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 공인배

익산시민들은 그를 택하지 않았다. 그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그의 흥망은 기성 정치인이나 정치 신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최소한 좋은 정치를 하려는 사람은 좋은 울타리가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깨닫기를 바란다.

진실은 불쾌할 수 있다. 하지만 단호하게 진실에 직면해야 한다. 진실에 익숙해지고 그 진실을 토대로 새 길을 개척한다면 겸손해질 것이다. 진정 무엇이 자신을 위험한 지경에 빠뜨리는지를 알게 되고 그 치부를 베어낼 쾌도난마를 얻게 될 것이다.

익산지역의 4·15 총선은 일찌감치 맥이 빠진 양상이다. 민주당 주자가 무조건 당선될 것으로 믿는 지역 정가의 정서 탓이다. 민주당이 지난달 26일과 29일 익산 갑·을 지역 경선을 거쳐 공천을 확정지으면서 사실상 총선이 막바지에 다다른 분위기인 것이다.

다선과 신예가 맞붙었던 익산 갑지역의 경선 과열은 이 같은 분위기를 예고했다. 뒤집어보면 이번 총선도 의식 있는 유권자들로서는 맥 빠진 축제가 될 것이라는 이정표다. 그럴 뿐 아니라 무소속이나 다른 정당의 주자들은 들러리 서는 듯한 자괴감과 박탈감에 사로잡힐 것이다.

이 같은 비정상은 왜곡된 정당(政黨)정치의 소산이다. 익산지역의 민주당이 유권자를 살피지 않고 교만에 빠져있는 이유다. 교만은 자기를 잃어버리는 병이다. 아픈 것에 또는 위기상황에 병적으로 반응하게 된다. 기득권을 오래 영위한 축일수록 그것은 심화된다.

정의감을 잃어버리고 수치심을 잃어버린다. 자신의 울타리가 복마전이 되어도 다른 곳을 바라본다. 위기의 국면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잡배의 조력이라도 떨쳐버리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어느 순간 부적절한 주변을 청산하려다가도 결행하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자신이 역공 당할까 봐서다. 본디 잡배란 저희들 이익만을 좇으며, 막힌 척하며, 충동적이며, 상대가 제 뜻을 거스르면 해를 가하며, 그러할 때 인간세상의 상도(常道)나 상식은 안중에도 없으며, 해를 가하기에 이르러서는 물어뜯는 자체에 정신줄을 놓으며, 제 죽을 줄은 모른다.

무엇보다 잡배들의 길이란 폐륜이다. 더구나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평가하는 그것들을 무엇으로 당하겠는가. 특히 민심을 얻어야 하는 정치인의 경우나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정치인에게는 신경이 쓰이는 존재가 아닐 수 없을 것이다.

교만은 자기도취다. 지위를 잃은 자신을 상상조차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가진 것을 놓지 않으려고 할수록 자기를 잃어버리기 쉬운 이유다. 권력의 나쁜 예는 비겁하고 천박하고 교활함이다. 기득권을 오랫동안 누려온 경우일수록 빠지기 쉽다.

최근 민주당의 한 캠프 관계자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사람들이 선거철만 되면 싸늘해진다. 오싹할 정도다." 이 말은 유권자들이 선거철에 문득 '내가 주인이다'를 깨닫는 순간도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해준다.

누구든지 탐탁지 않은 평가를 받는다면 그 원인은 자신에게 있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지역을 위해서 한 일이 많다고 생각하는 경우 유권자들의 외면에 크게 놀라게 마련이다. 하지만 자신이 한 일들이 주민들의 의사와 관계없이 일방통행식으로 이루어진 '공급'으로 평가받고 있는 것은 아니었는지 먼저 자문해 봐야 한다.

"성장동력의 거점을 마련했다" "무엇 또는 무슨 산업을 유치했다"며 자랑을 했지만, 지역사람들에게는 그 내용이 난수표 같았으며, 가까스로 알아들었다 해도 피부에 와 닿지 않는 업적들이라면 그것이 지역사회에서 회자될 리 만무하다.

그러나 "그것을 알아주지 않는다" "칭찬해주지 않는다"며 불만을 토로한다면 본인 뿐 아니라 보는 사람도 답답할 수밖에 없다. 정치인이란 주인들의 사정을 보고 들어서 필요한 것을 찾는 사람이 아닌가. 그렇게 하지 못한 것을 먼저 반성해야 하지 않을까.

공공적 동기의 가치기준에 대한 혼동은 다선의원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다. 당선 회차가 거듭 될수록 인적 외연은 점차 확대되기 마련인데, 몇몇 사람들에게 이익을 안기면서 그것을 지역산업의 한 축을 혁신하는 것인 양 포장하곤 한다.

당장에는 성장동력이라고 말했던 산업들은 지역에 맞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수용할 수 있는 인적·기술적 기반이 없고, 연계할 수 있는 산업적 토대가 없다. 당초 지역에 유치할 때는 백년 먹거리라며 풍장을 쳤지만 수백억짜리 프로젝트가 표류하는 것이 그것을 방증한다.

그런데도 다선의원은 자신의 동기는 이타적이었다 말하며 전대미문의 업적을 목청 높여 말한다. 그러면서 그동안 쌓아온 외연 때문에 상대 대다수의 유권자들이 자신에게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착각한다. 그러나 다선이란 초선보다 지키지 못한 것이 많다.

다선은 오만하기 때문이다. 자신을 위해 피 흘린 사람을 쉽게 버리고, 전부를 던져 충성한 사람도 거리낌 없이 버린다. 그것은 분열이 시작된 진앙지다. 균열의 규모나 그 종국은 측정할 수 없는 법이다. 그 파급이란 정량적 수치를 넘어서기 때문이다.

이 같은 잡다한 변수들은 선거의 판도를 결정짓곤 한다. 돌이켜보면 다선의원은 자신에게 불리한 프레임에 갇혀 버렸다. 국회의원이란 국회에서 무엇을 어떻게 잘했는가를 평가받아야 하는데도 지역에 무엇을 했는가로 평가받기를 스스로 자초한 탓이다.

익산갑 이춘석 의원의 경선 패배는 그래서 큰 아쉬움을 남겼다.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4선이 된다면 당내에서 중역을 맡을 수 있게 되고, 원내에서 중책을 맡아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지역을 위해 더 큰 일들을 할 수 있을 텐데, 다선의원이란 지역사람들에게 귀한 자원인데, "그럼 12년 동안은 무얼 했냐"는 저항대를 극복하지 못했다.

가시적인 성과들을 내세운 바람에 그가 바른 율사(律士)로서 본령을 지켜온 점이 노출되지 못한 탓이다. 직무수행 과정에서 불의에 타협하지 않고, 불의 타파에 앞장섰던 점들을 부각시키지 못했던 탓이다.

무엇보다 지역에서 맑은 정치를 구현하고자 했던 그의 신념이 지역사람들과의 스킨십이 부족한 그의 성향에 매몰되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탓이다. '불가근불가원'의 대상이 되는 관계들과 적절한 거리를 유지했고, 사회적으로 부적절한 사람들과는 마주 앉지도 않았지만, 지연과 혈연 그리고 여러 이유로 연관되어 있는 지역공동체는 그것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분패의 원인은 성찰 부족

그래서 지역에 끝내 제대로 섞이지 않았거나 섞이지 못한 그는 스스로 자랑스러울까. 그가 줄곧 표방해 온 바와 같이 사사로운 것을 배제하고 공의로운 길을 선택하려던 그는 형식을 중시했다. 그것은 그의 사회운동가적, 법률가적 성향으로도 읽혔다.

하지만 익산시장 후보 공천 결과는 그의 신념과 일치하지 않았다. 12년 동안 세 차례의 공천은 그가 내세워 온 '무개입 원칙'을 매번 의심케 했다. 그와 친소관계자이거나 외부에서 영입한 인물이 절차를 거쳐 공천됐지만 그 결과는 전패였다.

상대 후보에 필적할 만한 인물을 공천하지 않은 탓이다. 외부에서 영입했으나 졌을 때는 자신이 공들인 인물이 갑자기 불출마를 결정해 새 인물을 급조한 것이 패인이었다 했고, 지역에서 고른 인물이 졌을 때는 당원들의 바람대로 지역에서 인물을 찾았던 것이 패인이었다고 했다.

그것은 변명으로 들렸다. 무책임해 보였고 무능해 보였다. 국회의원이 지역을 위해서 가장 크게 기여하는 바는 좋은 시·도의원, 자치단체장을 내는 것이다. 그러나 '단체장 확보'라는 한 축의 정치적 지분을 구축하지 못한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러한 누적된 문제들에 대해서 끝내 사과하지 않았다. 민주당의 4·15총선 익산갑 경선결과는 그래서 예고된 것이었다.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정파와 인맥으로 똘똘 뭉친 민주당 내에서 자기 영역을 당당하게 확장해 온 이춘석은 익산시민들의 자존심이기도 했기에 그 애석한 심경을 형언할 길이 없다.

익산시민들은 그를 택하지 않았다. 그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그의 흥망은 기성 정치인이나 정치 신인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최소한 좋은 정치를 하려는 사람은 좋은 울타리가 가장 중요하다는 점을 깨닫기를 바란다.

진실은 불쾌할 수 있다. 하지만 단호하게 진실에 직면해야 한다. 진실에 익숙해지고 그 진실을 토대로 새 길을 개척한다면 겸손해질 것이다. 진정 무엇이 자신을 위험한 지경에 빠뜨리는지를 알게 되고 그 치부를 베어낼 쾌도난마를 얻게 될 것이다.