반드시 필요할 정도다.
특히 익산에는 필요에 의해 조성한 인공호수나 인공수로를 제외하고는 이렇다 할 친수공간이 없다.
철도가 들판을 남북으로 가르고 그 주변과 들판 여기저기에 건물들이 올망졸망한 형국이다.
이런 사정을 인문학적으로 말하면, 이 도시는 외형에서부터 끌림이 미약하다.
사람의 마음을 끄는 비언어적 요소나 비언어적 표현 자체가 딱히 없는 것이다. 이 도시에 거주하고 있는 사람들의 자긍심이 묽은 이유일 법도 하다.
이제 익산의 유물과 유적지들이 세계문화유산으로 주목받게 되었지만, 익산시민들은 아직 그것을 소화하지 못한 상태다.
익산사람들에게서조차 세계문화유산을 보유한 사람의 표정이나 몸짓이 배어나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 자랑스러움이 표정으로 드러나는 순간까지 얼마나 시간이 필요할 지도 모른다. 지금 처럼 세계문화유산이 도시 외곽의 섬에 갇혀 있다면 그 시간은 요원할 수도 있다.
가치는 사람이 평가하는 것이라는 맥락에서도 직관적이고 감성적으로 세계문화유산의 배경과 원리를 읽을 수 있는 공간이 도심속에 있어야 한다.
익산사람들부터 먼저 말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 공간에 관광객들이 돈을 써도 아깝지 않은 체류 조건들을 구축해야 한다.
이 도시에서 사랑은 이루어지고 영원히 변치 않을 것이라는 환상을 안겨 줄 수 있어야 한다.
행복감을 느끼면서 마음의 여유를 찾을 수 있는 관광자원은 익산에 있다.
하지만 그것을 도심이 공유하지 못하고, 누구나 알아듣는 언어로 말을 걸지 못하고, 푹 빠질 매력을 갖추지 못한다면, 익산의 세계문화유산은 지역경제에 그림의 떡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