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그런데 평온하고 안전한 토론은 후보자들이 바랄 수 없다.

토론회에서 점수를 따지 못하면 기회에 가까워질 수 없는 탓이다. 조바심을 누르고 승부에서 승점을 따내야 한다.

만약 유권자들이 상쾌함을 느끼고 집중하며 절로 웃거나 탄성을 지른다면 후보자들이 치열한 아름다움을 연출한 덕택일 것이다. 그래서 유권자들이 토론자들을 바라보기를, 그들이 위험한 생리적 상태를 극복해내고 흔들리는 정신 상태를 다잡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더라도 스릴을 만끽할 수 있을 터이다.

그렇다. 토론에서 맞선 후보자들의 말과 몸짓과 표정은 내부의 긴장과 갈등이 드러남이다. 또는 이겨낸 결과다.

유권자들은 후보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정견 못지않게 후보자의 심리적 변화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유권자는 그것을 구체적으로 인지하기 어렵다. 대부분은 드러나는 것들을 추적하다가 얼핏얼핏 그 심리적 단서들을 포착할 뿐이다.

민주당 경선 토론회를 지나고 본선 토론회를 앞둔 지금 유권자에게 필요한 눈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는 이유다.

선거가 축제라는 점에서, 후보자들이 자기를 드러내는데 충실해야 한다는 점에서, 어떠한 발로이건 후보자 토론회가 아름다워야 한다는 점에서 후보자의 모델은 어떤 것인가를 생각해 보게 된다. 유권자는 무엇을 보아야 할까.

민주당이 공천심사를 마무리했다.

4.15총선 본선을 앞둔 유권자 대다수 개개인은 자신이 선택한 후보자가 당선되어야 한다는 바람을 품었을 법한 시점이다.

그 반대편에는 누구는 당선되지 않아야 한다는 바람이 있다. 하지만 제일 좋은 태도는 본선 무대를 즐기는 것일 터다.

그래서 어떤 후보든 절대적인 우위를 점하지 않는 판세이기를, 치열한 경쟁을, 모두가 다 유의미한 담론의 장이기를 기대하게 된다.

유권자들을 동원하고 선동하던 유세장은 사라진지 오래다. 후보자가 자기를 노출시키고자 할 때 토론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자리 잡은 선거다.

선거가 축제이기를 바라는 사람들에게 허용된 유일한 마당이 몇 차례 마련되는 토론장인 것이다. 유권자들은 즐기고 싶다. 후보자들이 지역의 문제들을 놓고 얼마나 고민을 했는지 어떤 해법을 제시하는지 모처럼 생업을 내려놓고 듣고 싶다.

'누군가 나를 위해 고민해 준다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인가. '나를 대신하여 나를 둘러싼 불만족들을 제거하겠다는 것'은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후보자들의 혜안과 경륜을 가늠하고 평가해보는 일이란 또 얼마나 즐거운가.

후보자가 제시하는 대안이 합당한지, 합당하다면 그 실천하려는 설계가 타당성이나 현실성을 담보하고 있는지, 그 후보자가 그걸 실현할 만한 역량은 있는지를 주체적으로 평가하고 점수를 매기는, 4년 만에 맛보는 희열이다.

무엇보다 선거가 축제인 것은 후보자들이 토론회에서 보여주고자 하는 모습 때문이다.

너그럽고, 여유 있고, 관대하고, 부드러운 인상을 짐짓 자아내어 자신감을 부각시키는 것은 후보자들의 공통과제라 할 것이다.

그것은 어떤 경우에도 평정심을 유지해야 가능한 일이다.

토론이란 잘 듣고 잘 말하는 것인데, 주장하거나 논박하면서도 일그러지지 않는 표정을 하지 않는 것이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주장이나 논박이 허황되거나 편향되어서는 안 된다. 스스로 그것을 변별하지 못한다면 필경 보여주고자 하는 표정을 유지하는데 실패하게 되어 있다.

자신의 주장이 부적절하다면 상대방의 창을 피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평온하고 안전한 토론은 후보자들이 바랄 수 없다.

토론회에서 점수를 따지 못하면 기회에 가까워질 수 없는 탓이다. 조바심을 누르고 승부에서 승점을 따내야 한다.

만약 유권자들이 상쾌함을 느끼고 집중하며 절로 웃거나 탄성을 지른다면 후보자들이 치열한 아름다움을 연출한 덕택일 것이다. 그래서 유권자들이 토론자들을 바라보기를, 그들이 위험한 생리적 상태를 극복해내고 흔들리는 정신 상태를 다잡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더라도 스릴을 만끽할 수 있을 터이다.

그렇다. 토론에서 맞선 후보자들의 말과 몸짓과 표정은 내부의 긴장과 갈등이 드러남이다. 또는 이겨낸 결과다.

유권자들은 후보자가 전달하고자 하는 정견 못지않게 후보자의 심리적 변화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유권자는 그것을 구체적으로 인지하기 어렵다. 대부분은 드러나는 것들을 추적하다가 얼핏얼핏 그 심리적 단서들을 포착할 뿐이다.

민주당 경선 토론회를 지나고 본선 토론회를 앞둔 지금 유권자에게 필요한 눈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는 이유다.

선거가 축제라는 점에서, 후보자들이 자기를 드러내는데 충실해야 한다는 점에서, 어떠한 발로이건 후보자 토론회가 아름다워야 한다는 점에서 후보자의 모델은 어떤 것인가를 생각해 보게 된다. 유권자는 무엇을 보아야 할까.

외줄 위의 극기를 유려한 필치로 드러내 보인 이청준의 소설 '줄' 가운데 다음 대목이 그와 같지 않을까 한다.

'허 노인이 줄을 타는 모습은 정말 아름다웠다. 천장 포장을 걷어 젖히고, 넓은 밤하늘을 배경으로 허 노인은 흰옷에 조명을 받으며 줄을 건너는 것이었는데, 발을 움직이는 것 같지도 않게 그냥 흘러가듯 조용히 줄을 건너가는 노인의 모습은 유령 같기도 하고 어떤 때는 그냥 땅 위에서 하품을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이상한 것은 그렇게 줄을 타는 노인이었지만 줄에서 내려오면 그의 온몸이 언제나 땀에 흠뻑 젖어 있곤 한 것이었다. 허 노인은 줄타기를 자신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로 여기고 있다. 그렇게 때문에 허 노인은 혼신의 힘을 다해 줄을 타게 되고 보는 사람의 눈에는 자연스럽고 편안해 보이지만 늘 온몸이 땀에 흠뻑 젖는 것이다.'

누구든지 한 지역의 정신을 담지하고자 한다면, 한 시대의 부름에 나서고자 한다면, 더 나은 내일의 노정을 앞장서서 가고자 한다면 저 허 노인과 같아야 할 것이다.

모든 불편을 홀로 감수하고 불안을 지우고 어떤 경우에도 아름다워야 할 것이다.

평안한 후보가 아름다워

그래도 지켜보는 이는 불안하고 불편하다. 외줄 위의 기예에 몰입할 수 있는 역설이기도 하다.

하지만 후보자가 여러 면에서 그 존재 자체로 유권자들에게 불안과 불편을 안겨준다면, 유권자들이 그를 걸러내야겠지만, 후보자 스스로가 진퇴를 고민해야 할 바다.

이청준의 '줄'은 후보자가 지표로 삼아야 할 바를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그날 주막에서 허 노인은 운에게 술잔을 따라 주고, 그날 밤으로 운을 줄로 오르라고 했다. "줄 끝이 멀리 보여서는 더욱 안 되지만, 가깝고 넓어 보여서도 안 되는 법이다. 그 줄이라는 것이 눈에서 아주 사라져 버리고, 줄에만 올라서면 거기만의 자유로운 세상이 있어야 하는 게야. 제일 위험한 것은 눈과 귀가 열리는 것이다. 줄에서는 눈이 없어야 하고 귀가 열리지 않아야 하고 생각이 땅에 머무르지 않아야 한다는 소리다." 줄을 두려워해서도 안 되고, 줄을 만만하게 생각해서도 안 된다. 줄과 내가 하나가 되듯 주객일체의 경지에 이르러야 한다. 세속적 가치에 뜻을 두고서는 줄타기의 절대적인 경지에 오를 수 없다.'

유권자는 그 외줄이다. 만만하게 보면 떨어지게 되어 있다.

머무는 시간의 차이는 있을 수 있다. 자기에게 주어진 직무에 충실하고 사사로움에 흔들리지 않는 신념이 있어야 한다.

주변에 얽매이지 않으면 당락에 좌우되지 않고 자신이 원할 때 스스로 떠날 기회를 얻을 수 있다.

이번 선거에서 진정성 있는 후보가 당선되기를 바란다. 유권자들의 눈이 그런 이를 골라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